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비트코인 분리론

“가상화폐 빼고 블록체인만 육성하겠다.” vs “어불성설이다. 가상화폐 거래가 없는 블록체인은 발전이 불가능하다.” 가상화폐 거품론에 이어 새로운 논쟁이 붙었다. 블록체인에 가상화폐가 꼭 필요한가다. 정부는 투기 요소가 있는 가상화폐는 빼고 싶은 눈치다. 반면 블록체인 개발자들의 시선은 다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이 논쟁의 중심에 펜을 집어넣었다.

▲ 정부는 “블록체인과 가상화폐를 구분하겠다”고 말했다. 블록체인 개발자들은 이 말이 레토릭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사진=아이클릭아트]

“블록체인은 데이터의 안전성과 거래 효율을 높이는 미래 유망기술이다. 전산업 분야 확산을 위한 시범사업 및 핵심기술을 개발하겠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18년 새해 업무보고 중 일부다. 블록체인은 가상화폐 시장의 기반 기술이다.

지금껏 가상화폐 시장에 강경한 규제 메시지를 던지던 정부가 태도를 바꾼 걸까. 아니다. 단서를 붙였다. “블록체인과 가상화폐는 별개 개념으로 보고 있다. 가상화폐는 관계 부처 협의 하에 부작용을 면밀하게 주시를 하고 있다. 명확하게 구분해서 정책을 준비 중이다.”

정부의 설명대로 블록체인은 4차 산업혁명의 유망 기술로 꼽힌다. 무엇보다 모든 거래 당사자가 (거래)장부를 나눠 보관해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 중앙에 대규모 인프라가 없어도 운영에 차질이 생기지 않는다. 해킹 걱정도 없다. 수많은 곳에 흩어진 (거래)장부를 해커가 동시에 해킹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서다.

 

가상화폐 비트코인은 이 기술의 대표 응용사례다. 중앙은행과 같은 발행자가 없고, 관리자도 없는 비트코인은 안전하게 거래내역을 저장할 방법이 필요했고, 블록체인 기술을 택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블록체인과 가상화폐를 구분한 이유는 간단하다. 가상화폐 시장이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가상화폐는 최근 1년간 ‘광풍’에 비유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2013년 10만원에 불과하던 비트코인의 단위당 가격은 올해 2000만원을 돌파했다. 거품 논란이 일었다. 가격 변동폭이 크고 투기 수요가 있다는 게 문제였다.

정부는 거품이 꺼질 때 감내해야 할 후유증이 막대하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규제 강도를 두고 부처간 혼선을 빚으면서 가상화폐 가치가 하락하자 일부 투자자들은 정신병을 호소하기도 했다. ‘비트코인 블루(비트코인 우울증)’다.

정부 정책은 일단 유효해 보인다. 혁신기술인 블록체인엔 투자를, 문제점이 숱한 응용사례 가상화폐는 옥죄는 ‘투트랙 전략’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블록체인 업계는 이 전략이 정치적 수사修辭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블록체인은 가상화폐와 분리할 수 없다. 가상화폐 거래가 수반되지 않는 블록체인의 발달은 불가능하다.”

무슨 말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블록체인의 속성을 숙지해야 한다. 블록체인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공개형’과 ‘폐쇄형’이다. 공개형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블록체인 네트워크다. 화폐 구입을 원하는 불특정다수가 시스템에 가담할 수 있게 열어 놓은 비트코인이 대표 사례다.

가상화폐 규제 기조 유지

폐쇄형 블록체인은 다르다. 특정 주체가 내부 전산망을 블록체인으로 관리하는 방식이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블록체인을 활용하겠다”고 선언하는 건 폐쇄형 쪽이다. 이 네트워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관리 주체의 승인이 필요하다. 참여자마다 볼 수 있는 장부를 제한할 수도 있다. 기업 기밀을 아무나 들여다보게 놔둘 순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공언한 ‘블록체인 기술 개발’은 폐쇄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가상화폐에 관련된 사람들의 주장이 엇갈린다는 점이다. 블록체인 스타트업 체인파트너스의 신민섭 팀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폐쇄형 블록체인은 혁신이 아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인프라 없이도 시스템이 유지된다는 블록체인의 원래 목표가 퇴색됐기 때문이다. 이 목표에 들어맞는 건 공개형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 개발자들이 꿈꾸는 세상은 탈脫중앙화다. ‘불특정다수’가 참여하는 공개형 블록체인은 탈중앙화에 적합하다. 하지만 여기에도 맹점이 있다. 공개형 블록체인에 불특정다수를 끌어들일 방법이 없다.

비트코인 창시자 나카모토 사토시도 이런 딜레마에 빠졌고, 결국 ‘경제적 보상’에서 해법을 찾아냈다. 참여자 중 일부가 복잡한 알고리즘 연산을 풀어(노동) 새로운 블록을 생성하면 그 보상으로 비트코인을 줬다. 이 과정을 채굴이라고 부른다. 나카모토의 전략은 통했다. 채굴 가능한 비트코인의 총량 중 80%가 벌써 누군가에 의해 채굴됐다. 그만큼 많은 참여자가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참여했다는 거다. 가상화폐 원조 비트코인의 성공은 1300개가 넘는 가상화폐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신민섭 팀장은 “공개형 블록체인에는 네트워크에 참여자를 끌어들일 동기가 없기 때문에 가상화폐라는 보상책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면서 “블록체인과 가상화폐는 뗄 수 없는 사이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이 설명도 모순이다. 공개형 블록체인의 유인책이 ‘화폐’여야 하는 건 고정관념일 수 있어서다.

가상화폐가 필요한 이유

송치호 이베트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가상화폐 거래가 활성화되지 않아도 블록체인 기술은 성장할 수 있다”면서 “대중들이 필수적으로 써야 하는 ‘킬러 애플리케이션(앱)’이 등장한다면 그 속도는 더 빠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블록체인 도입을 간절히 원하는 이해관계자가 있다면 더 간단하다. 가상화폐에 욕심을 두지 않아도 블록체인 도입만으로 삶이 나아질 수 있는 분야다. 이들은 금전거래 없이도 어떻게든 네트워크를 넓히려고 노력할 게 뻔하다. 이때는 유인책이 다양한 형태로 등장할 수 있다. 가상화폐 없는 블록체인, 불가능한 얘기만은 아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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