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의혹이 11년 만에 밝혀진 이유

검찰의 칼끝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닿았다. 이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이 전 대통령에 불리한 진술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11년 전 수사 때 이들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는 점이다. 검찰도 적극적인 수사를 펼치지 않았다. 그때와 지금 달라진 건 MB의 이름 앞에 전직前職이 붙었다는 것 하나뿐이다. 이는 우리에게 또다른 시사점을 준다. 권력은 살아 있을 때 견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MB 의혹이 11년 만에 밝혀진 이유를 냉정하게 분석했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게 된 결정적 이유는 측근들의 증언이었다.[사진=뉴시스]

3월 14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 포토라인 앞에 섰다. 검찰 조사를 받는 전직 대통령이란 불명예 리스트에 5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국민 여러분께 심려 끼쳐 대단히 죄송스럽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 전 대통령은 21시간에 걸친 고강도 밤샘조사를 받은 뒤 귀가했다. 국정원 특활비 수수, 다스(DAS) 관련 비자금, 횡령, 배임, 뇌물, 청와대 문건 불법 반출 및 은닉 등 혐의 대부분을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부인했다.

이 전 대통령 소환에 결정적 역할을 한 건 ‘측근의 입’이다. 검찰은 지난해 말부터 100명이 훌쩍 넘는 피의자와 참고인을 소환조사했다. 이 전 대통령의 가족과 친인척은 물론, 청와대 참모진과 재산관리인, 측근 인사 등이 망라했다. 그중엔 ‘MB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김백준 전 청와대 기획관과 김희중 전 제1부속실장도 있었다.

김 전 기획관은 이 전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한 1992년 이후 그의 재산관리를 도맡아왔던 인물이다. 그는 검찰에 나와 “이 전 대통령의 지시로 청와대 수석실과 장관실에 국정원 돈을 줬다”고 진술했다. 김희중 전 실장은 검찰조사에서 “국정원에서 받은 특활비를 해외출장 때 달러로 바꿔 전달했고 영부인인 김윤옥 여사에게 까지 건넸다”고 털어놨다. 김 전 실장은 1997년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이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뒤 20년 넘게 핵심 세력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MB의 소환’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수사 초기단계인 지난해 12월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난관을 겪을 것’이라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전 대통령의 소환까지 끌어낼 것이라 보는 시각은 많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 전 대통령을 둘러싼 논란은 어제오늘 제기된 게 아니라서다. 과거 4차례 검찰 수사도 받았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모두 ‘무혐의’를 끌어냈다.이 전 대통령의 차명 소유 의혹을 받는 다스를 두고도 불리한 증언이 쏟아졌다. 다스의 전 사장이던 김성우씨는 최근 검찰에서 “다스의 설립과 관련해 이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강경호 현 다스 사장은 “이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다스 사장으로 취임했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검찰은 이병모 청계재단 사무국장으로부터 “다스와 도곡동 땅의 이상은 회장 지분은 이 전 대통령의 차명재산”이라는 취지의 진술도 확보했다. 이 사무국장은 이 전 대통령의 재산 관리와 자금 입ㆍ출금을 맡았던 ‘MB의 금고지기’로 불렸다.


중대관문 넘은 MB 수사


흥미로운 건 이때도 ‘측근의 입’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거다. 시계추를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이 뜨겁던 2007년으로 돌려보자. 처음 불을 붙인 건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당시 경선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이 도곡동 땅과 다스의 실소유주라고 폭로했다. 다스의 설립 과정에 납입된 자본금이 도곡동 땅 매각대금에서 나왔으며, 이 도곡동 땅이 사실은 이 전 대통령의 차명재산이라는 주장이 골자였다. 뚜렷한 증거는 없었다. 1985년 매입된 도곡동 땅이나 1987년 설립된 다스에 대한 회계서류, 은행 입출금 내역 등 자료는 이미 폐기됐기 때문이다.

이는 ‘BBK 주가 조작 사건’과도 엮였다. 결국 검찰은 칼을 꺼냈다. 2007년 조사에 이어 2008년엔 특검으로까지 이어졌다. 당시 김성우 전 사장은 특검 조사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다스는 관련이 없다”고 진술했다. 이 사무국장 역시도 도곡동 땅 매각자금을 관리한 의혹으로 조사를 받았다. 그는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는 김재정과 이상은”이라고 설명했다. 이상은 회장 역시 소환됐다. 검찰은 이들의 증언을 종합해 결론을 내렸다. “제기된 의혹은 근거가 없다.”

2012년에 구성된 내곡동 사저 특검 때도 다스는 집중 타깃이었다. 이 전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가 큰아버지인 이상은 회장으로부터 빌려 땅값으로 낸 6억원의 출처가 모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다른 결과는 없었다. 검찰 2번, 특검 2번 등 총 네차례에 걸친 수사에서 “다스가 이 전 대통령의 것”이라는 설득력 있는 증언을 누구도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들의 진술이 올해 갑자기 뒤집힌 이유는 뭘까. ‘촛불 혁명’ 이후 우리 사회에 청렴문화가 확산된 탓일까. 아니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부패 국가다. 지난해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100점 만점에 54점을 받았다. 2012년 기준이 100점 만점으로 변경된 후 한국은 50점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뒤집힌 진술들

180개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51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에서는 29위로 최하위권이다. 뚜렷한 증거가 없는 것도 11년 전 수사와 다를 게 없다. 다만 달라진 게 하나 있다. MB의 수식어에 전직이란 말이 붙었다. 그는 더 이상 ‘살아있는 권력’이 아니란 얘기다.

새 정권 초기마다 전 정권의 추악함을 드러내는 수사는 매번 반복됐다. 검찰은 ‘정치적 중립, 수사의 독립’을 강조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예외 없이 전 정권의 실세들이 줄줄이 교도소로 끌려갔다. 이번 수사도 마찬가지다. ‘적폐 청산’이란 기치가 걸렸을 뿐 과정과 결과는 다를 게 없다. 야당이 ‘표적 수사’ ‘야당 탄압’이라며 수사를 비난하는 것도 똑같다. 여당 역시 과거 야당 시절엔 같은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애초에 죽은 권력보다 살아있는 권력에 더 크게 눈을 떴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리다. MB 수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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