세대별 스트레스 살펴보니…

수많은 국민이 비슷비슷한 일로 불안해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세대, 성별, 이념 불문이다. 온갖 스트레스에 한국사회가 멍들고 있다는 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통계를 허투루 봐선 안 되는 이유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세대별 스트레스를 살펴봤다. 끔찍하지만 현실적인 스트레스들이다.

▲ 거의 모든 스트레스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사진=아이클릭아트]

대한민국 곳곳에서 위험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2017년 3분기 기준 가계부채는 1419조원이다. 국민 한명이 2838만원씩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2017년말 0.25% 인상된 기준금리는 조만간 더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빚이 불어날 거란 얘기다. 덩달아 물가도 꿈틀댄다. 정규직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고, 청년실업률은 9.9%다. 외환위기라는 특이한 상황의 여파로 실업률이 급격히 늘어난 1998년(12.2%)과 1999년(10.9%)을 제외하면 최고치다. 취업시장에 온갖 청탁과 비리가 만연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일자리 질質도 좋지 않다. 3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이고, 실질임금은 물가가 오르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기업의 상시적인 구조조정은 나이와 직급을 불문한다. 사회안전망은 취약하다. 젊은이들은 연애도, 결혼도, 자녀도, 집도 죄다 포기한다. 재취업 시장은 노후 대비를 못한 노년층 퇴직자들까지 더해져 세대간 갈등으로 비친다. 돈을 모을 기회도 없고, 모은다고 해도 대출을 받지 않고는 집 한 채 장만하기가 어렵다.

경기가 확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노후를 위한 재테크도 마땅치 않다. 투자전문가들조차 갈팡질팡한다. 가계부채와 금리에 맞물려 부동산 시장은 다시 규제 대상이 됐고, 아무 이유 없이 오르는 가상화폐에 돈이 쏠리고 있다. ‘묻지마’ 투기와 맞물려 사기가 기승을 부리지만, 일확천금을 노리는 이들은 가상화폐의 늪에서 빠져나올 생각이 없다. 행복을 포기한 채 경쟁해서 손에 얻는 건 대출금이 남은 집 한 채가 고작이고, 국가는 내 삶을 보장해주지 못하니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이다.

이 모든 상황에서 국민 대다수가 느낄 감정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단어가 있다. 불안이다. 불안하면 예민해지고, 스트레스 받는 일도 많아진다. 한국의 자살률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10년 넘도록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건 이를 증명한다. 저 밑바닥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여온 스트레스라는 위험한 시그널을 우리는 그동안 너무 무디게 받아들이고 외면했던 건 아닐까.

[20대 스트레스 = 취업]
취업해도 걱정 못 해도 걱정


초ㆍ중ㆍ고 12년을 명문대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에서 시작이다. 그간의 불안감은 오로지 부모의 몫이다. 대학을 졸업할 시기가 다가오고, 취업이라는 문에 도달하면서 불안의 실체가 드러난다.

전한민(가명ㆍ29)씨는 취업준비생으로만 3년을 투자했다. 1년 반은 공무원 시험에 매진했다. 경쟁률이 너무 높았다. 2016년 기준 국가공무원 9급 공채 경쟁률은 54대 1에 달했다. 기업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기업은 요구사항이 더 많았다. 전씨는 수도권 상위 대학 출신에다 학점도 나쁘지 않지만, 면접관은 관련 분야 경력을 요구했다. 최근 “기업 입맛에 맞는 ‘실무맞춤형 인재’를 키우겠다”는 대학들이 많아진 건 우연이 아니었다.

▲ 취준생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기 위해 공무원시험에 매달린다.[사진=뉴시스]
전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인들과의 연락부터 죄다 끊었다. 업종을 불문하고 자기소개서를 넣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딱 1곳에서 연락이 왔다. 전공과 무관한 은행이었는데, 250명을 뽑는데 지원자는 3만명에 달했다. 해당 은행은 3000명의 서류 합격자를 선발해 3박4일간 합숙면접을 치르고, 최종 250명을 뽑는다고 했다.

간신히 합숙면접까진 올라갔다. 하지만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쉬는 시간조차 평가에 포함했다. 자칫하면 기회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4일을 꼬박 변비에 시달리며 최선을 다했지만, 2주 뒤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자소서가 100개를 넘어갈 무렵 꽤나 이름 있는 외국계 기업으로부터 최종합격 통지를 받았다. 하지만 반년이 지난 올해 1월, 전씨는 틈만 나면 이직 사이트에 접속한다. 팀장의 비효율적인 업무지시를 참을 수 없어서다. 근무시간이 성과와 비례한다고 굳게 믿은 팀장은 ‘밤 10시 퇴근’을 원칙으로 삼았다. 주말에도 불려 나가기 일쑤였다.

