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사진관] 폐차 가죽으로 희망을 재단하다
[천막사진관] 폐차 가죽으로 희망을 재단하다
  • 이윤찬 기자
  • 호수 273
  • 승인 2018.01.23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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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창업가’ 최이현 모어댄 대표

 

▲ 최이현 대표에게 폐차 시트는 유일한 ‘백(가방·배경)’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창업은 간판으로 하는 게 아니다. 아카데미컬한 이론이 창업시장의 동아줄이 될 수도 없다. 창업시장은 워낙 변덕스럽고 고약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장을 잘 모르는 이들이 종종 유망한 창업가의 가치를 가문ㆍ학벌 등 ‘간판’에 옭아맨다. 그 과정에서 창업가의 분투奮鬪는 사라지고, 진심은 왜곡된다.

 

더스쿠프(The SCOOP)와 천막사진관이 폐차 가죽을 활용한 제품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최이현(37) 모어댄 대표를 조명한 이유다. ‘흙수저 창업가’인 그는 낡은 폐가죽으로 희망을 재단했다.

# 1장. 실명, 아름다운 대가

“열 발자국 다음 우회전. 음 … 그래, 아홉 발자국 걸은 뒤 좌회전.” 개척교회 목사였던 아버지는 눈이 보이지 않았다. 1994년 작은 교회를 짓던 중 눈으로 튄 ‘벽돌 파편’이 시신경을 망가뜨렸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보이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시시때때로 눈이 시큰거렸음에도 돌보지 않은 탓이 컸다. 약자를 보살피는 걸 천직으로 여겼던 아버지로선 당연한 선택이었다. 가뜩이나 힘 없는 이들에게 ‘짐’이 되는 걸 스스로 허락할 리 없었다.

“열 발자국 다음… 아홉 발자국 뒤….” 눈앞이 정말 캄캄해졌을 때 ‘교회 가는 길’을 통째로 외운 이유도 그래서였다.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조용하고, 감정의 여울이 적었다. 눈이 아파도, 그 탓에 머리가 지끈거려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아버지의 눈이 심상찮다는 걸 뒤늦게 알아챈 신도들이 “목사님 제발 쉬세요”라면서 뜯어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그렇게 2년. 아버지는 끝내 새 교회를 완성했고, 신도들은 안식처를 찾았다. 아버지의 실명失明은 슬프지만 아름다운 대가였다.
 

▲ 모어댄은 모든 가방의 재단을 30년 경력의 장인에게 맡긴다. 폐가죽을 손질하는 것도 허투루 하지 않는다. 한 직원이 세척된 가죽을 건조하고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 2장. 그 아버지에 그 아들

1997년 아버지는 교회가 있던 평택을 떠났다. 이번에도 신도들이 만류했지만 “안식처를 다 만들었으니 됐다”면서 짐을 꾸렸다. 충남 서산으로 내려가 새 터를 닦았다. 가세家勢가 조금 기울었지만 집은 여전히 행복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언젠가부터 안방에서 ‘법전 읽는 소리’가 들렸다는 점이다. 어머니가 경매에 필요한 법조항을 읽어주면 아버지가 복창하는 식이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경매일을 시작했고, 기울었던 가세는 조금씩 살아났다.

2남 2녀 중 막내 이현(최이현 모어댄 대표)은 그때 그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올 때마다 세간이 조금씩 늘었어요. 입대 전엔 걱정을 많이 했는데, 공연한 우려였죠. 아버지의 삶을 보면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구나’라는 걸 배웠어요.”

2004년 군을 제대한 이현은 부쩍 성숙했다.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시장에선 마늘과 양파를, 온라인에선 바지를 팔면서 학비를 마련했다.

집에 돈이 없지 않았음에도 그랬다. 그에게 ‘자립自立’은 본능이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다.

 

 

 

▲ 누군가에게는 폐기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자산이다. 실제로 최이현 대표는 폐차 가죽을 구하기 위해 300여개 폐차장을 일일이 돌아다녔다. [사진=오상민 작가]

 


# 3장. 첫 선물과 뺑소니

2009년 5월 5일 어린이날. 영국에서 유학 중이던 이현은 ‘중고 미니(BMW)’를 헐값에 샀다. 행운이었다. 장애인 할머니가 몰던 미니였는데, 불과 500파운드(약 70만원)에 구입했다.

