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과 소멸에 바치는 헌사
생성과 소멸에 바치는 헌사
  • 이지원 기자
  • 호수 277
  • 승인 2018.03.02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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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3월의 눈’
▲ 장오는 눈 내리는 3월, 삶이 터전이자 마지막 재산인 한옥을 내어주고 떠난다.[사진=국립극장 제공]

볕 좋은 한옥집 툇마루에 노부부 ‘장오’와 ‘이순’이 앉아있다. 부부는 평생 일궈 놓은 집 한 채를 손자를 위해 팔고 떠나야 한다. 동네에는 재개발 열풍이 불어 시끌벅적하고 곧 정든 집을 떠나야 하지만 노부부는 평범한 일상을 지속한다. 겨우내 묵었던 문창호지를 새로 준비하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부부의 모습은 오히려 평화롭다. 가진 것을 다 내어주고 떠나는 장오의 모습은 쓸쓸하지만 바쁜 현실 속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인생의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급변하는 시대에 사라져가는 모든 것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묵묵히 담아낸 연극 ‘3월의 눈’이 돌아왔다. 2011년 백성희장민호극장 개관을 기념해 초연한 작품이다. 배삼식 극작가가 대본을, 손진책 연출가가 연출을 맡았다. 그동안 고 장민호, 고 백성희, 박혜진, 박근형, 변희봉, 신구 등 대배우들이 ‘3월의 눈’을 거쳐갔다. 이번 공연은 더블 캐스팅으로 오현경과 손숙, 오영수와 정영숙이 부부로 호흡을 맞춘다.

손숙은 “이 작품은 마치 오래된 집처럼 살아있는 것 같다. 누군가 살다가 떠나면 새로운 사람이 또 살고, 그러면서 그 자리에 있는 집도 생명력을 얻듯 이 작품도 그렇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찬란하지만 금세 사라지는…

이번 공연은 한국 연극계의 산증인인 네명의 배우가 함께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풍부한 삶의 경험과 연륜으로 노부부의 인생을 그려내는 배우들의 진솔한 연기를 만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3월의 눈’은 평생 함께 한옥에서 살아온 노부부의 일상과 삶, 죽음을 실재와 환상을 오가며 이야기 한다. 자극적인 내용이나 극적인 반전은 없지만 ‘오면 가는 것’이라는 세상의 이치를 담담하게 드러낸다. 부부가 살아온 한옥도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허물어진다.

새주인은 한옥을 허물고 3층짜리 건물을 올릴 계획이다. 문짝과 마루, 기둥으로 다시 쓰일만한 목재들을 다 떼어가고 앙상한 뼈대만 남는다. 하지만 한짝한짝 뜯겨지며 소멸되는 한옥이 책상도 되고, 밥상도 되며 끝없이 순환하는 자연의 순리는 오히려 위로가 된다. 손진책 연출은 “이 작품은 생성과 소멸에 대한 헌사”라면서 “삶을 사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작품의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국립극단이 선보이는 올해 첫 작품 ‘3월의 눈’은 3월 11일까지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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