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걸의 有口有言] 총수와 전문경영인의 야합
[윤영걸의 有口有言] 총수와 전문경영인의 야합
  • 윤영걸 편집인
  • 호수 279
  • 승인 2018.03.13 0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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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데 …
▲ 한국을 대표하던 전문경영인들의 흑역사가 시작됐다.[사진=뉴시스]

영화 ‘올더 머니(All the Money in the World)’는 재벌의 탐욕을 리얼하게 그린 작품이다. 석유사업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폴 게티는 친손자가 유괴됐음에도 유괴범과의 협상을 거부하는 냉혈한으로 등장한다. 영화는 게티가 손자 유괴 소식에도 꿈쩍하지 않고 주식에 몰두하는 모습, 세금공제와 이자까지 따져가며 며느리에게 협상금을 빌려주는 모습까지 경악할만한 그의 행동을 고스란히 담아놓고 있다.

흔히 재벌의 탐욕이라면 대부분 대주주인 회장을 연상한다. 재벌 회장은 ‘의심’ ‘욕심’ ‘변심’ 3심心을 유전자에 새긴 채 태어났다는 말도 있을 정도로 비난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투명경영을 하는 한국 재벌들이 적지 않고, 일부 비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오너 회장만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기에는 온당치 않은 측면이 있다. 전문경영인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가 회장의 탐욕 못지않게 심각해 보인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전문경영인들이다. 이 전 대통령은 현대건설 CEO를 거치며 탁월한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국회의원ㆍ서울시장ㆍ대통령까지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의혹은 별개로 하더라도 다스의 수백억원대 비자금 조성 의혹이나 삼성소송비 대납의혹, 차명재산 의혹 등은 기업인 출신이 아니면 감히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일이다.

한때 현대그룹은 회사가 부동산을 살 때 실세 임직원이 인근 부지를 사들이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정주영 창업회장은 부하의 돈 문제에 대해 비교적 관대(?)했다. 100억원에 달하는 뇌물혐의는 어찌 보면 현대그룹에서부터 잉태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 소송비 60억원을 대신 내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이학수 전 부회장은 삼성그룹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 출신이다. 15년간 삼성 컨트롤타워의 수장을 맡으며 ‘삼성 2인자’로 불렸다. 17대 대선자금과 X파일 사건에서는 혼자 총대를 메기도 했다.

이팔성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 시절 금융계 ‘4대천황’이라고 불렸던 실세였다. 은행원 출신에서 한빛증권 사장을 거쳐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맡았다. 이명박 정부 들어 증권거래소 이사장에 응모했으나 사장추천위원회가 낙마시키자 오히려 더 큰 조직의 수장이 될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그가 자리를 옮기거나 연임을 할 때면 권력층과 연줄이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는 이명박 정권에서 인사청탁 뇌물을 주고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많은 것은 허물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재산이 너무 많다. 어림잡아 한 사람은 재산이 2조원, 또 다른 이는 1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착실히 월급만 모았다면 그게 가능했을까.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한평생 회사를 위해 몸을 바친 점은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그들의 도덕성에는 높은 점수를 주기 곤란하다.

재벌 비리는 대부분 전문경영인의 암묵적 지원과 야합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 전문경영인들은 회사와 오너를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기실 알고 보면 전문경영인 스스로를 보호하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거다.

궁지에 몰리면 그동안 쌓아놓은 권력기관의 인맥을 동원해 오너를 협박하고, 조직을 배신하기도 한다. 자신의 영향력 극대화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비리 경영인들을 내보내기도 어렵지만 내보낼 때 원하는 만큼 위로금을 주지 않으면 약점을 물고 늘어진다. 오너 경영인은 자신의 도덕적 약점과 탐욕 때문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전문경영인과 타협하고 비리를 묵인해주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전문경영인 제도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기업 체제를 말한다. 지금 한국의 재계는 회사가 경영전반과 중요한 의사결정을 타인에게 맡겼는데 대리인(전문경영인) 때문에 외려 회사가 위험에 빠지는 딜레마를 겪고 있다.

기업의 경제적 자유는 충분히 허용하되 범법행위에 대해서는 법의 심판을 가혹하게 내려야 한다. 주주의 권리를 좀 더 강화하고 경영감시를 활성화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대주주인 회장이 깨끗해야 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기 때문이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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