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인셉션 ❺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관객들에게 그다지 친절하지는 않다. 주인공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내면적 갈등과 죄의식이 영화의 하나의 축임에도 그를 괴롭히는 과거를 화면에 보여주지는 않는다. 결말도 관객의 몫으로 남겨놨다. 코브는 천신만고 끝에 두 아이를 만날 수 있게 됐지만 이 또한 꿈인지 현실인지 명확하지 않다. 
 
영화 ‘인셉션’은 코브의 내적갈등과 죄의식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러시아 에너지그룹 상속자의 무의식 속으로 침투하는 프로젝트를 위해 영입한 ‘꿈 설계’ 분야의 영재英才 애리어든(엘렌 페이지)에게 독백하듯 털어놓는 술회 속에 녹여낸다. 하지만 그 설명조차 대단히 난해하다. 
 
코브는 아내 맬(마리옹 코티야르)과 함께 ‘꿈속의 꿈’ 연구에 몰두한다. 맬의 아버지는 파리대학의 저명한 꿈 연구가이기도 하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코브와 맬은 심연과 같은 무의식 상태인 ‘림보(지옥의 변방)’의 세계에 빠진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코브와 맬은 림보의 세계에 탐닉한다. 모든 것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뤄질 수 있는 림보의 세계는 가히 마약중독과 같은 유혹이다.
 
맬은 분명 매력적인 여자이지만 썩 좋은 아내는 아닌 듯하다. 어쩌면 전형적인 팜 파탈(Femme fatale)이다. 강하면서도 나약하고, 꿈을 꾸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남의 심장을 얼마든지 잔인하게 찢어버릴 수도 있다. 맬은 차츰 현실 세계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남편의 해외 근무에 따라간 와이프와 같은 심리가 된다. 아무것도 걸리적거리는 것 없는 ‘해외생활’이 편하다.
 
▲ 코브와 맬은 원하는 대로 이뤄지는 림보의 세계에 탐닉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시월드’를 비롯한 모든 번거로움이 기다리고 있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고 두 아이조차 그립지 않다. 갈등 끝에 이민을 결심하는 해외주재원 와이프처럼 맬은 림보의 세계를 현실 세계로 여기고 영원히 그곳에 머물고자 현실과 꿈의 세계를 판별해주는 토템(작은 팽이)을 여권 감추듯 감춰버린다. 팽이가 돌다가 결국 멈추면 현실 세계이고 멈추지 않고 돌면 꿈의 세계이다.
 
맬과 코브는 현실 세계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자살한다. 림보의 세계에서 죽으면 비로소 잠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온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와서도 맬은 계속 자신이 여전히 꿈속에 머물고 있는 것인지 현실인지 헷갈린다. 현실은 쓰다. 쓰디쓴 현실을 꿈으로 치부해 버리고 달콤했던 꿈이 현실이었으면 좋겠다. 꿈과 현실이 전도顚倒된다.
 
결국 맬은 권태로운 현실을 벗어나 꿈속으로 돌아가고자 자살한다. ‘팜 파탈’답게 자살하기 전에 변호사에게 남편 코브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편지를 남긴다. 코브는 꼼짝없이 아내 살인범으로 몰리게 된다. 아마도 남편이 살인범으로 몰리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따라 자살해 ‘꿈의 세계’로 강제 동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맬은 약물에 취한 마릴린 먼로처럼 고층 아파트에서 몸을 던진다. 꿈속에서 자살하면 꿈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꿈과 현실이 헷갈려버린 맬은 결국 꿈속이 아닌 현실에서 죽고 만다. 꿈속에서 죽으면 현실로 돌아간다지만 현실에서 죽어버리면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 많은 사람들이 현실 도피용 꿈을 꾸며 깨지 않기를 바라기도 한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많은 사람들이 꿈을 꾸며 살아간다. 어쩌면 꿈이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인지 모른다. 꿈조차 꿀 수 없다면 삶이 너무 삭막하고 끔찍해 하루도 견딜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맬처럼 현실 도피용 꿈을 꾸기도 하고, 그 꿈에서 깨기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현실’이란 많은 경우에 진실(Truth)과도 같다.
 
진실은 대개 불편하다. ‘불편한 진실’은 외면하거나 온갖 장식으로 치장하고 포장하여 그 ‘불편함’을 감추기도 한다. 꿈속에 빠져 현실을 도피하려는 아내 맬의 팔을 질질 끌어 현실로 데려온 코브는 얼핏 대단히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 같지만 그 역시 거친 현실보다는 달콤한 꿈속에 머물고 싶은 마음은 똑같다. 영화의 마지막, 코브 일당은 천신만고 끝에 사이토 회장이 발주한 프로젝트를 완수한다. 사이토 회장은 약속대로 미국 정관계에 손을 써서 코브를 살인자 수배명단에서 해방시켜 준다. 
 
코브는 드디어 오랜 방랑 생활을 끝내고 두 아이가 있는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해피엔딩인 셈이다. 코브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이게 꿈이냐 생시냐. 그 해피엔딩이 꿈속이 아니라 생시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볼을 꼬집어보듯, 코브는 팽이를 돌려본다. 현실이라면 팽이는 쓰러질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놀런 감독은 돌아가는 팽이를 놓고 열린 결말로 심술을 부린다. 코브도 그것이 꿈속인지 현실인지 굳이 확인해보고 싶지 않다. 그것이 꿈이면 어떻고 현실이면 어떤가. 그것이 어떤 세상이든 그저 내가 지금 만족하고 행복하면 그만 아니겠는가. 행복한 꿈이라면 영원히 깨고 싶지 않을 뿐이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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