‘미스터 빈(로완 앳킨슨)’이 타던 차, 그래서 꼭 사고 싶었던 차. 생애 첫 어린이날 선물이었다.“ 늘 헌신하는 부모님에게 어린이날 선물을 기대하는 건 언감생심이었어요. 미니는 ‘셀프 선물’이었죠.”

더 큰 의미도 있었다. 이현은 2006년 영국 생활을 어렵게 시작했다. 약간의 어학연수비용은 알바로 마련했다. 영국에 도착한 후엔 스시집에서 일했다. 남은 초밥을 싸가기 위해 ‘마지막 타임 알바’도 마다치 않았다.

2008년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에 다시 왔을 땐 ‘하숙집 렌트업業’을 하면서 석사 학비를 만들었다. 쉼 없이 달려온 시간. 미니는 그런 자신에게 준 ‘위로의 징표’였다.

 

 

 

 

▲ 최이현 대표가 스스로에게 선물했던 중고 ‘미니’는 뺑소니 사고를 당한 뒤 폐차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고는 최 대표에게 아이디어를 줬다. [사진=오상민 작가]

 


하지만 얼마 후 미니는 한낱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뺑소니 사고로 3분의 2 이상이 으깨졌기 때문이었다. 미니를 무심코 교회 근처에 세워둔 게 화근이었다.

이현은 그나마 형체가 남은 좌석(시트)만 떼서 집으로 가져왔다. 그의 아린 속을 모르는 친구들은 “인테리어 감각 좋다” “가죽질이 일품이네”라면서 치켜세웠다. “그래 봤자 폐가죽일 뿐인데….” 훗날 일을 알 리 없는 이현은 입을 실룩였다. 짓궂은 운명이었다.

# 4장. 옥스팜, 그리고 새 출발

새벽이면 기부 물품이 수북이 쌓였다. 책, 옷, 장난감 등 종류도 다양했다. 빈민구호단체 ‘옥스팜(oxfam)’ 매장(런던) 앞 풍경은 늘 그랬다. 영국에 다시 온 지 1년여가 흐른 2009년께. 이현은 매일 아침 이곳을 지나쳤지만 매장에 들어가진 않았다. ‘하숙집 렌트업’으로 워낙 바빴기 때문이었다. 왠지 모를 죄책감도 발목을 잡았다.

역설적이지만 렌트업 탓이었다. “말이 좋아서 렌트업이지 따지고 보면 영국에 자녀를 유학 보낸 한국 부모님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었어요. 미안한 마음이 항상 많았죠.”

 

 

 

 

▲ 최이현 대표는 폐가죽 관리, 기획, 제작 등을 총괄한다. 스타트업 CEO는 1인 다역을 즐겨야 한다. [사진=오상민 작가]

 


숨이 막혔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이현은 옥스팜의 문을 두드렸다. 일주일에 2~3차례 옥스팜 매장에 들러 박스 정리, 창고 청소 등 궂은일을 했다. 행복했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조금씩 사라졌다.

“그 시절 저는 자유로운 영혼이었어요. 옥스팜에서 일을 시작한 다음에야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때라는 걸 느꼈죠.”

렌트업에서 손을 뗐다. 돈보다 중요한 건 가치였다.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공부하기로 했다. 2010년 말 런던을 떠나 리즈대 석사 과정(코퍼레이션 커뮤니케이션)에 입학했다. CSR을 연구하는 과科였다.

20여개국 46명의 학생, 한국인은 이현뿐이었다. 자연스럽게 그의 연구 방향은 ‘한국의 CSR’에 맞춰졌다. 교수와 학생 모두 궁금해했다. 이현은 한국 자동차 업체의 CSR 사례를 연구했다.

이상했다. 취약계층 구호 등 자동차와 무관한 CSR 활동이 많았다. 생산자의 ‘책임 재활용’을 강조하는 유럽의 방향과도 달랐다. “자동차 업체의 CSR은 폐기물의 재활용에 있다고 봤어요. 그래서 자동차의 생애를 ‘뺄셈 방식’으로 살펴봤죠. ‘엔진→고철→시트를 제외하면 뭐가 남을까’라는 의문을 던지면서 하나씩 지워나갔어요.”

