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 보다 추모 의미 되새겨야

▲ 제사는 화려한 제물이나 격식보다 모시는 이의 정성이 중요하다.[사진=아이클릭아트]

7년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는 임종 전 몇가지 말씀을 남겼다. 당신은 가톨릭 신자이니 명절이나 제삿날 즈음해서 가까운 성당 연미사(위령미사)에 봉헌하되, 따로 제사는 지내지 말라고…. 그 대신 형제들이 모여서 밥 한끼 함께 하라고 했다.

당시에는 성당 다니라는 말을 왜 저렇게 빙빙 돌려서 말씀하실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세월이 지나서야 어머니의 깊은 뜻을 이해했다. 평생 집안의 제사祭祀를 도맡아 모셨던 어머니는 제사가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뤄진 노역이 아니라 웃고 떠들며 맞는 축제의 날이 되기 기원했다. 대신 어머니는 온전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자식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기를 바랐던 것 같다. ‘청개구리’인 필자는 풍광 수려한 대전 현충원 국립묘지를 찾아 간소하게나마 제를 올린다.

제사는 본래 세상 떠난 조상을 추모하는 숭고한 의식이다. 그러나 제사라는 형식만 웅크린 채 남아있고 본뜻은 형해화된지 오래다. 특히 명절이 되면 ‘조상’ 모시느라 전국은 한바탕 홍역을 앓는다. 부모자식, 형제간에 제사음식이나 제사 지내는 방식을 두고 다툼이 벌어지고, 서로 마음의 상처를 주고받는다. 오죽했으면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이 생겨났겠는가. 명절에 생긴 갈등으로 이혼율이 높아진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로 제사는 이미 곪을 대로 곪았다.

제사는 장손이 지내고 명절엔 성묘를 한다는 관습을 퇴계 이황이나 주자 같은 성현들도 옳다고 보지 않았다. 이황(1501~1570년)과 그의 제자 기대승(1527~1572년)은 26세나 나이 차이가 나는데도 오랫동안 논쟁하며 편지를 주고받았다. 여기에 ‘윗대 어른이 살아계신데 이를 무시하고 장손 혹은 증손이 제사 지내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글이 나온다.

맏며느리(종부)에게 제사를 모시게 하는 것도 이치가 아니라 했다. 본디 맏며느리에게 제사를 주관하게 함은 그녀가 과부로 홀대받는 것을 우려해서인데, 근본이 잘못됐다는 주장이다. 또 아들만 제사를 모시고 딸은 제사를 모시지 않는 관례 역시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한다.

비뚤어진 제사 풍습은 아마 장남 상속과 관련이 있지 않나 싶다. 고려시대에서부터 조선 중기까지는 아들과 딸이 부모로부터 똑같이 재산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17세기 조선 후기로 넘어오면서 남녀균분의 원칙이 무너지고, 장자상속으로 바뀌게 된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제사 봉양을 명분으로 맏아들에게 집중적으로 재산을 물려준다. 여기에 가문의 위상을 내세우고 싶은 허위의식이 더해서 이 땅의 제사를 왜곡했다.

제사는 돌아가신 조상의 혼령과 후손과의 은밀한 교감행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제사는 화려한 제물이나 격식보다 모시는 이의 정성이 중요하다. 굳이 탕ㆍ전ㆍ 생선을 올릴 이유가 없다. 대신 후손들이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간편하게 차리면 된다. 초콜릿이면 어떻고 피자ㆍ치킨이면 어떤가. 술은 와인이든 막걸리든 가릴 일 아니다. 제사를 지낸 후 후손들이 맛있게 먹고 마시면 조상님도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없다. 후손 안에 조상이 계시니, 후손이 조상이고, 조상이 곧 후손이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명절에 얼마나 많은 가족 간 갈등과 불화가 일어나는가. 어느 종교의 지도자라도 원하는 바는 아니다. 절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제사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먹지 않아야 하는지 보다 조상을 추모하는 마음과 살아있는 가족 간 우의를 앞세워야 한다. 꼭 부모님이 세상 떠나기 전날 밤 늦게, 그것도 음력만 고집할 일 아니다. 제삿날 즈음에 가족이 모이기 좋은 날을 택해 함께 식사하며 조상을 추모해도 좋다. 가장家長의 현명한 리더십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제사와 차례는 엄연히 다르다. 본디 옛날에는 차례가 없었으나 명절같이 좋은 날 돌아가신 부모님도 함께 한다는 뜻에서 생겼다. 남송의 대유학자 주자는 차례에 대해 예禮의 올바름은 아니나 인정상 그럴 수 있다고 말했다. 명절 식탁에서 간단한 예를 올리고 식사를 하면 그것이 바로 차례이지 특별한 격식과 규범이 있는 게 아니다. 성묘는 평소에 조상님 무덤을 둘러보는 일이지 굳이 명절에 할 필요가 없다.

세상이 바뀌었다. 지나간 시대의 잣대가 아니라, 젊은 세대와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야 길이 보인다. 사실 제사보다 부모님 살아계실 때 한번이라도 더 찾아뵙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맞장구쳐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하늘에 계신 부모님은 갈등과 불화를 부채질하는 제사나 차례라면 당장 집어치우라고 호령할 것 같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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