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 탁상공론 105일의 기록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 탁상공론 105일의 기록
  • 임종찬 기자
  • 호수 277
  • 승인 2018.02.27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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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 두세명 빠진 회의 ‘수두룩’

2월 22일 12시. 통신비 인하책을 논의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의 마지막 회의가 끝났다. 총 9번, 105일간의 회의였다. 이 협의회는 출범 당시 ‘이번만은 다르겠지’라는 기대감을 받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속시원한 결과는커녕 ‘왜 협의회를 만들었나’라는 회의감만 키웠다. 뭐가 잘못됐던 것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협의회의 105일을 정리해 봤다.

▲ 2월 22일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가 마지막 회의를 마쳤다. 눈에 띄는 성과는 찾을 수 없었다.[사진=뉴시스]

“통신비와 관련해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 형성이 필요한 안건을 정하고 심도 있게 논의하겠다.” 2017년 11월 9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이하 협의회)’를 출범하면서 배포한 보도자료의 일부다. 그동안 통신비 인하를 위한 회의가 숱하게 열렸지만 이번 협의회는 유독 주목을 받았다. 이동통신사, 스마트폰 제조사, 소비자·시민단체 등 통신비와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이 참석하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인지 협의회가 통신비 인하 논쟁에 ‘마침표’를 찍어줄 것이라는 기대도 많았다.

성과는 미미했다. ‘단말기 완전자급제(단말기 판매는 판매점이, 통신서비스 가입은 이통사와 대리점이 맡는 제도)’ ‘보편요금제(2만원대 데이터 요금제를 출시하는 제도)’ 등 굵직한 안건들이 회의 탁상에 올라갔지만 협의회는 뚜렷한 합의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업계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애초에 한계가 분명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참여자들이 스스로 손해 보는 장사를 할 리 없다는 이유에서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힘 없는 자문기구에 너무 큰 기대를 걸었던 걸까. 더스쿠프가 협의회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꼬집었다.

■구속력의 부재 = 가장 큰 문제는 협의회의 ‘힘’이 미미하다는 점이었다. 무엇보다 협의회는 자문기구에 불과했다. 설사 합의안을 내놓더라도 업체들이 따를 필요도 없었다. 합의안에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협의회에서 논의한 내용은 국회에 참고자료로 제출될 뿐이다”면서 “합의에 성공하더라도 해당 안건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협의회의 노력은 무용지물이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 협의회를 국회가 인정한 것도 아니다. 출범 당시 협의회 구성원 중 전문가 4명은 정당별로 추천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추천을 거부했다. 협의회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원한 자유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들여온 협의회에 공조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협의회는 제1야당의 지지 없이 출범했다. 애시당초 협의회의 합의안은 국회를 넘지 못할 공산이 컸던 거였다.

■불충분한 회의 = 협의회는 회의도 충분히 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10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총 9번의 회의를 열었는데, 일정만 조율한 첫 회의와 합의안을 검토한 마지막 회의(2월 22일)를 빼면 단 7번 개최됐다.

그 사이 다뤄야 할 안건은 쌓였다. 1차 회의 때 논의할 의제로 분리공시제(이통사 판매장려금과 제조사 보조금을 분리하는 제도), 1만1000원 기본료 폐지, 알뜰폰 시장 활성화 방안 등이 거론됐다. 통신비 인하와 직결되는 방안들이었지만 단말기 완전자급제와 보편요금제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다른 안案도 미뤄졌다. 그 결과, 기초연금수급자요금 감면(7차), 기본료 폐지(8차) 외에는 논의조차 못한 채 회의가 종료됐다.

방법이 없던 건 아니었다. 협의회는 논의를 위해 필요한 경우 협의회 활동 기간을 30일가량 연장할 수 있다. 추세를 보면, 1~2건 더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협의회 내에선 연장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다뤄야할 사안이 분명히 있었음에도 연장 얘기가 없었다는 건 그동안의 회의가 ‘보여주기식’이었음을 협의회가 스스로 인정한 셈이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출석자도 들쑥날쑥 = 첫 회의부터 힘이 빠졌던 참석자(총 20명)들의 태도도 문제로 꼽을 만하다. 첫번째 안건인 단말기 완전자급제를 논의하는 2차 회의에는 5명이나 불참했다. 전체 인원의 4분의 1이 빠진 셈이다. 이후에도 회의 때마다 2~3명씩 빠졌다. 한 교수는 9번 회의 중 3번 불참했다. 3차 회의부터는 멤버가 교체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녹색소비자연대가 빠지고 소비자시민모임이 들어왔다”면서 “참석자가 들쑥날쑥하니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질 리 있었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견조율의 부재 = 무엇보다 중요한 건 논의에 임하는 참여자들의 태도였다. 의견대립이 첨예한 상황에서 합의점을 찾으려면 서로가 한걸음씩 양보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협의회 멤버들은 핵심적인 안건이 나올 때마다 각자의 입장을 내세우기 바빴다.

회의 초기에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완전자급제의 법적 도입을 둘러싼 논쟁에선 의견(반대의견)이 잘 조율됐다. “기업 스스로 자급률을 높이자”는 의견에도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은 “고려해야할 사항이 너무 많다(2차)”에서 “점진적으로 자급률을 높여보겠다(4차)”로 자세를 바꿀 정도로 전향적인 스탠스를 취했다.

하지만 보편요금제 때는 달랐다. 회의록을 살펴보면 협의회 멤버들이 각자의 입장만 되풀이한 흔적이 역력하다. 소비자·시민단체는 “이통3사의 과점체제를 고려하면 보편요금제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보편요금제 도입에 찬성했다. 이통사는 “수익에 부담이 된다”며 반대 입장을 내놨다.

▲ 이통3사는 회의 내내 보편요금제 도입 반대의사를 고수했다.[사진=뉴시스]

양측의 의견은 마지막 회의 때까지 평행선을 달렸다. 그렇다고 대안이 나온 것도 아니었다. “이통사는 대안을 제시해 달라”는 위원장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8차 회의까지 이통사의 반대가 계속되자 소비자·시민단체가 항의하며 회의 중간에 퇴장하는 일도 있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의 통신요금이 비싸다는 걸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를 준비해왔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기업 측은 요지부동이었다. 보편요금제에 관해선 애초부터 합의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 같았다.” 제대로 된 합의는 물론 공감대를 형성에도 실패한 셈이었다.

협의회를 진행하는데 예산은 얼마나 들어갔을까. 과기부 관계자는 “회의 장소를 대관하거나 플래카드를 제작하는 데 비용이 들어갔지만 정확한 액수는 공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비공개로 진행됐던 협의회는 예산조차 비공개였다. 그렇게 협의회는 별 성과 없이 끝났고, 국민 세금은 날아갔다. 정부의 통신비 인하정책도 꿈에 갇혔다.
임종찬 더스쿠프 기자 bellkic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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