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준 포스코 회장의 ‘PTKP 고민’

2014년 이후 줄곧 적자일로를 걷던 포스코의 인도네시아 법인 PT크라카타우 포스코(PTKP)가 4년 만에 흑자전환했다. 취임하자마자 애물단지를 떠안아야 했던 권오준 포스코 회장으로선 한숨 돌릴 수 있게 된 셈이다. 하지만 아직 권 회장이 풀어야 할 숙제는 숱하게 많다. PTKP의 지속적인 수익성 확보를 위해선 하공정 설비투자가 받쳐줘야 한다.

▲ PT크라카타우 포스코 제철소는 가동 이후 4년 만인 2017년에 첫 흑자를 기록했다.[사진=포스코 제공]

지난해 7월 권오준(68) 포스코 회장은 청와대 상춘재에 참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업별 애로 사항을 듣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구본준 LG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손경식 CJ 회장 등 기업인들이 자리를 메웠다. 권 회장의 얼굴엔 비장함이 감돌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당분간 미국에 수출하는 것은 포기했다. 중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여러 대책을 세우고 있다.”

이 말은 미국의 대안으로 동남아ㆍ중동시장 공략의 물꼬를 틀겠다는 발언으로 받아들여졌고, 업계 관계자들은 인도네시아 법인 ‘PT크라카타우 포스코(PTKP)’를 떠올렸다. 업계 한 관계자는 “PTKP 제철소는 착공 당시부터 이슈가 많았는데 최근 들어서는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면서 “이번 기회에 포스코가 PTKP 제철소의 활용을 극대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PTKP는 2010년 포스코와 인도네시아 국영 철강기업 PT크라카타우스틸이 설립한 합작법인이다. 포스코와 PT크라카타우스틸의 지분은 각각 70%, 30%다. PTKP 제철소 건설에 착수한 건 이듬해 7월이다. 총 3조여원의 자금이 투입됐다. 포스코 고유의 역량과 기술로 해외에 건설한 첫번째 일관제철소(제선ㆍ제강ㆍ압연 세 공정을 모두 갖춘 제철소)였다.

당연히 큰 기대를 불러 모았다. 당시 포스코는 “중국ㆍ베트남ㆍ인도네시아ㆍ인도를 잇는 철강벨트를 완성했다”면서 “철강소비 잠재력이 큰 동남아와 중동시장을 공략할 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는 PTKP 제철소 가동 첫해부터 영업이익 흑자를 달성할 거란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

 

그로부터 약 30개월만인 2013년 12월 PTKP 제철소에 첫불을 땠다. 본격적인 가동을 알리는 화입식火入式이었다. 그런데 조짐이 좋지 않았다. 준공 직후 PTKP를 방문했던 업계 한 관계자는 “당시 기자들의 기사 작성을 위해 공간 하나를 따로 마련해놨는데, 이곳을 운용하기 위해 공장의 다른 곳의 전력을 차단해야 했다”면서 “그만큼 낙후된 지역이라 전력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터졌다. 제철소가 가동된 지 약 한달만인 2014년 1월 고로에 균열이 생기면서 가동이 중단됐다. 이 때는 권오준 회장이 막 취임한 시기(2014년 3월 14일)였다. 이를 시작으로 PTKP는 권 회장 임기 내내 말썽을 부렸다. 2014년 말엔 현지 직원 7명가량이 부상을 입는 폭발사고도 일어났다.

설비가 불안정하고 조업이 원활하지 않은 탓에 실적도 기대치를 밑돌았다. 제철소 가동 첫해인 2014년 2508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부진한 실적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2015~2016년엔 각각 4225억원, 2184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포스코는 수율이 불안한 데다 러시아ㆍ중국산 저가 수입재가 유입된 게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가동 4년 만에 첫 흑자

적자일로를 걷던 PTKP는 2017년 처음으로 수익성을 회복했다. 포스코에 따르면 PTKP는 누적 판매량 1000만t을 달성하면서 128억원가량의 영업이익을 냈다. 하지만 업황 회복, 원자재 가격 하락 등 외적인 요소가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이지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한 근본적인 문제가 해소된 건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취임 직후부터 권 회장을 괴롭혀온 PTKP의 후속 투자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김미송 케이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실적이 회복됐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하공정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실적 개선폭은 한정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PTKP 제철소에서 생산하는 쇳물ㆍ슬래브ㆍ후판 등은 원자재ㆍ반제품에 불과해 열연ㆍ냉연 등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하공정 설비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이익을 내기 어렵다는 얘기다.

PTKP의 하공정 투자 관련 얘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5월 22일 인도네시아 철강 콘퍼런스에 다녀온 권 회장은 “(PTKP 후속 투자와 관련)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도움을 주고 있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내 투자가 성사될 거란 기대감도 나왔다. 하지만 그 이후 별다른 진척은 없었다.

포스코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측과의 공식적인 협의가 진행되고 있는지에 관해선 확실한 답을 하지 않았다. “현지 철강사와의 협력관계를 통해 하공정 투자를 확대해 수익성을 제고할 것으로 기대한다. 공식적으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 PT크라카타우 포스코의 하공정 투자는 권오준 회장이 풀어야 할 과제 중 하나다.[사진=뉴시스]
업계 한 관계자는 “하공정 투자 얘기는 PTKP 제철소 착공 당시부터 지속적으로 나왔던 얘기인데, 아직까지 구체적인 진행 상황이나 답변이 없다는 건 협의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방증으로 풀이할 수 있다”면서 “최근엔 PT크라카타우 스틸이 독자적으로 투자하거나 일본 철강사와 협의 중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국내 철강사들은 내수 비중이 높은 반면 포스코는 내수와 해외 매출 비중이 5대5”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해외 비중이 큰 만큼 포스코는 글로벌 무역 상황에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다. 지금처럼 미국 통상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선 동남아 등으로 시장을 다각화하는 게 중요하다. 하공정 설비가 없는 PTKP는 반쪽자리에 불과할 수 있는데, 포스코로선 다소 아쉬울 수 있다.”

남은 임기에 해외투자를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권 회장. 말 많고 탈 많은 PTKP의 후속 투자를 이끌어내는 게 급선무다. 미국의 통상압박이 거세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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