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인셉션 ❻

놀런 감독의 ‘인셉션’을 딱히 하나의 ‘장르’로 분류하긴 어렵다. 공상과학 영화이면서, 범죄 스릴러물 같기도 하고, 액션이나 판타지 블록버스터인 듯하다가 심리추리극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잘 차려진 뷔페처럼 거의 모든 종류의 먹거리가 진열돼 있다. 때문에 영화의 ‘정체성’이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현시대는 사람들 대부분이 ‘다중 정체성(Multiple Identity)’을 지닌 채 살아가고, 손바닥만 한 핸드폰 하나에 세상 모든 기능이 탑재돼 있다. 사무기기도 모두 ‘복합사무기기’고 자동차의 정체성이 ‘기계류’인지 ‘전자제품’인지 판단하기도 힘들다. 이렇듯 ‘복합성’의 시대에 혼란스러운 ‘정체성’은 영화 ‘인셉션’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어쩌면 ‘인셉션’은 가장 현대적인 영화라 할 수도 있다. 
 
뷔페식당에서 자신의 기호와는 무관하게 온갖 ‘장르’의 음식을 섭렵하듯 우리는 ‘인셉션’에서 놀런 감독이 차려낸 갖가지 영화적 장르를 만난다. 배는 부른데 무엇을 먹었는지 잘 모르겠다. 많은 것을 보았는데 무엇을 보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뷔페식당에서 무엇으로 배가 불렀든 마지막은 대개 커피 한잔으로 마감하듯, ‘인셉션’의 마지막 코스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문제로 정리된다.
 
영화의 마지막, 코브 일당은 천신만고 끝에 거대 에너지 그룹의 젊은 상속자 로버트 피셔의 무의식 속에 ‘나는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을 심는 데 성공한다. 피셔는 결국 자신이 상속받은 에너지 그룹을 해체시키든 경쟁사인 사이토 회장의 회사에 지분을 팔아넘기든 손 털고 자신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 코브는 꿈속에서 총상을 입고 깨어나지 못한 사이토 회장을 찾아 꿈속을 헤맨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사이토 회장의 승리다. 프로젝트를 완수한 일당은 모두 현실로 돌아가지만, 코브는 1단계 꿈속에서 총상을 입고 깨어나지 못한 사이토 회장을 찾아 홀로 꿈속을 헤매고 다닌다. 그가 박애주의자이거나 고객사랑이 넘치는 업자여서가 아니라 사이토 회장을 무사히 현실로 데려가야 프로젝트 성공의 대가로 코브 자신의 살인죄 수배령이 풀리기 때문이다. 
 
현실에서의 10시간은 1단계 꿈속에서는 1주일이고, 2단계 꿈속에서는 6개월에 해당하며, 3단계까지 내려간 꿈속에서는 10년에 해당한다. 놀런 감독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는 수밖에 없다. 아인슈타인은 E=mc2로 난해하게 표기되는 ‘상대성 이론(Theory of Relativity)’을 마치 초등학교 1일 교사로 불려간 천재과학자처럼 매우 친절하게 설명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화를 보는 2시간은 1분처럼 지나가지만, 괴로운 수업시간 2시간은 이틀처럼 길다.” 놀런 감독은 몰라도 아인슈타인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아인슈타인의 이론대로 모든 것이 마음먹은 대로 굴러가는 ‘꿈속’에서는 10년이 1주일처럼 빨리 흘러갈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힘들게 사는 것이 지겹도록 오래 사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사이토 회장은 현실로 돌아가지 못하고 아마도 40~50년쯤 림보에 빠져 있었던 듯하다. 코브는 일본 해안가 어느 성에서 족히 100살은 돼보이는 사이토 회장과 조우하고 그를 현실로 데려온다. 사이토 회장은 약속대로 미국 정부에 손을 써서 코브의 수배령을 풀어준다. 
 
수배령이 해제된 코브는 비로소 아이들을 찾으러 LA 공항을 통해 고향 미국에 입국한다. 코브로서는 해피엔딩인 셈이다. 공항에서 코브는 문득 현실과 꿈을 분간해주는 장치인 작은 팽이(토템)을 꺼내 돌려본다. 일년 내내 해외로 돌아다니는 해외영업사원이 문득문득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헷갈리듯, 직업상 허구한 날 꿈속을 돌아다니는 코브도 현실과 꿈이 헷갈린다.
 
▲ 자신이 행복하다면 그것이 꿈속이든 현실이든 머물면 그만이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그것이 현실이라면 팽이는 얼마간 돌다 비틀거리며 쓰러질 것이고, 그것이 꿈속이라면 팽이는 지칠 줄 모르고 돌 것이다.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돌아가는 팽이를 응시하던 코브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팽이의 ‘판정’까지 기다리지 않고 팽이를 쓸어 주머니에 넣고 아이들을 만나러 공항을 빠져나간다.
 
어쩌면 코브의 선택이 현명하다. 우리는 가장 행복한 순간 ‘이것이 꿈이라면 영원히 깨지 말아라’고 기원한다. 자신이 행복하다면 그것이 꿈속이든 현실이든 무슨 상관이 있을까. 코브는 ‘이게 꿈이냐 생시냐’고 굳이 볼을 꼬집어보는 우愚를 범하지 않는다. 자신이 행복하고, 행복할 수 있는 상태라면 그것이 꿈속이든 현실이든 그곳에 머물면 그만이다. 
 
지금 코브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두 아이들이 있는 세상에 있다. 그것이 어떤 세상이든 그것이 코브의 세상이다. 남들에게 폐만 끼치지 않는다면 모두 ‘자신의 세상’에서 살아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자신의 꿈속에서 행복한 사람들을 빨리 깨어나라며 흔들어대고 깨워야 속이 후련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듯하다. 코브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세상이 꿈이든 현실이든 코브가 그곳에서 행복하기를 응원한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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