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이 가계에 미치는 영향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고 있다.” 지난해 출산율 낙폭이 정부 예상치를 웃돌자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하지만 정작 저출산을 해결할 수 있는 청년층은 결혼과 출산에 회의적인 경우가 적지 않다. 결국 ‘돈’ 때문이다. 출산이 가계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이기에 출산의 ‘행복’보다 ‘걱정’이 앞서는 걸까. 최근 출산한 30대 부부의 가계를 들여다 봤다.

▲ 막대한 비용 부담에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청년층이 늘고 있다.[사진=뉴시스]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김용진(가명ㆍ32)씨는 최근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의견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원룸에서 생활하며 학자금을 갚고 있는 김씨는 결혼과 출산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와 같은 삶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면서 “한국의 출산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는 건 아이를 낳아 키울 만한 사회가 아니라서다”고 꼬집었다. 김씨처럼 생각하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15~39세 청년 2534명을 조사한 결과, “결혼을 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56%(2016년)에 그쳤다. “자녀를 낳아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도 54%에 불과했다. 청년층의 절반가량이 결혼과 출산을 필수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육아휴직은 그림의 떡

출산과 육아가 실제로 가계에 미치는 부담은 어느 정도일까. 최근 자녀를 출산한 신혼부부 정진영(가명ㆍ36)ㆍ최미나(가명ㆍ31)씨의 삶을 들여다봤다. 신혼 2년차인 정씨 부부의 합산소득은 임신 전 월 370만원이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정씨가 230만원, 프리랜서 디자이너인 최씨가 140만원을 벌었다. 도시근로자 2인가구(2016년 4분기)의 평균 소득과 같다.

 

구체적인 내역을 살펴보면, 소비성지출로 생활비(60만원), 통신비(10만원), 교통비(20만원), 부부용돈(57만원), 의료비(17만원), 비정기지출(16만원) 등 180만원을 쓰고 있다. 비소비성지출은 세금(12만원), 연금(10만원), 보험(10만원), 대출이자(300 0만원 대출ㆍ연이율 2.8%, 월 7만원), 경조사비(21만원), 기부금(10만원) 등 70만원이다. 도시근로자 2인가구의 소비성지출(180만원), 비소비성지출(70만원)과 같다. 잉여자금 120만원으로 노후대비용 자유저축(30만원), 차량구입을 위한 적금(40만원), 전세대출상환을 위한 적금(50만원)에 가입했다.

정씨 부부의 가계에 변화가 생긴 건 아내가 임신을 하면서다. 아내 최씨가 입덧이 심해 회사를 관둬야 했기 때문이다. 외벌이가 되면서 370만원이던 부부의 월 소득은 230만원으로 38%넘게 줄었다. 도시근로자 1인가구의 소득(230만원)과 같은 액수다. 혼자 벌어서 셋을 부양해야 하는 셈이다.

▲ 육아휴직 제도를 쓰지 못하는 직장인이 수두룩하다. 지난해 육아휴직자는 9만명에 그쳤다.[사진=뉴시스]

정부가 육아휴직 급여를 확대하고 있지만 프리랜서인 최씨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육아휴직 급여를 수령한 육아휴직자는 9만123명에 그쳤다. 소득 감소에 따른 출산ㆍ양육비 부담은 고스란히 부부의 몫이라는 얘기다.

월평균 육아비용 107만원

더 큰 문제는 임신과 함께 필요한 비용이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 입덧약은 단적인 예다. 입덧이 심한 최씨는 한알에 2000원가량의 입덧약을 하루에 두번씩 복용하고 있다. 한달에 12만원이 드는 셈이다.

주위에서 추천하는 태아보험에도 가입했다. 월 납입금 10만원으로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선천성질병을 보장해주는 데다 아기가 태어난 후 크고 작은 치료비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출산 후에는 200만원 넘는 목돈이 산후조리원비로 나간다. 서울시의 산후조리원 이용요금 현황에 따르면 서울 시내 산후조리원의 2주 평균 요금(2018년) 320만원가량이다. 여기에 기저귀ㆍ분유값ㆍ예방접종 등 육아비용이 본격적으로 급증한다.

 

여성가족부가 추산한 평균 육아비용은 월 107만원(2017년)으로, 자녀가 한명일 경우 86만원, 2명 131만원, 3명 154만원의 육아비용이 든다. 하지만 정씨의 경우 맞벌이를 하기에도 여의치 않다. 양가 부모님이 지방에 살고 계셔서 맞벌이를 하려면 베이비시터를 둘 수밖에 없어서다. 베이비시터 비용은 월평균 119만원(보건복지부ㆍ2015년)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아이를 돌봐주는 입주형 베이비시터의 경우 한달에 200만원가량이 든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월급이 200만원이 넘지 않으면 육아를 하는 게 돈 버는 것이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영유아기에는 육아비용 중 부담이 덜한 식료품비(19.9%)와 돌봄기관비용(18.9%)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만, 자녀가 성장할수록 사교육비 비용이 높아진다. 정씨 부부는 당장의 출산ㆍ양육비와 향후 자녀 교육비 마련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기로 했다. 먼저 저축과 적금을 모두 해지했다. 노후자금마련, 차량구입, 전세대출상환의 꿈은 멀어졌다. 생활비(20만원), 통신비(4만원), 교통비(5만원), 부부용돈(18만원), 비정기지출(5만원)을 줄였다. 연금(3만원), 보험(4만원), 경조사비(1만원), 기부금(8만원), 세금(4만원)에도 메스를 댔다. 하지만 정씨는 “이렇게 아껴봐도 뾰족한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대학교육까지 시켜야 하는데 아이가 스무살이 되는 56살까지 은퇴하지 않고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생명의 탄생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한숨 쉬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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