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제 전문가 4人이 말하는 해법

미국 무차별적인 통상압력에 국내 정치·경제가 휘청이고 있다. 문제는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뚜렷한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국제무역기구(WTO) 제소를 카드로 빼들었지만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안보와 통상을 분리해 대응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에도 지나친 이상론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우린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국제경제 전문가 4인에게 대안을 물었다. 

▲ 정부의 미국 통상압력 대응전략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사진=뉴시스]

미국의 통상압력이 한국을 흔들고 있다. 미국은 1월 22일 한국산 대형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했다. 2월 16일(현지시간)에는 정치적 논리를 앞세운 ‘무역확장법 232조’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한국산 철강 수입을 규제하겠다는 거다.

정부는 미국의 통상압력에 정면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2월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불합리한 보호무역 조치에 대해선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여부 검토 등을 통해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방침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한쪽에선 경제적 대응만으론 미국의 압박책을 허물어뜨리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부의 대북정책 탓에 멀어진 한미 관계가 미국 통상압력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미 상무부가 권고한 무역확장법 232조 조치 보고서에 동맹국 중 유일하게 한국이 포함됐다.

무차별적 통상압력 가하는 미국

문 대통령이 대응책으로 밝힌 WTO 제소의 실효성 논란도 커지고 있다. 제소 이후 승소 판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다 미국이 WTO의 결정을 따를지도 확실하지 않아서다. 일례로 우리나라는 2013년 미국의 한국산 세탁기 반덤핑관세 부과 조치를 WTO에 제소해 2016년 최종 승소했지만 미국은 반덤핑관세를 철회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WTO 제소 효과 있을까 = 국제경제 전문가들은 설사 즉각적인 실효성이 없더라도 WTO에는 제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통상협력실 연구위원은 “당장 기업의 피해를 없앨 수는 없더라도 WTO 제소를 미뤄선 안 된다”면서 “공식적인 절차를 통한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배찬권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같은 견해를 내비쳤다. “미국이 WTO의 결정을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WTO 제소는 필요하다. WTO 제소가 다른 산업의 통상압력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WTO 제소를 통해 최소한의 억제력은 가질 수 있다. 시계추를 2014년으로 돌려보자. 당시 미 상무부는 한국산 유정용 강관(원유·천연가스 시추용 파이프)에 9.9~15.8%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지난해 4월에는 관세율을 최고 29.8%로 올렸다. 하지만 WTO가 지난해 11월 “미국이 2014년 부과한 반덤핑 관세는 협정 위반”이라는 판정을 내리면서 미국의 거침없는 행보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미국이 한국의 철강 산업을 규제하기 위해 반덤핑 관세나 세이프가드가 아닌 무역확장법 232조를 꺼내든 것도 WTO의 판정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WTO 제소가 즉각적 효과를 일으키지 못하더라도 억제력만은 충분하다는 얘기다.

■통상-외교 분리책 어떤가 = 국제경제 전문가들은 정부의 통상과 외교 분리 정책에도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교는 외교로 통상문제는 통상으로 대응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외교와 통상의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제현정 연구위원도 “정부의 방침은 안보와 상관없이 할 말은 하겠다는 의미”라며 “국가의 이익을 침해 받은 상황에서 안보를 이유로 침묵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배찬권 연구위원은 외교와 통상을 더 확실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한미 안보 동맹이 중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통상에 안보 문제를 개입시키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가 사라지다시피 할 것이다.” 김영한 성균관대(경제학)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한미 동맹을 상업적 거래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며 “향후 통상압력을 안보 이슈와 연결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그는 “우리가 먼저 안보와 통상을 분리해 선제적으로 미국의 공격을 봉쇄할 필요가 있다”며 “외교와 통상 문제를 연계하는 건 되레 우리에게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통상압력 해소책 있나 = 관건은 미국의 통상압력을 해소할 수 있는 뚜렷한 해결책이 있느냐는 거다. 제현정 연구위원은 “미국의 경기가 더 좋아져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 통상압력을 완화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사실상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배찬권 연구위원도 “사실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며 “그나마 한미 FTA 협의가 이뤄지고 있으니 이를 협상 창구로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어떤 전략적 자세를 취하느냐도 문제다. 중국을 겨냥한 통상압력이 중국향 중간재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미 통상압력에 대응해 중국의 편에 서는 것도, 중국을 의식하지 않고 미국의 비위를 맞추는 것도 쉽지 않다는 얘기다. 정민 연구위원은 “한국은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국제정세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며 “어느 한쪽을 선택해 전략을 짜긴 어렵다”고 말했다.

제현정 연구위원은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을 과거 열강의 침탈을 받던 구한말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토로했다. “지금 한국이 처한 상황은 구한말 「조선책략」이 나왔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앞세우고 있는 현 상황에선 과거와 같은 동맹관계를 유지하긴 어렵다. 불편한 동맹관계를 유지해야 경제 대국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소수 의견이지만 우리나라가 주도적으로 나서 다른 국가와 공동대응을 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통상과 안보 연계는 독毒

우리나라가 통상압력의 성과를 가장 손쉽게 낼 수 있는 곳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한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은 산업계의 요구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면서 말을 이었다. “트럼프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역·rust belt)의 지지를 받기 위해 쇼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미 통상압력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점에서 제일 좋은 타깃이 됐을 것이다.” 그는 “우리 정부가 이해관계 국가와의 동맹을 주도해 우리도 미국에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신뢰 회복, 혈맹 강화 등의 고전적인 방법으로는 트럼프 행정부의 무차별적인 통상압력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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