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난 대중의 시대

부패 사회에선 거짓말이 통용된다. 기득권이 부패하면 거짓말은 더 잘 융통된다. 그런 의미에서 거짓말은 기득권의 무기다. 진실과 정의, 폭로는 힘으로 누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도 얼마 전까지 그랬다. 지금은 다르다. 통신기술로 무장한 똑똑한 대중이 기득권의 거짓말을 솎아낸다. 무능한 대통령도 한번 끌어내렸으니 무서울 것도 없다. 거짓말 시대가 종언을 구하고 있다. 우리가 더 해야 할 일은 뭘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깨어난 대중의 시대를 살펴봤다.

▲ 조직 내 성추행 관련 ‘미투(#Me Tooㆍ나도 피해자’ 캠페인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언젠가 진실이 밝혀지는 걸까. 모두가 그렇게 믿고 싶었지만, 현실에선 늘 거짓이 더 강했다. 그래서 “언젠가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말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힘없고 억울한 이의 마지막 한마디쯤으로 취급됐다. 하지만 요즘 한국사회 분위기는 이전과 많이 다르다. 꽁꽁 숨겨왔던 거짓들이 하나둘 벗겨지고 있어서다. 어느 한 분야에 국한하지도 않는다.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를 총망라한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과 이명박 전 대통령 차명재산의 실제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들 정권과 유착한 기업들의 각종 비리 의혹도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숱하게 많은 정책을 쏟아 냈음에도 기운 운동장이 평평해지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권력과 유착한 공공기관과 기업의 채용비리는 취업준비생들의 공분을 샀다. 감시견 역할을 해야 할 사정기관은 정권과 손을 잡았다. 불법적인 행동을 부끄럼 없이 일삼는 조직의 내부에서 상식이 통할 리 없다. 각종 갑을 문화, 남성 중심적인 문화 속에 사회 곳곳에서 성추행은 일상화됐다. 그럼에도 기득권층은 틈만 나면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

사회의 기득권층으로 군림해온 그들의 민낯이 이처럼 까발려진 배경은 뭘까. 아무래도 현직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끌어내리고 새 정권을 세우면서 ‘침묵하지 않으면 바꿀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일 거다. 촛불혁명의 효과다.

한상희 건국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촛불집회는 국민이 정치 참여 주체라는 시민의식을 높여줬다”면서 “불합리한 사회를 향해 자기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만들어 준 대단히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여기에 그동안 지속돼 온 사회 양극화, 고질적인 갑을관계 등이 제도권을 통해 개선되지 않고, 경기가 침체된 것도 한몫했다.


정보통신(IT) 기술은 성장한 시민의식을 표출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스마트폰으로 정보검색과 동영상 제작이 쉬워졌고, 제작된 콘텐트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빠르게 번졌다. 덕분에 우리나라 국민의 미디어 활용 능력도 크게 개선됐다. 정보통신연구원에 따르면 스마트폰 이용자의 인터넷 정보검색 능력은 2011년 82.4%에서 2016년 89.6%로 향상됐다. 지난해 9월 기준 유튜브 애플리케이션(앱) 순이용자 수는 2302만566명에 달했다.

촛불혁명이 시민의식 바꿔 놔

상식적 수준에서 이해할 수 없는 정부의 해명이나 검찰 조사를 두곤 ‘누리꾼(네티즌) 수사대’가 꾸준히 합리적 의심을 내놨다. 웹상의 기록들을 통해 기득권층의 ‘말 바꾸기’도 곧잘 찾아냈다. 주요 언론사가 1면을 이용해 이슈를 좌지우지하던 때와 달리 인터넷은 독자들이 이슈를 정할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독자는 뉴스를 소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생산하는 주체로 변했다. 이 때문에 한번 공론화된 이슈를 덮는 일도 쉽지 않게 됐다.

안종배 한세대(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언론미디어 환경이 미디어 공동체로 변해 누구든 거짓말을 숨기기 어렵게 됐다”면서 “1인 미디어의 발달로 수직화 돼 있던 언론권력도 많이 평준화됐다”고 설명했다.

중요한 건 기득권층의 사회부조리와 거짓말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으로 끝나선 안 된다는 점이다. 이번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거짓을 뿌리뽑고 좀 더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그런 사회는 ‘당연히’ 따라 오는 게 아니다. 대통령 한 사람을 잘못 뽑은 우리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역행할 수 있는지 충분히 경험했다. 사회구조를 바꾸고 문화를 만들고, 올바른 의식을 갖추지 않으면 언제든 시대를 거슬러갈 수 있다.

지난 2016년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실린 암스테르담 대학교의 행동과학자 숄 샬비(Shaul Shalvi) 교수의 연구결과는 참고할 만하다. 그는 “기득권층의 부정과 비리가 많은 사회일수록 일반인들이 거짓말을 더 자주하고, 기득권층이 거짓말하지 않는 사회에선 일반인들도 비교적 정직할 것”이라 가정하고, 이를 실험으로 입증했다.

부정과 비리, 거짓말은 개인이 아니라 조직과 사회의 문제다. 기득권층의 범법행위와 거짓말에는 법을 더 엄격하게 적용해 사회 전체를 공정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병훈 중앙대(사회학) 교수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을관계에서 비롯된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누구든지 다양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수평적 문화를 가진 조직에서는 유착도 뭔가를 숨기기도 힘들다. 기득권자와 비기득권자 간 ‘힘의 균형’이 있어야 한다.

비리 막는 수평적 조직문화 절실

직원들을 위한 조직의 결성을 적극 지원해야 하는 이유다. 그들에게 힘이 생겨야 여론도 생긴다. 내부 고발을 해서 받는 불이익보다는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어야 활성화할 수 있다. 기득권층에는 잘못이 드러났을 경우 금전적으로 대체할 수 없는 형사상 처벌과 함께 매우 강력한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가능해야 한다. 그래야 ‘갑甲’들이 가진 지위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다. 반면 비리든 거짓말이든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해버리면 구조적으로 일어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힘들다.”

이정우 인제대(사회복지학) 교수 역시 “약자들이 힘을 규합하면 어떤 조직이든 독단적인 결정이나 야합 등을 할 수 없다”면서 “의사결정이 소수에 의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정덕ㆍ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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