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떠밀린 보험설계사의 눈물

벼랑 끝에 내몰렸던 현대라이프생명보험이 현대차그룹의 지원으로 급한 불을 끄는 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현대라이프생명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다. 설계사의 마찰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개인영업의 대안으로 선택한 법인영업의 성공 가능성도 불투명해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회사 책임을 힘 없는 보험설계사에게 떠넘긴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더스쿠프가 현대라이프생명보험의 구조조정 논란을 취재했다.

▲ 현대라이프생명보험이 실적부진의 책임을 보험설계사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유상증자 투입자금 4200억원, 누적 손실액 2626억원. 현대차그룹 계열사 현대라이프생명보험이 손에 쥔 초라한 성적표다. 현대라이프생명은 2011년 2283억원에 녹십자생명을 인수하면서 생명보험 업계에 뛰어들었다.

시장의 평가는 괜찮았다. 현대차그룹의 브랜드 가치를 생각할 때 생명보험 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이 제기됐다. 게다가 현대카드의 혁신을 주도한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현 부회장)이 현대라이프생명의 출범을 진두지휘하고 이사회 의장까지 맡으면서 업계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정 부회장은 출범 당시 “생보업계 톱3 진입” “2년 안에 흑자 달성” 등을 공언하면서 자신감을 내비쳤다.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실적은 곤두박질치기만 했다. 현대라이프생명의 당기순이익은 2012년 -313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이후 2013년 -316억원, 2014년 -871억원, 2015년 -485억원, 2016년 -198억원 등 손실이 쌓였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당기순손실액은 443억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건전성 기준인 지급여력비율(RBC)도 2012년 231% 이후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러자 현대라이프생명은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했다. 2012년과 2014년 각각 1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했고 2015년에는 대만의 푸본그룹에 지분 48. 62%를 내주며 2130억원 규모의 자금을 끌어들였다. 지난해 12월엔 대주주인 현대차그룹과 푸본생명으로부터 유상증자를 통해 3000억원의 자금을 수혈받기로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후순위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도 꾸준히 사용했다. 금융투자협회 채권 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라이프생명은 2012년 6월 300억원의 후순위회사채를 발행한 이후 지난해 12월까지 총 13회에 걸쳐 3600억원의 후순위채를 발행해 자금을 수혈했다. 2012년 출범 이후 7000억원에 가까운 자금이 투입됐다는 얘기다. 현대차그룹의 현대라이프생명 지원을 두고 ‘밑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고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현대라이프생명이 지난해 9월부터 희망퇴직, 지점축소, GA(법인대리점) 채널 판매 제휴 중단 등 혹독한 구조조정에 돌입했던 이유다. 그 과정에서 400여명의 직원 중 250명이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났다. 75개에 이르던 지점은 현재 6곳으로 줄었다.

보험설계사에게도 불통이 튀었다. 현대라이프생명은 지점을 폐쇄하면서 소속 설계사에게 모집 수수료 50% 삭감, 지점 폐쇄에 따른 재택근무 등 새로운 영업지침을 만들어 통보했다. 개정된 지침에 동의하지 않는 설계사는 계약기간 만료 후 해촉(해고)한다는 단서도 달았다. 모집 수수료를 삭감에 동의하지 않으면 회사를 나가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계약 만료로 해촉된 설계사는 3년에 걸쳐 지급되는 보험 잔여수당(보험 모집 수수료)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밑빠진 독이 된 현대라이프생명

현대라이프생명 소속 설계사는 회사의 일방적인 영업지침 변경이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라이프생명은 위촉 계약서에 따른 것으로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금융당국도 보험사와 설계사 간의 계약에 따른 사안이어서 관여하기 곤란하다고 선을 그었다.

칼자루는 칼을 쥔 사람에게 있다. 힘의 논리에서 밀린 대부분의 설계사는 회사를 떠났다. 지난해 초 2000여명에 달했던 현대라이프생명 소속 설계사는 150여명으로 감소했다. 직장을 잃은 설계사는 천막농성을 벌이며 잔여수당 지급, 수수료삭감정책 철회, 해촉자 원상회복 등을 요구하고 있다. 경영 실패의 책임을 힘없는 보험설계사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주장에서다.

이동근 전국보험설계사노조 현대라이프지부장은 “현대라이프생명는 경영 실패의 책임을 설계사에게 돌리고 있다”며 “잔여수당 지급을 요구하는 건 채불 임금을 달라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부당한 영업지침을 이유로 잔여수당까지 지급하지 않겠다는 건 명백한 갑질”이라고 꼬집었다.

현대라이프생명은 최근 수수료 삭감 철회, 설계사 조직 육성 계획 등 대책을 제시했지만 유효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천막농성을 진행하는 설계사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는 게 이유다. 이동근 지부장은 “이미 설계사의 90%가 회사를 떠난 상황에서 수수료 삭감 철회가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삭감을 결정할 때는 아무런 말이 없다. 삭감 철회를 하면서 남은 설계사에게 동의서까지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설계사 육성 정책도 회사를 떠난 설계사의 고객을 관리하기 위해 회사가 만든 ‘블루 FP’에 해당할 것”이라며 “회사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노조에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라이프생명 관계자는 “해결 방안을 모색 중”이라면서도 “보험설계사 노조와 논의는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시장은 현대라이프생명 부진의 원인을 생보업계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사진=뉴시스]
현대라이프생명이 또다른 대안으로 선택한 ‘법인영업’도 문제가 많다. 이 회사가 지난해 11월 기준 보유한 보험계약 198만7562건 중 퇴직보험(4만259건)을 포함한 단체보험건수는 13만241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현대라이프생명이 현대차 그룹 계열사를 대상으로 한 영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생보업계 관계자는 “현대라이프생명보험의 퇴직연금 적립액에서 현대차 계열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90%를 웃돌고 있다”며 “비교적 쉬운 계열사 법인 영업에 치중한 현대라이프생명이 법인 영업에서 유의미한 실적을 달성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금융계열사인 현대차투자증권의 계열사 퇴직연금 의존도도 매우 높다”며 “결국 금융 계열사끼리의 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룹 지원 없이 생존할 수 있을까

실제로 현대라이프생명이 운용하는 퇴직연금 적립금 1조1844억원 중 계열사 물량이 차지하는 규모는 1조1610억원(지난해 12월 기준)에 이른다. 개인영업의 대안으로 선택한 법인영업의 핵심인 퇴직연금의 98%가 계열사의 지원에 기대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논란에도 이재원 현대라이프생명 사장은 “올해는 현대라이프생명이 실질적 체력과 경쟁력을 바탕으로 순이익을 내는 첫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출범 당시 정태영 부회장의 호언장담과 결이 같다. “그룹의 지원 없이 독자경영으로 성공하겠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의 도움 없이 현대라이프생명이 생존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냉정한 현실이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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