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10년 무서운 데자뷔

▲ 한국GM이 최근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내렸다.[사진=뉴시스]

1997년 외환위기, 한국 자동차 산업은 위기를 맞았다. 기아차는 현대차를 새 주인으로 맞으면서 기사회생했지만 대우차ㆍ쌍용차 등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정부는 이들을 인수할 기업을 찾았다. 혹한이 불던 당시 국내 재계에서는 마땅한 인수자를 찾지 못했고, 어쩔 수 없이 해외로 눈을 돌렸다. 2001년 대우차는 미국 GM에 매각됐고, 쌍용차는 2005년 중국 상하이차가 끌어안았다.

 

우려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해외 기업이 생산과 고용을 등한시하면 어쩌나’는 것이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신호탄은 쌍용차가 쐈다. 대주주인 상하이차는 2008년 12월 철수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2대 주주였던 산업은행과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한국 정부가 “먼저 투자하라”고 요구하자 상하이차는 2009년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경영권을 내던졌다. 그사이 기술을 빼돌리려는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돼 ‘먹튀 의혹’을 받았다.

핵심 연구원을 중국 본사로 빼돌렸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매년 3000억원씩 4년간 총 1조2000억원을 연구개발(R&D) 등에 지원하기로 약속해 놓고 이행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상하이차의 먹튀 행각은 우리나라 사회에 큰 상처를 안겼다. 노동자들의 옥쇄파업이 잇따른 것도 그 무렵이다. 그럼에도 상하이차는 이렇다 할 지원책을 내놓지 않고 앞문을 이용해 퇴장했다. 우리 정부는 손 쓸 도리가 없었다.

9년 뒤, 비슷한 모습이 재연되고 있다. 실적 부진을 겪던 한국GM이 군산공장의 생산라인을 멈춰 세우면서다. 업계는 한국GM이 공장 폐쇄 카드를 꺼낸 속내가 따로 있다고 해석한다. 일자리를 우선시하는 현 정부에 ‘공장 폐쇄’라는 강력한 카드를 던져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배리 엥글 GM 총괄 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2월 20일 국회를 방문해 홍영표 환경노동위원장을 비공개 면담하고 여야 원내대표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엥글 사장은 이 자리에서 연간 50만대 규모의 신차 2종의 생산을 한국에 맡길 계획이 있음을 밝혔다. 전제 조건은 한국 정부의 재정 지원이다.

 

 

한국GM으로선 협상이 결렬되더라도 손해볼 게 없다. 사태 책임을 정부에 떠넘기고 발을 빼면 그만이라서다. 그렇다고 현 정부에 협상을 이끌 확실한 ‘강온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GM이 쌍용차의 슬픈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과정이 비슷하면 결과도 비슷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