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걸의 有口有言] 적당히 포기하는 삶
[윤영걸의 有口有言] 적당히 포기하는 삶
  • 윤영걸 편집인
  • 호수 280
  • 승인 2018.03.20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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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오르막길에서 지친 사람들에게…
▲ 스스로 만족할 만큼만 기대하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포기하는 삶도 괜찮은 선택지다.[사진=아이클릭아트]

올해 아카데미시상식에 최다 13개 부문 후보에 오른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부족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라 더욱 아름답다. 언어장애를 겪는 청소부 엘라이자(샐리 호킨스)와 가까운 두 인물 중 한 사람은 흑인 청소부이고, 또다른 한 사람은 동성애자다.

그녀가 연구센터에 갇힌 괴생명체를 탈출시키려고 할 때 도와주는 박사는 러시아 스파이다. 그러나 TV의 뮤지컬에서 춤과 노래가 시작되면 주인공이 처한 현실의 고통이 사라지고 판타지가 펼쳐지듯, 엘라이자는 괴생명체와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행복을 만끽한다.

지난해 9월 본란에 ‘효리처럼 살기’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나 “나도 돈만 있으면 효리 못지않게 행복할 수 있다” “효리가 뭐가 소박하냐? 돈 자랑 집 자랑하는 프로그램 아니냐”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30대 가수 이효리가 제주에서 멈춤의 시간을 갖고 재충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썼는데, 솔직히 이렇게 비난 글이 쇄도할 줄 몰랐다.

TV와 각종 소셜미디어에는 성공한 사람들이 행복에 겨워하는 모습이 차고 넘친다. 그러나 이를 보는 사람들이 처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취업도 어렵고, 결혼도 쉽지 않고, 내집 마련은커녕 전월세 얻기조차 힘들다. 점차 심해지는 사회양극화가 젊은이들의 좌절감을 부채질하고 있으니 그런 반박성 댓글을 이해할 만하다.

“부자는 동서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사람을 가리킨다”는 말이 있다. 경제학자 헨리 루이스 멩켄이 남긴 이 말은 단순한 유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의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자매 사이에서 동생이나 언니 남편이 자기 남편보다 소득이 더 많은 경우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취업할 확률이 20% 더 높다고 한다. 자매보다 더 잘살기 위해 맞벌이를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어찌 자매만이 그렇겠는가. 형제간이나 남매간이나 친구지간이나 이웃지간이나 오십보백보다.

사람들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과 비교해 행복과 불행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자신이 느끼는 불행을 ‘이웃효과(neighbors effect)’라고 말했다. 행복의 첫번째 조건은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것인데, 우리는 24시간 비교를 강요당하며 살고 있다.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더 좋은 학교와 더 많은 재산과 더 큰 성공을 위해 경주마처럼 질주하니 행복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이 이를 방증한다. 남의 눈을 의식하고, 남과 비교하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행복할 수 없다. 솔직히 말해 필자 또한 남과 늘 비교하며 산다. 누군가가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축하에 앞서 지금 내 자신과 비교하며 한숨을 짓기도 한다.

남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포기를 긍정하는 삶을 누려보면 어떨까. 자포자기에 빠진 삶이 아니라 스스로 만족할 만큼만 기대하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포기하자는 얘기다. 적당한 포기는 내적 충만과 긍정하는 삶을 불러온다. 포기할 줄 아는 것은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만을 선택하겠다는 용기를 뜻한다. 안 하겠다고 하는 결심은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의사결정이다.

우리는 포기라고 하면 무조건 어리석거나 나쁘다고 생각한다. 성공 가능성이 매우 희박함에도 끝가지 포기하지 않는 전투적 삶으로 스스로를 학대하면서 삶을 피폐하게 한다. 윈스턴 처칠은 “절대 절대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연설했지만 삶에서 언제나 통용되는 법칙은 아니다.

포기는 각박한 삶에서 벗어나 다양화를 위한 선택이다. 한 사람이 자신에게 꼭 맞는 신발이나 외투를 가지려면 자신의 치수에 맞는 것을 맞추거나 입어보고 골라야 한다. 쇼핑도 이럴진대 하물며 한 인생을 특정유형에 맞춰 살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가혹한 일이 될 것인가. 가망이 없으면 일찍 패를 던져버리되,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일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유론」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은 세 가지 주장을 제시한다. 첫째, 모든 사람들은 실제로 자신들에게 적합한 삶을 선택할 수 있다. 둘째, 한 사람에게 좋은 삶의 방식은 다른 사람에게는 좋지 않은 것이 될 수 있다. 셋째, 한 사람이 선택한 삶은 그 자신이 스스로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가장 좋다. 행복은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자유의 발견에 있고, 선택지는 다양하다. 인생의 오르막길에서 너무 지친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다.
윤영걸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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