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 6人의 봄‧여름‧가을‧겨울 | 이상묵 스테이폴리오 대표

“언제든 머물고 싶은 숙박업소를 선별해 소개하는 플랫폼 채널.” 2015년 봄, 스테이폴리오가 탄생했다. 어릴 적 건축가를 꿈꾸던 이상묵 대표가 우여곡절 끝에 창업에 나선 결과다. 지금은 여행업계에서 꽤 알아주는 채널로 통하지만, 이 회사엔 작은 비밀이 있다. 주춧돌이 이 대표의 블로그라는 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스테이폴리오의 엉뚱한 시작과 마주앉았다.

▲ 이상묵 스테이폴리오 대표는 “누구나 머물고 싶은 공간을 큐레이션 하는 게 내 일”이라고 설명했다.[사진=천막사진관]

“자,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는 이제 영가든이다.” 11살 소년은 그저 들떴다. 아버지가 손으로 그린 도면이 허허벌판 대지 위에서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평범한 직장인이던 소년의 아버지는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식당 사장님’이란 타이틀을 얻었다. 

아버지의 고향인 충남 서산 해미군에 330㎡(약 100평) 규모의 식당을 세우면서다. 이름은 ‘영가든’. 이 신통한 건물 안에는 소년의 방도 있었다. 소년은 방에 몸을 눕힐 때마다 꿈을 키웠다. 건축가였다. 건물과 공간에 담긴 역사와 이야기가 좋았다. 영가든에 자신의 인생을 투영한 아버지처럼 말이다.

그로부터 27년이 흐른 지금, 소년은 스타트업 대표가 됐다. 이상묵(36) 스테이폴리오 대표 얘기다. 스테이폴리오는 요새 뜨는 ‘플랫폼’ 기업이다. 여행객과 숙박업소를 연결하는 게 이 스테이폴리오의 일이다. 등록 숙박업소는 350개 남짓. 방방곳곳에 널린 수많은 숙박업소 중에서도 까다롭게 선별한다. 건물을 짓고 직접 운영하는 곳만 해도 12개다. 어릴 적 꿈꾸던 건축가의 길 대신 뜬금없이 플랫폼 기업을 만든 이유는 뭘까. 이 대표는 “사연이 길다, 하지만 꿈을 접은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

2000년, 이 대표는 건축학도가 됐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꿈에 그리던 걸 공부하게 됐는데, 건축에 흥미를 잃었다. 건축도면이 딱딱하게만 느껴졌다. 이 대표는 ‘딴짓’을 시작했다. 밴드부에서 기타도 쳐보고 놀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그가 가장 많이 한 딴짓은 산책이었다. 서울 성곽길은 그만의 핫플레이스였다. 그러다 인생의 좌표를 ‘도시계획 분야’로 바꿨다. 건물만 올리는 건축과 달리 온 동네를 만든다는 점에서 솔깃했다. 대학원도 도시계획, 회사도 그쪽으로 입사했다. ‘명동’ ‘북촌 한옥마을’ 등 굵직한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블로그도 그 무렵 시작했다. 공간, 건축, 인테리어에 관한 생각을 글로 정리하면 왠지 속이 후련해졌다. 주 전공은 숙박업소였다. 멋있다고 소문난 곳은 일일이 방문하면서 펜션 주인들의 인터뷰를 담았다. 전공을 살려, 건물의 양식을 살피고 특징을 분석했음은 물론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 대표는 주변 풍경, 마을 주민과 어울리는 ‘독특한 숙박업소’를 만들겠다는 꿈을 키웠다. 가족의 보금자리, ‘영가든’을 첫번째 리모델링 대상으로 삼았다. 평당 400만원이나 하는 리모델링 비용엔 이 대표 가족의 종잣돈이 투입됐다. 건축도면 잘 짜기로 소문난 선배에게 ‘SOS’를 쳤다. 건축 대신 웹디자인만 파던 선배한테도 손짓했다.

2011년 겨울, 세 남자는 머리를 맞대고 영가든을 리모델링하는 일에 시간을 쏟았다. 금요일에 휴가를 내고 주말마다 서산을 찾았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0으로 돌아가는 곳.” 이듬해 봄, 25년 된 낡은 식당 영가든은 매력적인 펜션 ‘제로플레이스’로 탈바꿈했다.

건축학도의 새로운 꿈

그런데 난관에 부딪혔다. “만들 땐 좋았죠. 그런데 만들고 보니 ‘넥스트 전략’이 없었습니다. 가야산과 황락호수를 낀 제로플레이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입소문만으로 알릴 순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다행히 이 대표는 난제를 등잔 밑에서 해결했다. 블로그다. 마침 숙박업소 탐방 콘텐트가 쌓여 따로 메뉴를 만들어 이름도 붙여뒀었다. ‘스테이폴리오(stayfolio)’. 스테이(stay)와 포트폴리오(portfolio)의 합성어다. 스테이폴리오는 제로플레이스와 여행객의 훌륭한 소통 창구가 됐다.

2015년 봄이 꿈틀대던 4월, 이 대표는 블로그 속 스테이폴리오를 회사로 만들었다. 애플리케이션(앱), 매거진, 영상 등 다양한 콘텐트로 숙박업소가 가진 고유의 정체성을 설명했다. 2016년 10월엔 실시간 숙박 예약 관리 서비스를 론칭해 수익 모델도 만들었다. 덕분에 창업 첫 해 5400만원에 불과하던 매출이 지난해 5억원을 넘어섰다. 그사이 직원도 4명을 더 늘렸다.

스테이폴리오 콘텐트엔 남다른 경쟁력이 있었다. “숙박업소와 손님을 연결하는 서비스는 많습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왜 연결하는지를 묻지 않아요. 그저 많은 숙박업소와 연결해 수수료를 챙기는 데 급급합니다.” 이 회사가 선별한 숙박업소들은 단순히 여행지에서 하룻밤 들르는 곳이 아니다. 머무는 것 자체로도 멋진 여행이 될 수 있는 곳만 꼽는다.

▲ 스테이폴리오가 운영 중인 숙박업소는 저마다의 개성이 묻어있다.[사진=스테이폴리오 제공]

스테이폴리오의 철학을 온전히 공유하는 ‘시그니처 숙소’도 12개를 보유했다. 제로플레이스를 만든 3인방과 함께 세운 건축사무소 지랩이 만든다. 1937년에 지어진 한옥 폐가를 독채형 렌탈하우스로 바꾼 ‘창신기지’엔 이런 게 잘 녹아있다. 낡은 한옥촌의 풍경이 어느덧 개성 있는 골목길로 거듭났다. 창신기지는 이 골목의 랜드마크로 통한다.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스테이폴리오는 다양한 스타트업 공모전에 도전했다. 트로피도 여럿 거머쥐었다. 스테이폴리오의 가능성을 눈여겨본 사람들로부터 투자 제안을 받기도 했다.

사람과 공간을 이어주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 대표는 손사래를 쳤다.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조금씩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싶어요. 여행의 속성이 그렇잖아요. 느리지만 충분히 주변 풍경을 즐길 수 있어야 하죠. 스테이폴리오도 그렇게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올여름 목표는 ‘해외시장 진출’이다. 베트남에 스테이폴리오만의 특색이 묻어나는 숙박업소를 짓는 게 목표다. 하지만 가시밭길은 여전히 많다. 초심을 잃지 않고 돌파하는 게 목표다. 시시각각 변하는 경영 현황을 파악하는 것도 이 대표의 몫이다. 그의 여름은 어떤 모습일까.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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