 

 

 

 

▲ 모어댄 고양 본사의 벽에 붙어 있는 제품 디자인 시안들. [사진=오상민 작가]

 


연구 결과는 흥미로웠다. 앞ㆍ뒤 시트까지 빼면 가죽만 남았고, 이는 오롯이 폐기물이 됐다. 연간으로 따지면 400만t(세계시장 기준)에 이르는 양이었다. 폐차의 가죽이라…. 이현은 흥분했다. 생애 첫 선물이었던 ‘미니’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가죽질 좋다”는 친구들의 말도 귀청을 때렸다.

2012년 말, 이현의 논문(한국 자동차 회사의 CSR 방향에 따른 효과성)은 무리 없이 통과했다. 독특한 주제 덕분인지 글로벌 기업들이 주목했다. 한국의 한 대기업은 스카우트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이현은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폐차의 가죽을 재활용하면 유니크한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2013년 2월 그는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가방 속엔 폐가죽과 안전벨트가 들어 있었다.

# 5장. 간판에 가린 민낯

스타트업 모어댄. 요즘 업사이클링(재활용) 업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이다. 폐차의 ‘시트 가죽’을 활용한 가방과 지갑으로 조명을 받고 있다. 창업 2년 반 만에 매출이 2억원을 훌쩍 넘었으니, 스타트업의 ‘떠오르는 별’로 불릴 만하다.

이 회사를 창업한 최이현 대표도 유망한 CEO로 손꼽힌다. 각종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그의 이력은 흥미롭고 화려하다. “영국 명문대에서 논문을 쓰다가 아이디어를 얻어 사업을 시작했고, 성공 반열에 올라섰다.”

 

 

 

 

▲ 모어댄은 폐차의 ‘시트 가죽’을 활용한 가방과 지갑으로 조명을 받고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그런데 의문이 있다. 해외 명문대는 창업의 성공 요건이 아니다. 꿈틀대는 시장을 꿰뚫는 감각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과 발에서 나온다. 아카데미컬한 논문을 쓰다가 아이디어를 얻어 돌연 창업을 했다는 것도 수사修辭일 공산이 크다. 실물경제를 모르는 사람이 책상머리에 앉아 변덕스러운 시장의 심리를 읽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체 뭘까. 창업시장을 얕잡거나 잘 모르는 이들이 유망 CEO ‘최이현’의 가치를 간판과 학술적인 논문에 국한시킨 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각종 미디어에 소개된 ‘기승전’ 없는 창업기를 어찌 해석해야 할까. 더스쿠프와 천막사진관이 최 대표의 삶을 들여다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 최 대표는 ‘흙수저 창업가’다. 물려받은 것이라곤 아버지의 기백뿐이다. 영국에 유학을 가기 위해 마늘을 팔았고, 어학연수를 할 땐 스시집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석사 과정을 밟기 전엔 학비를 마련할 요량으로 ‘영혼 없는 비즈니스’에 발을 담갔다.

그 과정에서 그는 죄책감에 울고, 책임감에 날을 세웠다. 시계추를 2013년 봄, 최 대표가 한국에 도착한 그때로 다시 돌린다.

# 6장. 흥정에 닳고 닳은 그들

그에게 시차時差는 사치였다. 최 대표는 서울에 미리 얻어 놓은 방에 짐을 풀자마자 동대문 가방제조업체를 찾아갔다. 하루라도 빨리 샘플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만난 가방제조업자에게 그는 얼기설기 스케치한 디자인을 건네며 이렇게 주문했다.

“폐가죽은 가방 몸통으로, 안전벨트는 가방끈으로 사용해 주세요.” 솜씨가 미덥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멋진 가방이 나왔다. 디자인도, 착용감도 나쁘지 않았다. 첫 단추는 잘 끼운 셈이었다.

 

 

 

 

▲ 모어댄의 제품은 50여개에 이른다. 올해엔 신발제품도 출시할 계획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진짜 도전은 그때부터였다. 무엇보다 폐차의 가죽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망網’을 만들어야 했다. 최 대표는 300여개 크고 작은 폐차장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폐차 가죽을 얻으려면 폐차장 주인들과 흥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쉽지 않았다. ‘폐기하는 데 돈이 들어가는 폐차 가죽을 그냥 가져가겠다’는 데도 그들은 비싼값을 불렀다. 시장 가격이 없으니, 부르는 게 값이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주인들을 찾아가 설득했지만 소용없었다.

돌발변수였다. 최 대표에겐 시간이 필요했다. 2013년 4월, 그는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창업 벌판’에 서있었다.