전씨는 “처지가 급해서 구한 직장이라 미련은 없다”면서 “다만 개방적이라는 외국계 기업조차 근로기준법을 무시하는데 이직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취직 전엔 불안, 취직 후엔 불만이 쌓였다”면서 “서른도 안 됐는데 벌써 탈모가 시작됐다”고 토로했다.

[30대 스트레스 = 가정과 일]
맞벌이도 걱정 외벌이도 걱정


결혼해서 자녀를 키우는 직장인들은 단순히 전씨와 같은 고민에만 빠져 있을 수도 없다. 육아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에게 육아는 가장 큰 숙제다.

대기업에 다니는 9년차 직장인 최민규(가명ㆍ37)씨는 두 아이의 아빠다. 그는 첫째가 5살이 되던 해 “지금의 행복을 누리고 싶다”며 용감하게 1년짜리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데면데면하던 아이와 가까워지면서 그는 진짜 행복을 맛봤다. 하지만 복직 시점이 가까워지면서 마음은 초조해졌다. 복직한 지 벌써 1년이 지났지만 동기들보다 반걸음씩 뒤처지는 걸 느낄 때마다 옅은 한숨이 새어나온다.

최씨의 부인 한지은(가명ㆍ34)씨는 결혼 전 다니던 회사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회사를 그만뒀다. 야근이 잦아서였다. 그런데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최씨로부터 “다시 일하고 싶지 않느냐”는 얘길 종종 듣는다.

한씨는 “자존감이 낮아진 탓인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눈치가 보인다”면서 “아이가 커가면서 돈 들어가는 곳도 더 많아질 텐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선뜻 결정을 못한다. 결혼 전 경력을 이어가기도 쉽지 않고, 야근은 불 보듯 뻔하다. 옛 동료의 소개로 재택알바를 겨우 하고 있지만, 언제 끊길지 모른다.

이들 부부에만 한정된 고민이 아니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남녀 육아휴직 경험자 400명(만 20~49세)을 대상으로 실시한 ‘육아휴직 사용실태 및 욕구조사’에 따르면 남성은 ‘인사고과에 부정적인 영향(33%)’, 여성은 ‘경력단절로 인한 경쟁력 저하(33.5%)’를 우려해 육아휴직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정부와 기업이 여러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지만 정작 아이를 낳아 키우는 부모들은 ‘육아’라는 큰 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는 얘기다. 쉽게 말해, 맞벌이도 걱정, 외벌이도 걱정이다.

[40대 스트레스 = 구조조정]
열심히 살았는데 벌써 그 나이구나


이런 고민들로 갈팡질팡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흐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목돈이 필요한 때가 오면 ‘그놈의 돈’이 발목을 확 붙잡는다. 방송작가로 활동 중인 박지희(가명ㆍ43)씨는 최근 한숨 쉬는 날이 늘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 때문이다. 제대로 된 공부방이라도 만들어주려면 방이 세칸은 있어야 할 텐데 집값을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8년 전 결혼하면서 구입한 상계동의 59.5㎡(약 18평) 주공아파트다. 당시 시세는 1억8000만원이었지만, 경매를 통해 3000만원 싸게 샀다. 기회라고 생각해 1억원의 대출까지 받았다. 박씨는 “기존 대출금을 거의 갚아 가는데 또 빚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깜깜하다”면서 “언제 일을 그만두게 될지 몰라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 가계의 총수입은 남편 수입까지 합쳐 약 700만원. 거치기간이 끝난 대출원리금 상환액이 매달 60만원, 유치원ㆍ학습지ㆍ학원 등 아이 교육비 130만원, 평일에 딸아이를 봐줄 사람도 딱히 없어 시터(sitter) 비용도 50만원씩 나간다. 아파트관리비, 보험료, 교통비, 식비 등 고정적인 지출만 200만~300만원씩 깨진다. 약 450만원이 고정비로 나가니 대출을 더 받는다면 저축을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게다가 금리인상도 고려해야 한다. 박씨는 “힘들게 벌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정규직인 박씨의 남편도 위태위태하다. 언제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될지 몰라서다. 최근 은행권에서는 40대(1978년생 이전 출생자)부터 희망퇴직을 권고하고 있다. 구조조정 칼바람이 시작된 건데, 박씨 남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50대 스트레스 = 퇴직]
인내해도 고민 창업해도 고민


퇴사를 당하기 전에 스스로 박차고 나오는 건 어떨까. 더구나 요즘은 ‘오륙도(56세까지 회사에서 일하면 도둑놈)’라는 신조어까지 나온다. 젊은이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라는 얘기다. 하지만 경력을 살려 재취업하는 것도 취업시장과 마찬가지로 하늘의 별따기다. 창업시장도 녹록지 않다. 살아남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5년 창업한 자영업자 479만221개 중 32.4%에 달하는 155만2032개가 50대 사업자였다.

