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학號 방향 잘 잡았나

지난 3월 19일 말 많고 탈 많던 홍종학號가 닻을 올린 지 119일을 맞았다. 헌법 제119조(2항)에 입각해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 세우기, 생존권을 위협받는 중소ㆍ벤처기업ㆍ소상공인의 119에 응답하는 일 등 홍종학 장관과 중소기업벤처부의 어깨를 짓누르는 현안은 한두개가 아니다. 과연 이들은 방향을 잘 잡았을까. 시장의 반응은 아쉽게도 냉랭하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홍종학號의 민낯을 들춰봤다.

▲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중기부를 ‘지원부서’라고 말했다.[사진=뉴시스]

지난해 11월 신설된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의 특명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출범식 축사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목표는 오직 중소기업이 마음껏 일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중기부는 이 특명을 잘 실현하고 있을까.

홍종학 장관이 취임한 지 석달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어서 섣불리 평가하기는 힘들다. 홍종학 중기부 장관도 “그동안 중소기업 정책을 정비하고 기틀을 마련했고,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기부의 행보를 바라보는 중소ㆍ벤처기업과 소상공인들이 환영보다는 우려의 시선을 더 많이 보낸다는 건 걱정스러운 일이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중기부의 정책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비판이 많다. 지난 2월 발표한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대책’은 대표적 사례다. 이 대책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했을 때 징벌적손해배상액을 3배에서 10배로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협력해 만든 꽤 그럴듯한 정책이다.

문제는 중소기업이 피해를 입고도 온전히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갑을계약이 그대로 존속하는 상태에서 불만을 표시하면 을만 손해를 보는데 누가 입을 열겠는가”라고 토로했다.

우리나라의 을乙은 부당함을 쉽게 표출하지 못한다. 그랬다간 더 날카로운 부메랑을 맞을 게 뻔해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중소기업중앙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에 전속고발요청권을 부여하겠다고 하자, 중기중앙회가 전담팀까지 꾸리겠다면서 적극 환영한 건 이 때문이다. 그래서 을이 맘놓고 뛰놀 만한 생태계를 만들지 않으면 숱한 정책이 효과를 내기 힘들다는 건 정설에 가깝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의 계약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고, 임대료 인상 상한선을 기존 9%에서 5%로 낮춰도 임차인들의 부담감이 줄어들지 않을 거라는 비판이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중기부와 공정위가 손잡고 내놓은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대책도 징벌적손해배상액을 늘리는 게 핵심”이라면서 “중소기업이 입 다물고 있으면 끝”이라고 말했다. 홍 장관과 중기부가 눈에 보이는 제도개선에만 치중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지는 이유다.

중기부의 걸음을 우려하는 눈초리가 많은 이유는 또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일방적으로 풀기 쉽지 않은 문제를 중기부가 지나치게 쉽게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이 그 예다.

최저임금 인상 후 중소기업인들은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정기상여금ㆍ숙식비ㆍ현물급여 등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해 달라”고 주장해왔다. 홍 장관은 지난해 12월 중소기업인과의 간담회에서 “정부 내에서도 일정 부분 공감대가 있는 만큼 중기부가 여러 역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홍 장관의 말처럼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이 일부 측면(한계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현실을 고려할 때)에서 공감대를 얻는 건 사실이다. 다만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은 노동계의 이해에 직접 얽혀 있는 문제여서 충분한 설득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괜한 갈등을 빚을 수 있다.

실제로 노동계는 정부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 얘기가 나오자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된 사항을 일방적으로 바꾸는 거나 다름없다”면서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여당과 야당의 의견이 다르고, 야당 내에서도 각 당의 입장이 다르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론내지 못한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을 정치권에서 쉽게 해결할 수도 없다는 얘기다.

현실성 없는 정책, 반응은 냉랭

홍 장관이 취임 이후 38회의 현장 방문 중 총 25회나 홍보했다는 일자리 안정자금도 논란이 많다. 일부에서 “안정자금을 수혜자인 노동자가 아니라 고용주에게 지급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있지만, 주무부서가 아닌 중기부는 뾰족한 수도 없고, 별다른 의견도 없다.

사실 비슷한 실패 사례도 있다. 고용노동부는 2016년부터 기업에 고용을 늘리라는 취지에서 고용장려금을 지원하고 있는데, 실제 고용은 늘지 않고 되레 가짜 고용으로 지원금만 빼먹는 사례가 심심찮게 되풀이되고 있다.

이정우 인제대(사회복지학) 교수는 “일자리 안정자금을 고용주에게 지급하면 오히려 비교적 여유 있는 고용주가 혜택을 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더스쿠프 276호 ‘부실한 안전망, 약자만 몰아세우다’ 참조) 홍 장관이 일자리 안정자금의 실질적 효과를 고민해보지 않고 홍보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기부 정책 중 중소기업들로부터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협력이익공유제’도 빈틈이 많다. 대기업이 참여를 약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야간 합의도 쉽게 이끌어내기 힘든 사안이다. 그럼에도 중기부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기획안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되면 좋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기부가 아예 손을 놓고 있는 사안도 있다. 한국GM 사태에 관한 대응책 마련이다. 중기부는 한국GM이 군산공장을 폐쇄하면 부품을 공급하는 다수의 중소기업을 구제할 계획을 마련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홍 장관의 주장은 납득하기도 어렵다. “중기부가 관여하면 공장폐쇄를 전제하는 것이어서 지원부서인 중기부가 들어가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협상 결론이 나오면 중기부가 지원할 수 있는 것들을 지원할 것이다.”


이 주장은 뭇매를 맞고 있다. “청에서 부로 승격된 만큼 중기부의 역할을 확대해야 할 텐데, 장관 스스로 중기부를 ‘지원부서’라고 낮추고 있으니 무슨 생태계 변화를 기대하겠는가” 하는 이유에서다.

중소기업연구원에 오래도록 몸담았던 김승일 파이터치연구원장은 “애당초 중기부가 할 수 없는 일을 주문한 것 아닌지 의문”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불공정행위를 바로잡는 건 공정위와 검찰의 몫이다. 대기업은 산자부가 담당하고, 돈은 기재부가 들고 있다. 기술 관련 업무는 과기정통부 담당이다. 개성공단엔 통일부, 수출에는 외교부가 관여한다. 그리고 ‘기울어진 운동장’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이를 바로 세우기 위해 혼자 할 수 있는 게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다.

김승일 원장의 주장은 “그러니 중기부가 손을 놔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각 부처의 장과 긴밀하게 공조하면서 뭘 뜯어고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중기부 수장의 역할이라는 얘기다. “중기부가 ‘지원부서’라는 장관의 생각부터 바뀌어야 한다. 운동장이 기울어진 건 그동안 중소기업이 지원을 적게 받아서가 아니라 시스템이 잘못돼 있기 때문인데, 그걸 바꿀 생각을 안 한다. 이러다간 엄청나게 많은 중기 관련 업무를 다 파악하지도 못한 채 재임기간을 마칠지도 모른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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