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시카리오❶

드니 빌뇌브(Denis Villeueve) 감독의 ‘시카리오(Sicario)’는 마약범죄 스릴러 영화다. 액션이나 범죄 영화는 관객의 몰입과 공감을 위해 ‘공공의 적’이 필요하다. 요즘 ‘공공의 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외계인의 난동은 현실 감각이 조금 떨어진다. 뭐니뭐니해도 마약과 테러가 가장 인기 있는 ‘공공의 적’임이 분명하다.

 

‘공공의 적’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은 발본색원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야 한다. ‘테러’는 힘없는 사람들이나 집단이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최종병기다. ‘마약’ 역시 특별한 재능이나 기술ㆍ자본 없는 ‘흙수저’를 ‘금수저’로 바꿀 수 있는 하나뿐인 통로라 할 수 있다. 힘없고 소외된 계층이 사라지지 않는 한 테러와 마약은 사라지지 않는다. 테러나 마약의 퇴치는 소외계층 퇴치만큼이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아마 앞으로도 테러와 마약은 영화 속에서 수많은 악기와 음색으로 다양하게 변주돼 세계의 스크린들을 장식할 것이다.

‘시카리오’는 멕시코의 거대 마약조직인 소노라(Sonora)가 ‘감히’ 미국의 애리조나에 안전가옥을 마련해 ‘미국총판’을 발판으로 마약사업을 벌이고 상대 마약조직원으로 추정되는 신원미상의 수십명을 죽여 벽 속에 넣어두는 엽기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으로 시작된다. FBI 중대범죄대응반 케이트 머서(에밀리 블런트)와 레지 웨인이 현장을 급습하지만 대원 2명을 폭발물에 잃는 참사를 당한다.

▲ 힘없고 소외된 계층이 사라지지 않는 한 테러와 마약의 발본색원은 어럽다.[사진=더스쿠프포토]

애리조나 참사에 화가 난 미국정부는 마침내 ‘소노라 카르텔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일상적인 설득과 회유, 협박이나 제재ㆍ단속이 모두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때 우리는 최후의 궁극적 수단으로 ‘전쟁’을 선포한다.

독일의 전쟁학자 칼 폰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는 ‘전쟁이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라고 정의한다. ‘정치’가 모든 일의 규칙을 정하는 행위라고 한다면 결국 ‘전쟁’이란 문제해결의 근본적 방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기존의 모든 규칙을 무시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모든 원칙이 무너지고 ‘정상’이 ‘비정상’에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자타가 공인하는 ‘인권의 챔피언’이라는 미국은 마약 조직원들을 무지막지하게 고문한다. 소노라 카르텔을 정벌하기 위해 악명 높은 콜롬비아 메데인 카르텔의 실력자인 알레한드로(베니치오 델 토로)를 원정대에 투입하는 ‘비정상적인 융통성’을 발휘한다. 브래드 피트만큼 미남배우이자 우울하면서도 깊은 눈빛이 압권인 델 토로의 모든 ‘악’에 무감각한 듯한 권태로운 연기는 영화의 암울한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영화 속에서 원정대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마약을 밀반입하는 비밀터널에서 작전을 펼쳐야 하는 애매한 상황에 놓인다. 비밀터널은 미국과 멕시코 영토에 걸쳐 있다. 문제는 ‘원정대’는 사실상 CIA 조직을 주축으로 구성돼 있는데, 규정상 해외작전만 허용될 뿐 미국내의 작전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규정을 피해가기 위해 원정대는 FBI 요원 몇명을 허수아비로 참여시키는 또 한번의 ‘융통성’을 발휘한다.

▲ 무한경쟁 속 우리 사회는 진학도 취업도 승진도 전쟁을 치르듯 한다.[사진=뉴시스]

미국이라는 나라는 본래 유연한 나라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되는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꼭 안 되는 것도 없는’ 융통성이 뛰어난 나라지만, 미국은 ‘되는 것은 되고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대단히 원칙에 충실한 나라다.

이렇게 원칙에 충실한 나라지만 일단 ‘전쟁’이 선포되면 모든 원칙과 규정이 무너진다.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의 모든 원칙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듯, 소노라 카르텔의 소탕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원칙들을 유보하고 비정상이 용인된다.

무한경쟁 속에 빠진 우리 사회의 일상을 흔히 ‘전쟁’에 비유한다. 진학도 전쟁이고 취업과 승진도 모두 전쟁을 치르듯 한다. 경쟁이 치열함에 그친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겠지만, ‘경쟁’이 ‘전쟁’이 되는 순간 목표가 모든 수단을 정당화시키고, 모든 ‘정상’이 ‘비정상’이 되며, ‘비정상’이 ‘정상’이 된다.

‘살과의 전쟁’에서 적당한 운동과 식사조절과 같은 정상적인 수단이 아닌 온갖 비정상적인 수단을 동원하면 살은 빠질지 모르지만 몸은 골병 든다. 전쟁에서 이겨도 몸져눕게 되는 것이다. 승리를 위해 매일매일 전쟁을 치러야만 하는 이 사회는 오늘도 그렇게 골병이 든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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