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무얼 바꿔야 할까

1970~1980년대. 가난했지만 정情을 나누는 따뜻한 사회였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정 문화’를 바꿔놨다. 신자유주의를 통한 냉정한 구조개혁이 이뤄지면서 세상은 차가워졌다. 사람보다는 시장논리가 중심이 됐고, 배려와 존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병훈 중앙대(사회학) 교수는 이를 ‘차가운 자본주의’라고 말했다.

▲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도입되면서 한국의 자본주의 온도는 급격히 떨어졌다.[사진=뉴시스]

학업, 취업, 직장, 결혼, 주거, 육아, 빚, 노후 대비…. 한국사회에서 스트레스 없이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유엔 ‘2017 세계행복보고서’의 행복지수 순위 157개국 중 56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더 나은 삶 지수’ 38개국 중 28위. 스트레스가 만연한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웰빙ㆍ힐링 바람에서부터 최근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탕진잼’ ‘소확행’ 등의 신조어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도 한국사회에 스트레스가 만연해 있다는 방증이다. 문제는 이런 스트레스를 쉽게 해소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사회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고질적인 병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병훈 중앙대(사회학)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마르크스의 주장처럼 자본주의는 태생적으로 노동을 착취하고 노동자를 소외시키기 쉬운 구조다. 하지만 노동조합, 노동자 정당, 사민주의 정책 등 자본주의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장치들이 있다. 이런 장치들이 잘 마련돼 있는지에 따라 자본주의는 따뜻한 자본주의와 차가운 자본주의로 나눌 수 있다.”

이 교수의 분류에 따르면 대표적인 따뜻한 자본주의 국가는 덴마크,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다. 노동조합, 복지시스템 등이 잘 발달돼 있는 이들 국가는 유엔 2017 세계행복보고서 행복순위에서 1~5위를 쓸어 담았다.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한국은 차가운 자본주의 국가에 속한다.

한국에 보완장치가 없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노동조합이 활성화돼 있다. 1953년 노동조합법을 제정, 노동조합의 설립과 활동을 보장했다. 하지만 2016년 기준 조합원 수는 197만명에 불과하고, 노조 조직률은 10.3%에 머물러 있다. 일부 규모가 큰 기업을 제외하곤 여전히 노동조합 설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이 많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의 노동조합은 본래 역할보다는 정치 기류에 편승해 정치투쟁을 하는 경우가 숱하다는 점이다.

노동자 정당도 있다. 노동당, 사회변혁노동자당 등이다. 하지만 지지율이 낮고 당원이 적어 제대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선관위에 등록조차 되지 않은 정당도 적지 않다. 사민주의적인 복지정책은 매 정권에서 내세우는 단골정책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실효성이 떨어지는 정책이 수두룩하다. 실패한 정책을 답습한 것도 많다. 효과적인 일부 복지정책은 기득권 반발에 부딪혀 백지화되기 일쑤다. 한국에서 실효성 있는 복지 정책을 보기 힘든 이유다. 

무서운 벽, 기득권 반발

이병훈 교수의 일침을 들어보자. “차가운 자본주의는 덜 가진 사람에게 혹독하다. 열패자劣敗子는 경쟁에서 밀려 스트레스를 받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신도 열패자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과 경쟁에 시달린다.” 차가운 자본주의가 경쟁심화와 물질만능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도 치열한 경쟁으로 꼽힌다. 김문조 고려대(사회학) 명예교수 연구팀이 작성한 연구보고서 ‘한국형 사회갈등 실태진단’에 따르면 20대 이상 성인남녀 34.8%는 한국을 ‘경쟁사회’라고 규정지었다. 주요 스트레스 발생원인도 경쟁에서 비롯되는 불안과 피로였다.

우리는 무얼 바꿔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존중과 배려다. 기득권과 서민,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용자와 노동자 등 사회적 강자와 약자 사이에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서로 간에 존중과 배려가 있으면 공정한 기회, 평등한 절차, 정의로운 결과가 나오게 마련이다.

이 교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불가피하지만 중요한 건 어떤 경쟁으로 갈 것이냐는 점이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누가 더 우대받고 누구는 차별받는 경쟁이 지속되면 신분구조, 갑질사회가 고착화한다. 배려가 기반이 되고 사회가 공정해지면 누가 누굴 딛고 올라서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배려 없는 사회,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구조. 한국사회의 일그러진 민낯이다. 이런 틀을 바꿀 수 있을 때 불행이나 스트레스가 해소될 것이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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