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S9으로 본 자급제폰의 허상

단말기 자급제가 소비자의 외면을 받고 있다. 가계통신비를 절감하기 위해 도입된지 6년이 훌쩍 흘렀음에도 자급제폰을 쓰는 이들은 10%가 채 안 된다. 최근 삼성전자의 신작 ‘갤럭시S9’이 단말기 자급제폰으로 출시됐지만 분위기를 바꾸지 못하고 있다. 휴대전화 단말기를 이통사 대리점이 아닌 제조업체에서 구입하는 단말기 자급제 제도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갤럭시S9으로 본 자급제폰의 허상을 짚어봤다.

▲ 지난 2월 28일 삼성전자가 갤럭시S9을 출시하면서 '자급제 버전'도 함께 선보였다.[사진=뉴시스]

삼성전자가 2월 28일 최신 스마트폰 ‘갤럭시S9’을 선보였다. 이번에도 슬로모션 촬영, 얼굴인식 시스템 등 최고 사양의 라인업을 갖췄다. 업계 관계자들도 앞다퉈 갤럭시S9에 찬사를 쏟아낸다. 하지만 정작 흥미로운 건 다른 데 있다. 갤럭시S9이 ‘단말기 자급제폰’으로 출시된다는 점이다.

자급제폰은 통신사와 상관없이 구매할 수 있는 단말기를 뜻한다. 지금처럼 이통사 대리점에서 휴대전화를 구입하는 게 아니라 마트ㆍ백화점ㆍ온라인 쇼핑몰 등 다양한 장소에서 살 수 있다. 대리점에 들러 개통작업을 할 필요도 없다. 통신사 유심(USIM)을 꽂으면 끝이다. 단말기 자급제폰이 ‘공空기계’ ‘언락(unlock)폰’으로 불리는 이유다. 특정 이통사에 얽매여 있지 않아서다. 


단말기 자급제의 핵심은 소비자의 단말기 구매 선택지를 늘려 이통사 중심의 유통구조를 흔드는 것이다. 2011년 방송통신위원회가 가계통신비 인하 방안 중 하나로 이 제도를 계획했고, 이듬해 5월 1일 전면 시행됐다. 소비자들은 자급제폰으로 원하는 통신사와 요금제를 자유롭게 고를 수 있게 됐다. 이통사의 값비싼 약정 요금제를 탈출하는 것도 가능했다.


반면 이통사에 단말기 자급제는 악재였다. 자급률(전체 단말기 판매량 대비 자급제폰 비율)이 오를수록 이통사의 단말기 장악력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단말기를 빼앗긴 이통사로선 고객을 끌어 모으려면 경쟁사보다 싼 요금제를 내놓거나 혜택을 추가하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쳐야 한다. 정부가 그린 ‘이상적인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3년차에 접어든 단말기 자급제의 성적표는 초라했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의 자급률은 7%에 불과했다. 2016년에는 전년 대비 1%포인트 오른 8%에 그쳤다. 자급제폰을 찾는 소비자가 없었다는 반증이다.

왜일까. 신민수 한양대(경영학) 교수는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격이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통사 대리점에서 단말기를 사면 공시지원금 외에 대리점의 추가지원금이나 사은품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자급제폰은 별다른 가격 혜택이 없다. 이러니 소비자들에게 외면을 당할 수밖에 없다. 자급제폰이 팔리지 않으면 이통사 중심의 유통구조도 그대로 유지되고, 통신비 경쟁도 일어나지 않는다. 한국의 단말기 자급제가 악순환에 빠져있다는 얘기다.”

소비자 없는 자급제폰

제조사와 이통사간 단말기 가격차도 악순환에 한몫했다. 2017년 7월 ICT소비자연구원에 따르면 제조사에서 판매하는 단말기의 직접 판매가는 이통사의 단말기 출고가보다 6~10%가량 비쌌다. 갤럭시 S8(64GB)의 삼성전자 공식스토어 판매가격은 102만8000원, 이통사의 출고가는 93만5000원으로 10% 차이가 났다. 애플의 아이폰7(128GB)도 각각 106만원(판매가), 99만9900원(출고가)으로 6%의 차이를 보였다. 녹색소비자연대 관계자는 “사실상 제조사가 소비자들이 이통사에서 단말기를 구매하도록 일부러 높게 책정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해가 바뀐 2018년. 도입된 지 6년이 흘렀지만 단말기 자급제는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자급제 살리기’에 나선 이유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를 열고 통신시장 이해관계자들을 불러 통신비 인하 방안을 논의했다. 4차 회의 즈음 단말기 자급제가 거론됐다. 단말기 자급률을 끌어올리자는 데 의견이 모였고, 삼성전자가 “차기 플래그십 모델을 자급제폰으로도 출시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게 바로 ‘자급제 버전 갤럭시S9’이다. 이번엔 단말기 가격도 통일했다. 이통3사와 제조사 모두 95만7000원(갤럭시S9 64GB 기준)으로 가격을 맞췄다.

그럼에도 업계 반응은 미지근하다. “이 정도로는 소비자들의 관심을 자급제폰으로 돌릴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신민수 교수는 “단말기 자급제의 활로는 정가의 자급제폰과 대리점 지원금을 받는 단말기의 가격차를 좁히는 데 있다”면서 “가짓수만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프리미엄 자급제폰 출시했지만…

문제의 핵심은 ‘단말기의 가격 인하’로 귀결된다. 하지만 제조업체들은 가격을 내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익명을 원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자급제폰을 적극적으로 유통하기 쉽지 않다”면서 “대리점 장려금, 프로모션 비용 등 추가지출이 크게 부담되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제조사 입장에선 유통채널을 직접 만들어 마케팅을 하는 것보다 이통사에 맡기는 게 이득이라는 얘기다. 악순환에 빠진 단말기 자급제, 갤럭시S9이 활로를 모색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접는 게 낫다.
임종찬 더스쿠프 기자 bellkic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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