창업으로 더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정영진(가명ㆍ53)씨는 그 통계에 포함된 한 사람이다. 한때 정씨는 잘나가는 금융업계 종사자였다. 그러다 40대 중반 시작된 임원 승진심사에서 번번이 떨어져 회사 내 입지가 좁아졌다. 결국 2015년 퇴사를 결심, 창업에 도전했다. 퇴직금과 모아둔 돈을 모두 털어 골뱅이 무침 가게를 차렸다.

처음 1년은 버틸 만했다. 개점 직후엔 친지와 지인까지 손님으로 동원되면서 이른바 ‘개점 특수’ 덕을 봤다. 맛이 괜찮다는 입소문도 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년 후부터 특수가 사라지자 손님이 빠졌다. 특히 요즘 같은 겨울철에는 골뱅이 무침을 찾는 손님이 적어 임대료를 내기도 버거운 상황에 직면했다.

최저임금도 문제다. 정씨는 “직장인일 때는 월급 올려주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입장이 바뀌니까 참 쉽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박씨는 임대료 독촉, 원재료 대금 결제 독촉 등에 시달린 끝에 최근 우울증 진단까지 받았다.

정신질환을 겪는 50대는 정씨만이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6년 50대 우울증 남성 환자는 3만7767명으로 연령대 중 가장 많았다. 증가세도 가파르다. 2008년(2만7022명)보다 39.7% 늘었다. 정씨는 “요즘 기업 오너들이 ‘오너 마인드를 가진 직원’을 찾는데, 막상 오너가 돼보니 그런 직원들이 있다면 이미 신경쇠약에 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노후준비도 못한 상황이어서 하루하루가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60대 스트레스 = 생계]
재취업도 걱정 재테크도 걱정


노후준비를 못했다면 또다시 재취업 시장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겠다며 재취업하는 이들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은 생계유지를 위해 재취업 시장에 발을 들이민다. 실제로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빈곤율은 48.6%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OECD 평균(12.4%)의 3.9배다.

30년 넘게 지방직 공무원으로 일하고 4년 전 퇴직한 오태성(가명ㆍ62)씨 역시 그랬다. 계장 직급으로 퇴직한 오씨는 “남들이 말하는 철밥통으로 일했지만, 퇴직 후 삶은 별반 다를 바 없다”면서 “집 한채와 매월 받는 200여만원의 연금이 전부인데, 매월 고정비를 빼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없다”고 말했다. 먹고살려면 일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는 우선 퇴직 공무원들을 고용하는 공공기관에 지원했다. 천운이 따랐는지 단박에 합격, 일을 했다. 그런데 업무 현장에서 새파랗게 젊은 상사가 와서는 “이런 일 할 수 있겠느냐” “나이 먹고 이렇게 일하고 싶냐”는 등 갖은 막말을 쏟아내는 통에 이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뒀다. 오씨는 “고령자에 대한 젊은이들의 반감이 굉장히 큰 것 같다”고 말했다.

다시 재취업한 곳은 아파트 경비원. 은퇴자들이 가장 많이 일하는 직종이 경비원이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경우 ‘경비ㆍ청소 관련직’에 종사하는 이들이 57%에 이른다. 오씨는 젊은이에게 욕을 먹는 일은 없겠거니 했다. 그게 아니었다. 건설현장에서 일했던 경비소장은 “당신이 배운 것들이 여기선 아무 쓸모없다”면서 “배웠다고 아는 척 하지 말고 그냥 시키면 것만 하라”는 말을 들었다. 오씨를 부를 때도 호칭은 “야!”가 전부였다. 심적인 상처를 받는 건 똑같았다. 오씨는 “왜 경비원들이 목숨을 끊는지 알겠다”고 말했다.

재테크는 소질도 없지만 꿈도 못 꾼다. 장성한 자녀 뒷바라지가 더 급해서다. 서른이 넘은 아들은 여전히 취준생이다. 그런 아들이 결혼을 하겠다고 하는 통에 전세금을 보태주기 위해서 평생 마련한 7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처분했다. 그리고는 돈에 맞춰 경기도 광주 지역의 빌라로 집을 옮겼다. 오씨는 “안정적인 직장생활로 벌어 놓은 게 조금이라도 있는 나도 이렇게 힘든데, 100만원도 채 안 되는 연금을 받거나 연금이 아예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하면 아득하다”고 말했다.

20대부터 60대까지 지극히 평범한 이들의 고민이다. 중요한 건 이런 고민을 개개인이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부가 국민 옆에 밀착해 위험징후를 관찰하고 관리해야 하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의 과업은 어쩌면 지금부터다.
김정덕ㆍ김미란ㆍ강서구ㆍ고준영ㆍ임종찬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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