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많죠? 그대❺] 부숴야 할 건 접시가 아니었다
[걱정 많죠? 그대❺] 부숴야 할 건 접시가 아니었다
  • 임종찬 기자
  • 호수 272
  • 승인 2018.01.19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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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해소방 가보니…

접시를 깨고, 가전제품을 때려 부수고…. 20년 전 인기를 끌었던 ‘스트레스 해소방’이 다시 뜨고 있다. 가격은 착하지 않았음에도 매장은 화풀이를 하려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직접 방문해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고 접시를 깨봤다. 정말 스트레스가 풀릴까.

▲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스트레스 해소방을 찾는 젊은층이 부쩍 늘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서울 홍대입구역 9번 출구를 나와 홍대거리를 따라 KT&G상상마당 쪽으로 걸었다. 마지막 골목길에서 꺾어 ‘서울 레이지 룸’ 이 적힌 건물로 들어갔다. 이곳을 방문한 목적은 단 하나. ‘스트레스 해소방’을 체험하기 위해서다. 이곳은 접시를 깨거나 가전제품을 부수며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으로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매장에 들어갔다. 첫 손님인 듯 했다. 직원이 친절하게 맞았다. “예약하고 오셨나요?” 그냥 왔다고 했더니 직원은 “주말엔 거의 모든 시간대가 예약손님으로 채워진다”며 “주말에 올 때는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용할 코스를 골랐다. 가장 저렴한 ‘짜증 코스’를 살펴봤다. 10분에 2만원. 접시 10개가 제공된다. PC방이 1시간에 1500원, 스크린골프가 18홀 기준 1만5000원~3만원인 걸 감안하면 10분에 2만원은 상당히 비싼 금액이었다. 직원은 “주로 5만원대의 ‘빡침 코스(15분ㆍ접시 20개, 가전제품 1개 제공)’를 많이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의외였다. 그만큼 손님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데 적극적으로 돈을 쓴다는 얘기였다. 시간이 모자라진 않을까. 직원은 “야구방망이를 휘둘러보면 10분도 충분하다고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용 안전모와 귀덮개를 쓰고 방진복을 입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방에 들어갔다. 26㎡(약 8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벽에 큼지막하게 그려진 과녁표가 눈에 들어왔다. OSB합판(나무 파편을 모아 압착해 만든 합판)으로 감싼 벽이 제법 튼튼해 보였다. 벽을 자세히 보니 크고 작은 흠집이 무수히 나 있었다. 책상에는 접시와 알루미늄 야구방망이, 망치가 놓여 있었다.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록(Rock) 음악이었다. 분위기가 달아올랐지만 뭔가 부수려니 좀 어색했다. 일단 접시 한장을 과녁에 던졌다. “쨍그랑!” 접시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났다. 묘한 희열감을 느꼈다. 순식간에 접시 10개를 모두 사용했다.

야구방망이를 집어 들었다. 회사 업무의 스트레스를 떠올리며 타이어를 때려봤다. “펑~펑~.” 휘두르는 게 서툴러서인지 방망이가 심하게 튀어 올랐다. 개운한 맛이 없었다. 점점 오기가 생겼다. 수십번을 휘둘렀다. 방망이가 손에 익기 시작했다. 고함도 질렀다. 말 그대로 정신줄을 놓은 채 타이어를 두들겼다. 속이 후련했다.

음악이 끝났다. 10분이 다 됐다는 뜻이었다. 방망이를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봤다. 사방이 접시 조각 투성이었다. 숨이 찼다. 방망이를 쥐었던 손이 떨렸다. 10분은 생각보다 길었다.

소파에 앉아 숨을 돌리는 사이 커플로 보이는 남녀가 들어왔다. ‘빡침 코스(5만원)’를 고른 커플은 금세 옷을 갈아입고 방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벽 너머에서 접시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와장창 부서지는 소리도 났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뒤를 이었다.

15분 뒤 나온 커플의 볼은 빨갛게 상기돼 있었다. 이들은 결혼 7년차인 30대 부부였다. 데이트를 하러 온 걸까. 아내 이지영(가명)씨는 “이색 데이트를 즐기려고 온 것만은 아니다”면서 운을 뗐다. “직장 업무 강도가 세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야근도 잦다. 어젯밤에는 주차 문제로 이웃과 한바탕 말싸움을 했다. 화가풀리지 않아서 남편에게 여기 오자고 졸랐다.”

그녀와 대화 도중 20대로 보이는 남자 두명이 들어왔다. 이들은 어떤 요금을 선택할지 잠깐 고민하더니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하자”며 7만원짜리 요금을 골랐다. 여기에 1만5000원을 추가해 가전제품을 대형 프린터로 업그레이드했다. 이들이 들어간 방에선 부부 때보다 훨씬 격렬한 소리가 났다. 욕설도 간간이 들렸다.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 듯 했다.

스트레스 풀리긴 하는데…

잠시 후 숨을 헐떡이며 나오는 이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제대를 앞둔 25살 한주영(가명)씨는 “자영업을 하는 아버지를 돕느라 군대를 늦게 갔다”며 “제대 후 곧바로 취업 준비를 하려니 생각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15분 만에 8만5000원을 썼는데 스트레스는 좀 풀렸을까. 한씨는 “프린터가 완전히 박살이 났다”면서 “화풀이를 실컷 하니 속은 시원하다”며 멋쩍어 했다.

말을 마치고 매장 입구를 나오다 남녀 대여섯명과 스쳤다. 이들은 들뜬 목소리로 매장으로 들어갔다. 주변을 좀 더 둘러봤다. 비상구 계단에는 속이 꽉 찬 마대 열댓자루가 세워져 있었다. 매장에서 내놓은 듯 했다. 자루 안은 깨진 접시 조각들과 고철이 된 가전제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 매장 한편에는 손님들의 기분을 풀어줄 가전제품이 놓여 있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사실 해소방의 역사는 꽤나 길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국내에 처음 등장했다. 스트레스를 ‘싸고 실속 있게 풀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당시 가격으로 접시 두장을 던지는 데 1000원, 5분간 마네킹과 권투를 하면 500원이었다. 그러나 불황과 맞물려 생겨난 인기는 금세 시들었다. 신촌, 인천 송도 유원지 등 곳곳에 있던 매장들도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 2017년 홍대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거였다.

스트레스 해소방이 다시 뜨는 이유가 뭘까. 곽금주 서울대(심리학) 교수는 “최근 한국 사회는 경제·정치·외교·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건·사고를 겪으면서 극심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았다”면서 “스트레스 해소방이 다시 등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스트레스성 질병을 호소하는 환자는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6년 화병 환자수는 2859명으로 전년(2149명) 대비 33% 증가했다.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올리브영 매장 앞에서 아까 그 부부와 마주쳤다. 눈인사를 하고 지나가는데 인터뷰때 남편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스트레스가 풀리긴 한데 이 기분이 오래갈진 모르겠다. 여긴 오로지 스트레스 해소만을 위해 오는 곳이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괜한 헛돈을 쓰는 게 아닌가 싶다.” 홍대 거리를 벗어나면서 그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임종찬 더스쿠프 기자 bellkic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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