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부 사외이사 논란
올해 주요 기업들의 사외이사 명단이 채워지고 있다. 그중엔 익숙한 이름도 보인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서 한자리를 꿰차고 있던 사람들이거나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도왔던 인물이다. 친親정부 인사 영입으로 이들이 의도하는 바는 무엇일까. 답은 굳이 찾을 필요도 없이 명확하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친정부 사외이사 논란을 취재했다.
주주총회가 집중되는 3월, 기업들은 바쁘다. 특히 기업 경영과 관련된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기구인 이사회를 구성하는 데 신중을 기한다. 올해 이사회를 구성하는 주요 기업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 ‘친親정부’다.
KT를 보자. 이 회사가 올해 새로 선임한 사외이사는 이강철 전 시민사회수석과 김대유 전 경제정책수석이다. 둘 다 참여정부 출신이다. 특히 이강철 전 수석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명이었다.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과 대통령 정책특별보좌관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도 사외이사 후보로 거론됐지만, 본인이 고사하면서 최종 후보에서 빠졌다.
친정부 인사 대거 선임
포스코는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김성진 전 해양수산부 장관을 추천했다. 김성진 전 장관은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정책관리비서관, 산업정책비서관, 중소기업청장 등을 지냈다. IBK기업은행은 김정훈 한국금융연수원 민주금융발전네트워크(민금넷) 전문위원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민금넷은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을 공개 지지하면서 주목을 받은 곳이다. 지난해 퇴임한 조용 사외이사가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대표 특보 출신이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묘한 세대교체다. 선우석호 KB금융 사외이사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경기고 선배이자 장 실장과 논문을 같이 낼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친여 성향의 사외이사를 영입한 이들 기업의 또 다른 공통점은 외풍外風에 약하다는 거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무렵, KT와 포스코의 CEO가 교체될 거라는 소문이 나돈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황창규 KT 회장은 지난해 연임에 성공했음에도 퇴진설이 꼬리표처럼 붙어다녔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데다 올해 1월에는 불법 정치 자금을 후원한 혐의로 집무실을 압수수색당하기도 했다.
재계 일부에서 “KT가 정치적 외풍 차단과 대정부 대관업무를 위해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을 중용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KT가 선임한 두 사외이사는 통신 사업과는 큰 연관이 없다. 이강철 전 수석은 민주화운동 및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주도하다가 정치인이 됐다. 김대유 재정경제부와 통계청을 거쳐 2007년 청와대 경제정책수석을 지낸 관료 출신이다. 그렇다고 도덕적으로 존경을 받는 것도 아니다. 3억원대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009년 구속된 이 전 수석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KT 새노조 관계자는 “이들의 개인 역량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면서 “다만 통신 전문성이 없다는 점에서 황 회장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 위한 선임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지배구조 개편 등 문재인 정부의 혁신바람을 방어하기 위한 카드로 사외이사를 활용한 흔적은 이뿐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검찰ㆍ법원, 국세청ㆍ금융위원회ㆍ금융감독원 등 권력기관 출신 전직 관료가 사외이사 자리를 꿰차는 사례는 더 늘었다. 삼성ㆍSKㆍ롯데ㆍCJ 등 4개 주요 그룹의 신임 사외이사 중 권력기관 출신 비율은 2016년 26%에서 2017년 29.4%으로 3.4%포인트나 높아졌다.
반대표 못 던지는 사외이사들
사실 사외이사 제도는 무용론無用論에 시달린 지 오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회사를 위한 ‘거수기’ 노릇만 해왔다는 비판이 많다. 실제로 지난해 3분기 기준 우리나라 시가총액 기준 20개 기업의 사외이사 중 안건에 ‘반대’를 외친 인사는 단 한명도 없다. 당연히 부결된 안건도 없다.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한 지 20년이나 흐른 지금도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가 취약한 것 역시 사외이사가 제 역할을 못했다는 방증이다. 전성인 홍익대(경제학) 교수는 “관을 상대로 목소리를 내야 할 때나 수사를 받을 때 필요할 것”이라면서 “원래 목적인 이사회 견제 기능은 상실한 지 오래”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인지 사외이사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엔 늘 힘이 실려왔다. “제도의 취지를 살리려면 사외이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쪽으로 제도적 장치를 보강해야 한다”는 대안도 제시됐다. 기업 스스로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를 꾸리기도 했다. 하지만 뚜렷한 결과물은 없다. 도리어 기업은 사외이사에게 고액연봉과 각종 특혜를 주고, 사외이사는 기업의 바람막이 역할을 마다치 않는 공생관계만 끈끈해졌다. 정권이 바뀐 지금도 도돌이표다. 그사이 잊힌 권력자들이 또다시 세상에 등장했고, 그중엔 비위를 저질러 법적 처벌을 받은 이도 있다. 이 역시 구태의 반복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oop.co.kr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