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이전 검토하는 기업들

해외에 나간 기업들을 자국으로 불러들이는 게 세계적인 흐름이다. 일자리 창출, 경제활성화 기여, 안정적인 산업기반 마련 등의 이른바 ‘유턴효과’를 누릴 수 있어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반대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해외로 나가려는 기업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는 속내를 내비치며 압박을 가하고 있어서다. 지금은 일부 산업이지만 자칫 산업 전반으로 퍼질 수도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공장이전 검토하는 기업들의 속내를 취재했다.

 

“여차하면 생산시설을 다 떼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내 중견 철강사 넥스틸이 생산시설의 미국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 예상 시점은 생각보다 빠르다. 올 상반기다. 통상적으로 오프쇼어링(off-shoringㆍ생산기지 해외 이전)은 기업이 생산비를 절감하거나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등 이익을 취하기 위해 내리는 경영판단이지만 넥스틸은 사정이 다르다. 미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넥스틸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전체 매출에서 각각 70%, 20%가량을 차지하는 유정용 강관과 라인파이프가 관세철퇴를 맞을 가능성이 작지 않아서다. [※참고 : 유정용 강관은 원유ㆍ가스를 채취하는 데 쓰이는 고강도 강관이다. 라인파이프는 원유ㆍ가스를 수송하는 데 사용한다. 유정용 강관이 더 고부가가치 제품이다.]

미국 상무부는 올 4월과 6월께 유정용 강관과 라인파이프에 부과할 반덤핑ㆍ상계관세를 최종판정할 예정이다. 지난해 10월 예비판정에서는 유정용 강관이 46.37%의 반덤핑 관세를 맞았다. 여기에 국내 철강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무역확장법 232조(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해 수입을 제한하는 조치)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종 결정만 남겨두고 있다는 점도 리스크다.

넥스틸 관계자는 “미국의 통상압박 수위가 지속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고, 이에 따른 부담이 커지다보니 해외 이전을 심각하게 검토하게 됐다”면서 “처음엔 베트남ㆍ태국 등을 고려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미국으로 이전하는 것이 가장 나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 생산기지를 짓게 하겠다’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의 속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제3국으로 이전해봤자 미국의 관세철퇴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한 셈이다.

▲ 넥스틸은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압박이 거세지자 공장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넥스틸에 따르면 미국에 수출할 유정용 강관을 생산하기 위해 이전해야 할 설비는 경북 포항에 있는 공장의 35%가량이다. 하지만 라인파이프까지 관세철퇴를 맞는다면 거의 모든 설비를 떼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넥스틸과 더불어 미국에 유정용 강관을 수출하고 있는 세아제강도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세아제강 관계자는 “무역확장법 232조의 구체적인 내용이 나온 게 아니어서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미국의 통상압박이 거세지면 현지 생산법인을 적극 활용할 방안”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지법인에서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의 포트폴리오가 제한적이고 생산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추가 증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이전 고려하는 넥스틸

미국의 통상압박에 따른 오프쇼어링은 철강업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기조는 무역확장법 232조 외에도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 다각적으로 뻗어가고 있다. 김대종 세종대(경영학) 교수는 “세이프가드 조치가 발동된 데 이어 한미 FTA 재협상이 이뤄지는 등 통상마찰이 심화하면 그 피해는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국내 기업들의 이탈현상은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세이프가드 발동을 확정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세탁기는 이미 미국 현지생산이 예고된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뉴베리카운티에 3억8000만 달러(약 4074억원)를 투자해 건설한 가전공장을 1월 12일부터 가동했다. 연 100만여대의 세탁기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LG전자는 지난해 8월 착공한 테네시주 가전공장이 이르면 올 3분기말 가동될 예정이다.

자동차 산업도 피해가 우려되는 산업 중 하나다. 대미對美 무역수지가 가장 높아 한미 FTA 재협상 테이블에 가장 먼저 오를 것으로 점쳐지고 있어서다. 현대차 관계자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차의 전체 미국시장 판매량 중 현지 공장에서 생산한 차량 비중은 각각 50%대, 30%대에 불과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압박이 국내 자동차 산업을 덮치면 현대차ㆍ기아차로선 현지 공장 증설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가능성이 높다. 업계 한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기업이 제소만 하면 대부분 들어주기 때문에 다음에는 불똥이 어디로 튈지 전혀 가늠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자국 투자 유도, 국내 공장의 이탈 현상이 국내 산업에 미칠 악영향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고용 증가 효과가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행ㆍ중소기업 중앙회ㆍ관세청이 공동으로 발표한 ‘대미 제조업 수출로 인해 발생한 취업자 수(2014년)’에 따르면 대미 수출로 인해 발생한 취업자 수는 2010년 43만4270명에서 한미 FTA 체결 직후인 2013년 57만6252명으로 늘었다.

▲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내 산업에 통상압박을 가하고 있다. 미국에 와서 공장을 지으라는 속내가 담겨 있다.[사진=뉴시스]

같은 기간 대미 수출액은 376억 달러에서 621억 달러로 증가했다. 만약 공장이 해외로 이전한다면 이 정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되레 공장 이전으로 인한 실업자가 속출할 공산이 더 크다. 공장 이전 비용이 압박요인으로 작용할 우려도 있다. 넥스틸은 미국의 관세철퇴를 피하기 위해 공장을 이전해야 할 상황이지만 거액의 투자금이 들어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결정임에 분명하다.

중소기업은 해외 투자 부담돼

넥스틸이 생산시설 일부를 이전하기 위해 드는 금액은 300억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넥스틸의 유동자산이 약 1359억원, 영업이익은 100억원가량(이하 2016년 기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셈이다. 더구나 경우에 따라 이전해야 하는 설비 규모가 달라질 수 있어 투자금액이 더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대종 교수는 “세계적으로 선진국들은 온쇼어링(해외진출 기업 본국 회귀)을 유도하거나 해외 기업들의 직접투자를 유치하는 추세”라면서 “그만큼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활성화 등 누릴 수 이익이 크기 때문인데, 반대로 우리나라 입장에선 국내 기업들이 빠져나가면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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