# 7장. 개미 구멍의 역할

창업가에게 시간, 그건 단순한 시간이 아니다. 부가가치를 찾지 못하면 1분 1초가 모두 ‘비용’이다. 폐차장 구석에 쌓여 있는 자동차 시트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그날도 최 대표는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째지는 음성이 뒤통수를 때린 건 그때였다. “당신 여기서 뭐하는 겁니까?” 돌아보니, 장지갑을 손에 쥔 사람이 눈총을 보내고 있었다. 최 대표는 굵고 짧게 답했다. 말에서 밀리면 한수 접어야 한다는 걸 경험으로 배운 터였다.

“가죽 상태를 보고 있었습니다. 왜 시트만 따로 분류해 놨나요?” 뜻밖에도 유연한 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시트 안에 있는 스펀지를 재활용합니다. 시트 가죽이 필요하십니까?”

 

 

 

 

▲ 최이현 대표는 창업하기 전 ‘당신의 직구 베프’라는 온라인 사이트를 운영했다. 해외직구 문제를 해결해주는 플랫폼이었다. 자본이 부족한 흙수저 창업가는 이중생활을 감내해야 한다. 창업은 환상이 아니다. [사진=오상민 작가]

 


단단한 둑방을 허무는 건 작은 개미 구멍이다. 얽히고설킨 실타래도 어쩔 땐 단번에 풀린다. 그날이 바로 그랬다. 장지갑을 든 사람은 시트의 스펀지를 재활용하는 업체의 사장이었다. 그에게 폐가죽은 ‘돈 먹는 애물단지’였다.

둘은 흥정하고 말 것도 없었다. 업체 사장은 가죽 떼는 비용(인건비 등)을 아껴서 좋았고, 최 대표는 가죽을 얻을 수 있어 좋았다. 말 그대로 ‘윈윈’. 폐가죽의 공급망을 확보하는 순간이었다.

최 대표는 다음 스텝을 밟았다. 자본금 500만원을 들여 회사를 세웠다. 사명은 모어댄(MORETHAN), 브랜드는 컨티뉴(Continew)로 정했다. 창업은 2015년 6월 5일 ‘환경의 날’에 했다. 업사이클링 업체다운 선택이었다.

# 8장. “평판이 먼저다”

 

 

최 대표는 창업을 거세게 밀어붙였다. 하지만 창업 후엔 전략을 바꿨다. ‘1분1초’를 비용이 아닌 투자로 봤다. 제품 론칭도 최대한 늦췄다.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평판’을 쌓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전략적으로 창업경진대회에 나갔다. SK이노베이션 사회적기업 육성팀 선정(2015년 7월), 아시아소셜벤처대회 대상(2015년 12월), 청년창업사관학교 우수졸업(2016년 2월), KPU 창업경진대회 대상(2016년 5월) 등 눈부신 성적표도 받았다.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면서 최 대표는 ‘주목 받는 CEO’로 우뚝 섰고, 모어댄은 ‘잠재력 있는 스타트업’이란 평판을 얻었다.
 

▲ 모어댄은 지난해 서울새활용플라자에 입주했다. 흥미롭게도 모어댄의 창업일은 환경의 날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시장의 테스트도 받았다. 2016년 2월 한 기부 플랫폼의 제안으로 가방 100여개를 리워드 상품으로 내놨는데, 단 5일 만에 품절됐다. 지갑 500개는 2시간 만에 팔려나갔다. 냉정한 시장이 최 대표에게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내고 있었다.

 

# 9장. 전략의 승리

“결정해야 할 땐 리더의 결단력이 필요하다.”
- AT&T 전 회장 마이크 암스트롱 -

2016년 3월. 드디어 결정의 순간이 왔다. 시장에 나가느냐, 더 숨을 고르느냐. 최 대표는 리더다운 결단을 내려야 했다. 주변 사람들은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라”고 조언했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품질이었다. “폐가죽 가방과 지갑으로 승부를 걸기엔 역부족이었어요. 직원들에게 ‘정비의 시간’을 갖자고 했죠.”

혁신은 거침없이 진행됐다. 폐가죽의 질감을 살리고 냄새를 없애기 위해 세척 과정에 변화를 줬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특수 세제’도 1년 반 만에 개발했다. 재단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자투리 가죽’의 폐기량도 줄여나갔다. 자투리 가죽을 분쇄한 뒤 다시 접착하는 방법(재조합가죽)을 택했다.

