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현대로지스틱스 매각 배임죄 논란

2014년 현대그룹은 현대로지스틱스를 일본 금융기업 오릭스 코퍼레이션과 롯데그룹이 공동설립한 SPC에 매각했다. 급격히 악화된 유동성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3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난 15일 현대상선은 당시 매각 계약을 체결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결정권자들을 고소했다. 독단적으로 악성계약을 체결했다는 거다. 구체적 증거는 없고, 주장은 엇갈린다. 누가 진실의 혀를 깨물고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취재했다.

▲ 현대상선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5명을 고소했다. 현대상선에 불리한 계약을 독자적으로 체결했다는 의혹에서다.[사진=뉴시스]

현대상선이 전 오너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고소했다. 혐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배임죄. 15일 현대상선 전 대표 등 4명과 함께 묶어 서울중앙지검에 소를 제기했다. 현대상선의 주장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계열사 현대로지스틱스(현 롯데글로벌로지스)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현 회장 측이 불리한 매각 조건을 제시(또는 수용)한 탓에 현대상선이 피해를 입었다. 현 회장 측이 알면서도 손해를 입힌 것이다.”

2014년 재무구조 악화로 경영위기를 맞은 현대그룹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현대로지스틱스 지분 88.8%(현대상선 47.7%ㆍ현대글로벌 24.4%ㆍ현정은 회장 12%ㆍ현대증권 3.3%ㆍ현 회장 일가 1.4%)를 이지스1호에 팔았다. 매입주체는 일본 금융기업 오릭스 코퍼레이션과 롯데그룹이 공동으로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이었다.

현대상선 측은 이 과정에서 현 회장 등 5인이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고 현대상선에 불리한 조건이 붙은 악성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한다. 그중 하나가 현대상선이 이지스1호에 후순위 투자자로 참여한 부분이다. 현대상선은 현대로지스틱스 지분을 매각하고 받은 3220억원 중 1094억원을 이지스1호에 투자했다.

후순위 투자자는 매각 대금이 투자금보다 적으면 그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현대상선 측은 “이지스1호가 현대로지스틱스를 롯데에 매각할 때 현대상선이 회수한 투자금은 제로였다”고 주장했다. 이 회사 장진석 준법경영실장의 말을 들어보자. “회수 가능성을 잘못 계산한 게 아니라 사실상 투자금을 회수할 수 없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은 결과로 보인다. 회사가 손실을 입을 거란 걸 명백하게 알고 있음에도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단순한 경영판단미스라고 볼 수 없다.”

 

현대상선 측이 제기한 또다른 악성 조건은 현대로지스틱스의 영업이익을 보전해줘야 한다는 점이다. 현대상선은 현대로지스틱스와 인터모달(내륙운송), 피더사업(근해운송), 차량광고 등 협력사업을 진행 중인데, 이 사업의 영업이익이 161억5000만원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부족분을 현대상선이 메워야 한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현대로지스틱스가 현대그룹 계열사였을 때부터 해왔던 계약인데, 매각 과정에서 이사회 결의도 없이 이 기간을 5년(2014~2019년)으로 책정했고 무기한 연장할 수 있다는 부가 조건도 달았다”고 말했다. 현대상선은 현대그룹 계열사였던 2014~2015년엔 현대로지스틱스의 영업이익 부족분을 메워줬지만 2016년 말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이후엔 지급하지 않았다.

현대그룹 측 주장은 다르다. 현 회장 등의 독단이 아닌 현대상선의 이사회에서 결정된 내용이라는 거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현대로지스틱스의 영업이익을 보전해주는 조건의 경우 이사회에서 결정할 주요 사안이 아니라 현대상선 이사회에서 대표(당시 이백훈ㆍ이석동 공동대표)에게 결정 권한을 위임한 것이고, 후순위 투자는 현대상선 이사회에서 결정된 사안”이라면서 강하게 반박했다.

“당시 현대그룹은 현대로지스틱스를 기업공개(IPO)해서 자금을 마련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현대상선의 부채 문제가 심각해지자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매각을 요구했고 그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급하게 매각하려는 상황이어서 인수자(이지스1호)에게 유리하게 계약이 맺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누구 말이 진실일까. 답을 찾기 위해선 현대상선의 주장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 소를 제기한 현대상선 측이 계약 당시 ‘불리한 조건’이 달린 걸 몰랐느냐는 거다. 이는 ‘왜 3년이 지난 후에야 소를 제기했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현대상선 측은 “2016년 회사가 채권단 자율협약 체제로 바뀐 다음에야 그 내용을 알았다”고 밝혔다. 장 실장은 “채권단 실사가 진행되면서 계약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다가 확인했다”면서 “3년이 흐른 뒤에 소송을 제기한 것은 해당 계약을 통해 피해가 발생한 게 악성 조건을 확인한 2016년 이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누가 진실을 깨무나

하지만 이 주장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롯데그룹이 이지스1호로부터 현대로지스틱스를 인수한 건 지난해 2월이다. 현대상선의 주장처럼 현 회장 등이 후순위 투자를 통해 손실을 입을 거라는 점을 알면서도 계약을 체결했다면 지난해 2월엔 현대상선도 불리한 계약이란 걸 알았을 공산이 크다.

더구나 현대로지스틱스의 영업이익을 보전해줘야 하는 조건도 2014년부터 지속돼왔다. 그렇다면 “지금에 와서야 피해가 발생했다”는 현대상선 측의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여은정 중앙대(경영학) 교수는 “현정은 회장이 독단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긴 하지만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감사팀이나 이사회가 추후 계약 내용을 확인하는 게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 장진석 준법경영실장은 “현 회장 측은 현대상선의 손실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사진=뉴시스]
이 때문에 현대상선 측의 고소에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새어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재무구조 개선, 경영정상화 등의 작업이 지지부진하자 현대상선 측이 현대로지스틱스와의 계약을 무효화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이런 의혹에 현대상선은 “현대로지스틱스 매각 계약을 통해 현 회장 등 5인은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취했고, 현대상선은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한 채 지속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이 반박 역시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익명을 원한 한 업계의 관계자는 이렇게 꼬집었다. “현대상선이 1094억원의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한 건 맞다. 하지만 지분 매각을 통해 2000억원가량의 이익을 챙긴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이제와 발생하는 손실이 아쉬우니 고소를 진행한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현대그룹의 주장이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다. 현 회장 측이 합법적 절차를 거쳤다면 이사회 의결 등 자료를 공개하면 된다. 계약 당시 어쩔 수 없이 인수자의 의견에 힘이 실렸다면, 이지스1호가 제시한 내용을 공유하면 의혹이 풀린다. 문제는 양쪽 모두 객관적 자료는 공개하지 않은 채 ‘입씨름’만 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상선과 현대그룹의 상반된 주장, 진실의 혀를 깨물고 있는 건 어느 쪽일까.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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