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통상압박 대응 전략


철강업계가 단단히 화가 났다. 2월 21일 한국철강협회 정기총회에서 철강사 대표들은 정부에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미국이 36년 만에 무역확장법 232조를 들고 나와 매기겠다는 세율 53%의 관세폭탄이 현실화하면 대미對美 수출이 사실상 막히는데 정부는 그동안 뭘 했느냐며.

업계는 2016년 미국 상무부가 포스코 열연강판에 반덤핑관세를 부과했을 때부터 정부가 적극 대응해야 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나, 문재인 정부나 이렇다 할 대비를 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4월 수입 철강이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그 결과가 올 초 나올 예정이었는데도 정부가 미적대며 골든타임을 놓쳤다.

트럼프 행정부의 한국에 대한 통상압박은 전방위적이다.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에 이어 설 연휴 기간에는 철강ㆍ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고관세를 예고했다. 미 무역위원회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특허침해를 조사 중인 점을 감안하면 반도체까지 비상 상황이다.

미국의 연쇄적인 통상압박에 마땅한 대응 방안을 찾지 못한 우리 정부로선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방침이지만 실익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이 WTO 탈퇴까지 언급한 마당에 미국이 WTO로부터 협정 위반 판정을 받아도 불합리한 보호무역 조치를 거둬들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국은 2013년 미국이 삼성전자와 LG전자 세탁기에 부과한 반덤핑ㆍ상계관세를 WTO에 제소했다. 2016년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미국은 관세를 낮추라는 WTO의 결정을 지금까지 이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1월 세이프가드를 동원해 한국산 세탁기에 대한 추가 과세를 결정하고 나섰다.

WTO 제소 절차 자체를 무력화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전략이다. 따라서 수출기업이 미국내 법원에 제소하고 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미국법은 절차 상 미국 정부의 세이프가드나 반덤핑 등 무역 관련 규제가 불합리하게 적용돼 기업에 피해를 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구제 절차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WTO의 결정은 미국 행정부가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미국 법원의 결정은 미국 행정부가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은 삼권분립이 철저하게 이행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국제무역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조치에 대해 미 의회가 제정한 법이 명시한 것보다 과도한 권한을 행사했다고 판단하면 법원의 명령대로 시정해야 한다. 실제로 이민자 규제의 경우 미국 법원에서 패소하자 결국 트럼프 정부가 취소했다.

물론 피해 기업이 미국 법원에 제소한다고 모두 승소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법원의 판단은 WTO의 권고와 달리 이행이 보장된다는 측면에서 효과적인 대응 방법이 될 수 있다. 소를 제기하는 기업으로선 비용에다가 미국 정부와 맞서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따라서 정부가 기업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거나 무역협회를 통해 자문해주는 방안이 요구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안보와 통상은 별개라며 “당당하고 결연하게 대응하라”고 주문했지만, 최전방에서 협상에 나서야 할 통상교섭본부는 3개월째 조직개편안도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이란 1급 자리 하나를 더 두는 방안을 놓고 지난해 11월부터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가 티격태격하고 있다.

미국은 통상 교섭을 담당하는 무역대표부(USTR)가 대통령 직속기구이고 USTR 대표는 장관급이다. 통상 전문가가 300명에 가깝고, 그중에는 20~30년간 통상 업무를 다뤄온 베테랑이 즐비하다. 이와 달리 우리 통상교섭본부는 산업부 산하 조직으로 본부장은 차관급이고, 실무진도 2~3년 순환 근무로 전문성이 떨어진다. 조직 보강과 역량 강화가 시급한데도 예산편성권을 쥔 기재부가 업무 중복과 조직 비대화 등을 이유로 반대하면서 부처간 기싸움을 벌이는 형국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정부와 산업계가 지혜를 모으는 ‘팀 코리아’ 전략으로 총력 대응해야 한다. 정치권은 한미간 통상마찰을 정쟁의 도구로 삼지 않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보호무역 공세가 특정 산업이나 기업에만 피해를 입히는데 그치지 않고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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