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 큰 로봇세금의 대안 ‘머신세금’

‘로봇세(Robot Tax)’가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로봇세의 개념조차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찬반 입장이 갈리고 있다. 먼저 개념을 내놓은 유럽이 다양한 미래 대안을 논의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로봇 도입률이 상당히 높다는 점이다. 일부에서 “로봇세보다 광범위한 의미를 가진 ‘머신택스(Machine Tax)’를 논의해도 모자랄 판인데, 세금 논쟁으로 끝날까 걱정이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머신택스의 본질을 해부해봤다.

▲ 로봇세는 사회보험재정 확충 논란에서 비롯된 ‘머신택스(Machine Tax)’에선 나온 개념이다.[사진=뉴시스]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인력을 로봇이나 기계로 대체하는 곳들이 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에는 로봇이 커피를 타주는 로봇카페가 등장했고, 롯데월드타워 31층에는 무인편의점 세븐일레븐 시그니처가 들어섰다. 주유소는 점차 셀프주유소로 바뀌고 있다.

이런 추세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세계로봇연맹(IFR)이 2016년 20개국(일부는 대륙으로 묶음)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제조업 노동자 1만명당 로봇 도입률이 1위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로봇세(Robot Taxㆍ노동력 대체 로봇에 과세하는 것)’를 만지작거리는 이유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생산성 향상 시설 투자세액공제’를 줄이는 세법개정안을 내놨다. 미국의 IT전문지 지디넷은 “자동화가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세법을 바꾼 조치”라면서 “세계 최초의 로봇세 도입”이라고 평가했다. 직접적으로 로봇에 세금을 매기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효과를 불러올 수 있는 변화로 본 거다.

기획재정부도 언론을 통해 “생산성 향상시설 투자세액공제를 줄이는 건 초기 단계의 ‘한국형 로봇세’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액공제 축소는 죄다 로봇세인가”하는 반박도 나오지만, 한편에선 “정부가 로봇세를 입에 올렸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로봇세는 일종의 세금으로 인식된다. 이 때문에 세액공제 축소와는 달리 로봇에 직접 세금을 매긴다고 하면 기업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세금 이슈는 ‘이데올로기 논쟁’으로 확전되곤 했다. 종합부동산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증여세, 부유세 등 대부분의 세금이 인상ㆍ인하될 때마다 이런 논란을 겪었다.

로봇세를 두고도 찬반이 분명하다.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는 찬성, 기업과 보수를 중심으로는 반대편에 서있다. 로봇세가 이데올로기 논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니다. 로봇세를 세금으로 인식한 미국의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언론 기고를 통해 “모바일뱅킹이 은행원 일자리를 줄였지만, 이런 기술에 과세를 하지는 않았다”면서 “로봇을 일자리 약탈 주범으로 몰아 과세할 근거가 약하다”고 주장했다.

머신택스에서 뻗어나온 로봇세


하지만 사실 로봇세는 유럽을 중심으로 ‘머신택스(Machine Tax)’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이는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해 생산활동인구가 줄어들던 1980년대에 등장한 개념인데, 등장 배경이 흥미롭다. 유럽 선진국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사회보험제도가 탄탄하게 갖춰져 있다. 이 시스템은 노동자가 내는 보험료를 통해 유지된다. 돈을 버는 이들이 많아야 사회보험재정이 탄탄해진다는 얘기다.

그런데 인구 고령화 등에 따른 생산인구의 감소는 사회보험재정을 악화시킨다. 새로운 사회보험재정 충족 수단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거다. 그래서 나온 논리가 머신택스다. 노동(인건비)이 자본(로봇이나 기계 등)으로 대체되니까 사회보험재정 의무도 자본으로 이전해야 하자는 거다. 말하자면 노동에만 부여해온 사회보험재정 납부의 의무를 서서히 자본으로 이전하는 작업인 셈이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험은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대비한다는 개념이 강하다. 세금은 정부가 강제로 받아가는 돈이자 사라지는 돈이라는 성격이 짙다. 어떤 개념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누가 부담하느냐’는 문제에서 민감한 정도가 달라진다. 사회보험재정 충당이라는 명목에서 등장한 머신택스의 광범위한 프레임이 세금으로 인식되는 로봇세보다 저항을 덜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보험재정 구멍 나면 복지시스템 붕괴


게다가 우리나라는 복지예산을 더 늘려 사회안전망을 더 탄탄하게 구축해야 한다는 데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매년 전체 예산에서 복지예산 비중도 점점 늘고 있다. 2016년 기준 4대 보험 합산 보험료는 약 132조원으로 전체 본예산(386조원)의 34.4%에 해당한다.

일자리 감소로 보험료가 줄어들었을 때 타격이 크고, 사회보험제도 시스템이 무너질 수도 있다. 지출 복지예산의 상당 부분은 고정비다. 재원 배분배 논란도 여전하다. 때문에 사회보험재정의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운영을 고민해봐야 한다는 얘기다. ‘세금’을 전제로 한 대안 마련이 아니라 ‘대체 보험료’를 개선하는 움직임이 필요한 이유다.

이정우 인제대(사회복지학) 교수는 “우리는 지금 로봇세에 매몰돼 세금 논쟁을 벌일 때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안을 논의해야 할 때”라면서 “사회보험재정 건전화와 복지의 질 향상을 추구하면서도 국민 저항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을 찾기 위해서라도 앞서 유럽이 논의했던 머신택스를 제대로 연구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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