일손과 비용이 더 필요했지만 최 대표는 고민하지 않았다. “자동차 폐기물을 완전히 없애자는 게 애초 플랜이었어요. 우리가 왜 모어댄을 설립했는지 잊지 않기 위한 발걸음이었죠.”
 

▲ 대기업 출신인 강동현 과장(왼쪽)은 모어댄의 창업 초기부터 최이현 대표와 아름다운 동행을 계속하고 있다. 그의 역할은 기획 총괄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사회적기업 전환 작업도 서둘렀다. ‘가치 없는 이윤’을 없애겠다는 단단한 포부에서였다. 최 대표는 자신의 탈출구였던 옥스팜의 자연스러운 ‘기부문화’를 모어댄에 이식하고 싶었다.

특히 ‘일자리 창출’에 관심을 쏟았다. 경단녀ㆍ탈북자 등 사회적 약자를 직원으로 고용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회사 직원 11명 중 절반은 경단녀다. 모어댄은 지난해 10월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그렇다고 도전을 멈춘 건 아니었다. 숱한 경진대회에 줄줄이 출사표를 던졌다. ‘도전 K-스타트업 2016(6~9월)’은 대표적이었다. 이 대회는 교육부ㆍ미래부ㆍ국방부ㆍ중기청(당시)에서 각각 선발된 100개 팀이 승부를 벌인 경연의 장이었다.

경쟁은 치열했다.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제품들이 진검승부를 벌였다. 3개월간의 결전 끝에 모어댄은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최 대표는 “운이 정말 좋았다”고 자평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런 제품을 만들겠다’가 아니라 ‘이 제품을 이렇게 개선했다’고 심사위원을 설득한 게 주효했다.

더 놀라운 건 ‘좋은 나비효과’였다. “도전 K-스타트업이 끝난 후 완성차 업체의 벤더들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재고 가죽이 많은데, 가져가도 괜찮다는 내용이었죠. 얼마 전까진 폐가죽조차 얻기 힘들었는데, 놀라운 변화였어요.”

 

 

 

▲ 모어댄의 직원 11명 중 절반은 경단녀다. 고양스타필드에 있는 모어댄 매장에서 경단녀 직원이 제품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자연스럽게 모어댄의 제품군은 빈티지(폐가죽), 자투리(재조합가죽), 오리지널(새가죽)로 다각화했다. 원재료의 공급망이 더 넓어진 건 ‘덤’이었다. 2016년 9월 최 대표는 여세를 몰아 제품을 본격 출시했다. 신세계 고양 스타필드에 오프라인 매장을 낸 것도 그 무렵이었다. 전략의 승리였다.

# 10장. 가지 못할 길은 없다

그로부터 1년 4개월. 모어댄의 가방ㆍ지갑 제품은 50여개로 늘어났다. 올해는 신발류를 만들 계획이다. 품질은 여전히 최고를 지향한다. 모든 가방의 제작을 30년 경력의 장인에게 맡긴 이유다.

그 덕분인지 소비자 만족도가 높고, 반품이 거의 없다. 주문량은 월 500건(온ㆍ오프라인 포함)을 훌쩍 넘는다. 최 대표는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서 모어댄 가방을 멘 사람들을 보는 게 꿈”이라면서 “꿈을 이룰 때까지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최이현 대표는 폐가죽을 활용한 유니크한 제품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시장의 밑바닥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모어댄은 탄생하지 못했다. [사진=오상민 작가]

 


실제로 모어댄은 아직 방심할 때가 아니다. 다른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약한 인지도와 넉넉지 않은 곳간은 풀기 힘든 걱정거리다. ‘한국시장에서 스타트업은 장수하기 힘들다’는 편견도 실력으로 털어내야 한다. 무서운 포식자(대기업)가 언제든 시장을 삼킬 수 있다는 점도 위험 요인이다.

“두렵지 않아요. 갈 길은 멀지만 가지 못할 길은 아니니까요.” 최 대표는 희망을 곱씹었다. 체념 안 되는 분함, 납득 안 되는 억울함 따위엔 무릎을 꿇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혔다. 그가 당찬 미소를 조용히 머금었다. 흙수저 CEO가 거기 서있었다.

글=이윤찬 더스쿠프 기자
chan4877@thescoop.co.kr 

사진=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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