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한 안전망, 약자만 몰아세우다
부실한 안전망, 약자만 몰아세우다
  • 이정우 인제대(사회복지학) 교수
  • 호수 276
  • 승인 2018.02.21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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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최저임금이 인상되자 소상공인들이 “장사 못하겠다”면서 아우성이다. 그러자 최저임금 인상을 두고 실물경제를 반영하지 않은 섣부른 정책이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한편에선 원점으로 돌리자는 극단적인 주장이 나온다. 문제는 최저임금 인상의 후폭풍을 막기 위해 내놓은 정부 정책이 더 현실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약자를 몰아세우는 부실한 안전망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 후폭풍 때문에 최저임금을 다시 낮춰야 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사진=뉴시스]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일부 언론과 정치권의 비난이 매섭다. 최저임금 인상이 불러올 역효과는 고려하지 않고, 대선공약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성급하게 최저임금을 올린 게 아니냐는 것이다.

눈여겨볼 점은 최저임금 인상의 주된 수혜대상이 될 것으로 보였던 아파트경비원, 대형매장의 판촉사원, 대학가 아르바이트생들 사이에서도 ‘준비되지 않은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는 거다. 수혜를 받기는커녕 되레 일자리를 잃거나 근로시간이 줄어들 공산이 커져서다.

그렇다면 최저임금 인상은 성급한 정책이었으니 원점으로 되돌려 놔야 하는 걸까. 그건 아니다.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건 사회적 공감대가 충분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최저임금이 그리 높지 않은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나오면 현실에 맞게 수정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언 발에 오줌 누기’ 식 정책들만 내놓고 있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대표적인 게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제도’다.

이 제도의 취지는 30인 미만 영세사업자들에게 인건비의 일부를 한시적으로 보전해줌으로써 기존 일자리를 유지하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민감한 공동주택 경비원이나 청소원 등에는 예외를 인정, 30인 이상 사업자도 지원대상에 포함했다. 자격요건을 갖춘 사업주에게는 고용된 노동자 1인당 최고 월 13만원(노동시간에 비례)까지 지원한다.

이외에도 해당 사업주는 두루누리 사회보험 지원사업(10명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고용보험료와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을 통한 보험료 감면, 건강보험료 감면, 사회보험료 세액공제 확대 등의 혜택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2018년 한해 총 3조원의 일자리 안정자금을 조성하기로 했다.

한시적이지만 이 제도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노동시장 취약계층의 고용불안을 해소하고 그들의 생활수준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장치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몇가지 중대한 문제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부작용 막는 대안이 더 문제

무엇보다 일자리 안정자금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사업자에게만 온전한 혜택을 제공하는 비합리적인 제도가 될 수 있다. 일단 자금지원 신청요건으로 ‘지원 신청일 이전 1개월 이상 고용이 유지된 노동자(월 보수액 190만원 미만)에게 최저임금을 준수해 지급한 이력’이 있어야 하고,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어야 한다. 반면 파산 위기에 내몰린 사업주는 제도적 혜택에서 배제된다.

일자리 안정자금 대상자 선별 과정도 문제다. 현행 제도에서 지원금 수혜대상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해고된 사람이 아니라 잠재적으로 해고의 위험군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다보니 스스로 일자리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다수 포함될 수 있다. 결국 재원의 낭비문제, 정책 사각지대 문제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더 큰 문제는 일자리 안정자금이 최저임금 인상이 불러일으키는 긍정적인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기업의 인력조정이나 사업 정비는 시장경제의 자정 기능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자체 경쟁력 없이 저임금 구조로 연명해온 기업은 최저임금 인상을 감당할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기술 경쟁력을 토대로 한 건실한 기업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일자리 안정자금은 산업 생태계를 교란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우리는 이번 최저임금 인상 이슈를 계기로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접근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 정책이 제대로 정착할 수 있는 수단은 무엇인지 등을 신중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가장 먼저 재원을 어디에 투입할지 고민해야 한다. 일자리 안정자금을 지원받아야 할 대상은 노동자다. 그렇다면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보다는 고용보험제도의 실업급여 지급기간 연장, 급여수준 인상, 실업부조제도 신설 등이 더 적절해 보인다.

▲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제도는 허점이 너무나 많다.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제도를 홍보하는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왼쪽).[사진=뉴시스]

아울러 하나의 정책이나 제도에 너무 과도하고 복잡한 책임을 부과해선 안 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기업이나 사업주의 부담은 사회복지정책보다는 경제정책을 통해 지원하는 게 좋다. 일자리 안정자금은 노사 양측의 요구사항을 동시에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이해관계 충돌, 제도 운영이나 재원조달의 무원칙성 등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일자리 안정자금이 담당하는 복잡한 목표나 과제는 각각의 제도로 분리해 역할과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

사회적 안전망 위해 뭐했나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고용불안 사태에 지나치게 과민하게 반응할 필요도 없다. 어떤 정책이든 자리를 잡고, 내성耐性을 갖추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까지는 사회가 뒤를 잘 받쳐줘야 한다. 그래야 효과도 나타난다.

우리나라 전체 실업률은 4% 미만으로, 서구 선진국들에 비해 양호하다. 하지만 15~29세 청년실업률은 11.2%(2017년 기준)에 달하는 데다 매년 가파르게 치솟고 있어 우려스럽다.

더 심각한 점은 이런 실업의 고통을 덜어줄 만한 사회적 안전망이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점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부작용이 속출하는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가 그동안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해야한다고 말로만 떠든 건 아닌지 자성해야 하는 이유다.
이정우 인제대(사회복지학) 교수 socwjwl@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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