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를 사랑하는 중요한 방식

▲ 부자들은 돈이 아까워서 안 쓰고, 서민은 돈이 없어서 못 쓴다. 소비가 무너진 이유다.[사진=아이클릭아트]
미국 서부 개척시대에 태어나 쇼 비즈니스의 개척자로 성공한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의 실화를 다룬 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 이 영화는 화려한 무대와 심금을 울리는 쇼 이상의 메시지를 전한다.
 
최고의 쇼맨이자 사기꾼으로 불리던 바넘은 사회에서 괄시받던 밑바닥 인생들을 끌어모아 공연을 펼친다. 극중 OST ‘디스 이즈 미(This is Me)’는 “온 세상이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해도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감을 얻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모든 사람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강조하는 이 영화는 물질적인 성공보다 따뜻한 가족과 헌신적인 사랑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살면서 가장 궁금한 것 중 하나가 왜 부자가 돈에 대해 안절부절못하느냐다. 손자까지 돈을 써도 남을 규모의 부자가 돈을 못쓰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개인 재산이 수조원에 달하는 재벌 회장이 늘 돈타령을 하는 것을 보고 아연했던 경험이 있다. 연금으로 넉넉한 생활을 해도 되는데, 무리하게 적금 들고, 부동산 사느라 쪼들리는 70대 선배도 봤다. 뇌물수수로 재판을 받는 정치인이나 공직자 대부분은 개인 재산이 탄탄하다.  
 
한국의 부자들은 돈을 잘 못 쓴다. 나이 들면 더 돈에 쩔쩔맨다. 부자들은 돈이 아까워서 안 쓰고, 젊은이와 서민은 돈이 없어서 못 쓴다. 그러니 국가경제의 중요한 축인 소비가 무너졌다. 특히 700만명이 넘는 베이비 부머(1955~1963년생)들은 이 땅에서 가장 자산을 많이 축적한 세대로 꼽힌다. 이들이 은퇴기에 접어들었는데 불안감 때문인지 지갑을 아예 닫고 사는 사람이 많다. 국가 사회로 볼 때 큰 문제다.
 
누구나 빈털터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안고 산다. 소년 출세, 중년 상처, 노년 무전…. 누군가에게 들은 세대별 고달픈 인생의 세가지 유형이다. 너무 빠른 성공은 자칫하면 화려했던 과거의 늪에 빠져 우울한 인생을 보내기 십상이다. 중년에 배우자를 잃는 것처럼 끔찍한 일도 없다. 재혼을 한다고 해도 자칫하면 가정불화로 이어져 인생후반이 엉망이 되기도 한다. 소년 출세, 중년 상처의 고통보다도 노년 무전은 더 비참하다. 노년기에 돈은 신분과도 같다. 늙어 돈이 없으면 자식에게 외면당하고 친구들과 멀어지고 궁핍한 여생을 보내야 한다는 불안감이 크다. 인생이나 드라마나 마무리가 중요하다.
 
행복하게 사는 연습 

돈을 모을 때는 행복해 하는 반면 지출할 때는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다. 돈을 모으는 데에만 익숙한 나머지 ‘소비=재산 감소’라는 생각이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사에서 주는 법인카드로 살던 삶에 익숙하다 보니 개인 재산은 마치 자신의 피와 살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꽤 많은 공무원연금을 받는 고위공직자 출신이 퇴직 후 법률회사나 기업에서 로비스트를 하려고 줄을 대는 것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국내 최대그룹에서 40년 가까이 근무하고 부회장으로 은퇴한 어느 지인은 “물탱크(재산)가 꽤 큰데도 물이 새는 수도꼭지(지출)만 눈에 보이더라”며 한숨을 쉬었다. 어쩌면 이 시대의 한국인은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연습이 부족한 탓이 아닌가 싶다. 
 
미국의 재무설계사 스테판 폴란과 마크 레빈은 저서 「다 쓰고 죽어라」에서 죽기 전에 한푼도 남기지 말고 다 쓰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내가 죽으면 돈도 소용이 없고, 자식에게 거액을 상속한다고 자식이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장의사에게 지불할 돈만 남겨두고 현재 삶의 행복을 위해 돈을 다 쓰라는 얘기다. 돈을 더 모으는 게 목표가 아닌 세상이 돼야 행복의 가치가 생기고 가족과 공동체가 중요해진다.
 
우리는 모두 처음 늙어보는 사람들이다. 돈이 중요하고, 돈 없는 인생은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미국 앨프리드대 철학과 교수인 엠리스 웨스타콧은 저서 「단순한 삶의 철학」에서 소박함에 대한 집착을 경고했다. 지나치게 절약하는 삶은 오히려 불행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부자의 척도는 돈을 얼마만큼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돈을 얼마나 멋지게 지출했느냐로 바꿔야 한다.
 
위대한 쇼맨이었던 바넘은 돈과 성공을 위해 마구 달렸다가 하루아침에 공연장 건물이 불타면서 처절하게 망한다. 그러나 다시 재기하는 과정에서 그가 무시했던 공연단 밑바닥 인생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가족의 사랑과 동료애에 눈을 뜬다. “다른 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진정한 예술”이라는 그의 말이 마지막 자막에 흐른다. 적절히 돈을 쓰는 것은 곧 자신과 가족, 그리고 공동체를 사랑하는 중요한 방식이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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