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깨는 용기

▲ 침묵의 카르텔을 깨려면 세상을 바꾸려는 용기가 필요하다.[사진=뉴시스]

공자는 노나라 사구(형벌이나 도난 등의 사안을 맡은 벼슬) 직책을 맡고 있다가 느닷없이 사직한다. 제사가 끝났는데도 자신에게 제사 고기가 돌아오지 않자 쓰고 있던 면류관도 벗지 않은 채 노나라를 떠나버렸다. 공자가 자신이 그만둔 이유에 대해 침묵했으므로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뒷담화를 해댔다. 아무리 고기를 좋아했기로서니 그만한 일로 사표까지 내느냐고….
 
그러나 제자인 맹자는 달리 해석한다. 공자는 날로 수렁에 빠지고 있는 노나라를 혹독히 비판하고 떠나고 싶었지만 모국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려 고민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야반도주하듯 떠나버리면 그 또한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조국을 사랑하되, 그 조국을 비판해야 하는 딜레마 속에서 ‘고기’라는 핑계를 찾은 공자의 사려 깊은 행위라는 설명이다. 공자는 불필요한 과장이나 허풍(overstatement)을 비판하고, 침묵과 삼가말하기(understatement)를 실천한 위대한 성인이었다.
 
공자는 「논어」 안연 편에서 “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고 갈파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피하기만 하면 고칠 수 없다. 공자가 21세기에 다시 태어난다면 촛불을 들어서라도 당당히 잘못을 밝히고 고치라고 권했을 게다.
 
길을 걷다 보면 담배꽁초를 마구 버리거나 광고전단지를 길바닥에 뿌리는 이들을 보게 된다. 횡단보도는 아예 무시하고, 전용차선이나 갓길을 버젓이 달리는 승용차도 적지 않다. 지하철 객실에서 임산부석에 버젓이 앉거나 술이 취해 다른 승객과 시비를 벌이는 이도 때때로 마주친다. 속은 부글부글 끓어도 용기가 없어서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못하곤 한다. 공연히 시비 거리를 만들기 싫은 까닭이기도 하고, 자칫 봉변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미투(Me Too) 운동처럼 만약 여러 사람이 함께 나서준다는 생각이 뒷받침된다면 필자처럼 ‘소심한’ 사람도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 게다. 
 
들불처럼 퍼진 Me Too 운동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시작된, 자신이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는 ‘#Me Too(미투ㆍ나도 당했다)’ 운동의 한국판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017년의 인물로 ‘침묵을 깬 사람들’을 선정했다. 성폭력 피해 고발운동인 미투 캠페인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표지에 실었다. 미투 캠페인은 세계 80여 개국으로, 방송 연예계뿐만 아니라 정치ㆍ비즈니스 분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퍼지고 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을 폭로한 현직 검사의 용기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좀 더 명확한 사실관계는 검찰조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단순한 성추행 조사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검찰은 과거 정권에서 벌어진 국정농단의 손과 발이자, 최대 비호세력이었으면서도 반성은커녕 안면을 싹 바꾼 채 적폐청산 수사를 총지휘하고 있다.

아무리 수사를 열심히 해도 국민에게 신뢰를 얻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검찰 내부에서 아래로부터 시작되는 정풍운동이 일어나 묵은 때를 벗기고, 새 옷으로 갈아입자는 외침이 번졌으면 한다. 청와대ㆍ검찰ㆍ국정원ㆍ국세청과 같은 권력기관 내부에서부터 ‘Me Too’ 외침이 나와야 한다.  
 
잇단 대형 참사나 우리 안에 켜켜이 쌓여있는 부조리를 보면서 절감한다. 누군가 호응해주지 않으면 비슷한 비극은 반복되고 잘못된 작은 일상 하나 바로 잡기가 쉽지 않다. 시민 한명 한명이 나서서 “비상계단 앞에 물건을 쌓아두면 안 되지 않느냐”고 건물주에게 따지고 곧바로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기업에서도 조직 내 잘못된 관행이나 부정부패에 대해 용기를 내서 폭로해야 한다. 감싸주고, 덮어두면 세상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용기 있는 이웃이나 동료 부하의 행동을 괜한 오지랖이라 생각하거나 배신자라고 비난하지 말고, “나도 같은 생각(미투)”이라고 합창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세상이 바뀐다.
 
2016년 10월부터 광화문을 가득 메운 촛불집회는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 모든 것을 새로 바꾸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다. 적페청산이라는 미명 아래 과거 정권을 뒤지고 정적들을 처벌하는데 그친다면 민심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이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 촛불이 들불로 바뀌어야 오래도록 활활 타오른다. 침묵의 카르텔을 깨려면 세상을 함께 바꾸겠다는 용기가 필요하다. 서지현 검사 한 사람에서 끝날 일이 아니다. 새로운 나라 건설을 위해 모두가 ‘Me Too’를 소리 높여 외치자.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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