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시카리오❷

미국 정부는 멕시코 거대 마약조직인 소노라 카르텔이 자국의 안방 애리조나 주에서 벌인 엽기적인 사건에 마침내 칼을 뽑아 든다. 소노라 카르텔 타도를 위해 CIA, FBI와 특수부대 델타포스(Delta Force)까지 참여한 범정부적 원정대를 꾸린다. 여기에 멕시코 무장경찰까지 총동원됐으니 그야말로 다국적군인 셈이다.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 정부는 원정대를 멕시코로 보낸다. 델타포스와 멕시코 무장경찰의 무시무시한 호위를 받으며 국경을 통과하는 원정대를 소노라 조직원들이 나름 저지해 보지만 델타포스가 일거에 격멸한다. 권총을 들고 탱크에 맞서는 꼴이었다. 소노라가 미국원정대를 시시한 동네 라이벌 마약조직쯤으로 생각했다면 절대 오산이다.

CIA의 매트 그레이버(조시 브롤린)와 FBI의 케이트 메이서(에밀리 블런트)가 미국 ‘마약 원정대’를 이끈다. 그레이버는 베테랑 CIA 요원이다. 그는 동네 마트 가는 복장으로 맨발에 슬리퍼를 끌고 가장 편한 자세로 의자에 누워 공식 회의를 진행한다. 반면, FBI의 보기 드문 여성 현장 정예요원인 메이서는 원칙과 규정에 충실하고 사명감에 불타는, 말 그대로 ‘영혼이 있는 공무원’이다.

CIA와 FBI 요원들로 구성된 원정대에 조금은 이질적인 인물이 하나 속해 있다. 말 없고 눈빛 그윽한 알레한드로(베니치오 델 토로)라는 인물이다. CIA 쪽 사람인 것 같은데 이상하게 그레이버는 메이서에게 그를 정식으로 소개하지 않는다.

그러나 범죄의 냄새에 특화된 메이서의 눈썰미와 후각은 알레한드로에게서 석연치 않은 ‘범죄의 냄새’를 맡는다. 메이서의 탐문에 알레한드로는 자신이 콜롬비아에서 온 마약 사건 전담 검사라고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한다. 사실 알레한드로는 콜롬비아의 악명 높은 마약조직 메데인 카르텔의 비운의 보스다.

▲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 정부는 범정부적 원정대를 멕시코로 보낸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마약 전쟁에서 멕시코 소노라 카르텔에게 가족들이 몰살당하고 그 복수를 위해 미국 마약원정대의 길잡이로 참여한 인물이다. 전시戰時가 아닌 다음에야 멕시코 영토에 진입해서 마약 카르텔 수뇌부를 직접 처단하기는 어렵다. 미국으로선 복수심에 불타는 알레한드로의 손을 빌리는 ‘차도살인借刀殺人’이 최선의 전술이다. 차도살인은 36계 중 3번째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영악한 계략이다.

알레한드로의 정체를 알아챈 메이서가 그레이버에게 ‘영혼 있는 공무원’답게 원칙과 규정을 따지고 든다. 마약 카르텔 보스에게 필요한 정보 정도는 얻을 수 있겠지만 그를 작전에까지 참여시키는 것은 ‘선線을 넘은 것’이라고 이의를 제기한다.

그러나 ‘영혼이 들락날락하는 공무원’인 그레이버는 대단히 냉소를 머금은 채 정치학 입문을 메이서에게 강의한다. “이 모든 것은 상부의 허가를 받은 것이다. 그들은 우리 같은 임명직 공무원이 아닌 선출된 공무원이다. 네가 이것이 선을 넘은 것이라고 하는데, 선은 네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정하는 것이다.”

결국 마약 범죄를 쫓던 메이서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콜롬비아 메데인 카르텔의 거물과 함께 멕시코 마약 카르텔 소탕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알레한드로는 마침내 소라노 카르텔 두목인 마누엘과 가족을 몰살하는 복수에 성공한다.

작전이 성공한 후 알레한드로는 메이서의 아파트에 연기처럼 숨어 들어와 그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모든 작전은 합법적으로 진행됐다’는 서류에 확인 서명할 것을 강요한다. 그레이버는 마무리까지 알레한드로의 손을 빌려 처리한 것이다. 아무리 영혼이 충만한 공무원이라지만 총구 앞에서 메이서는 속수무책으로 허위 서류에 서명한다.

▲ 지방선거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지방선거는 영혼 있는 단체장을 뽑을 기회다.[사진=뉴시스]

지난 정권 국정농단 사태의 단죄 과정에서 소위 ‘영혼 없는 공무원’들의 작태가 도마에 오르내렸다. 그러나 잘못 선출된 권력 아래 놓인 임명직 공무원들에게 영혼을 요구하거나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과도하거나 허망한 노릇이다. 공무원은 국민에게 충성해야 하는 집단이고, 국민에게 충성하는 길은 국민이 선출한 권력에 충성하는 일일 수도 있다. ‘국민의 명령’과 ‘국민이 선출한 권력의 명령’이 일치하지 않으면 모든 공무원이 ‘영혼 없는 공무원’이 될 수밖에 없다.

‘선출직 공무원’을 선택하는 6월 지방선거로 벌써부터 나라가 시끄럽다. 충분히 어지러워도 될 만큼 중대한 행사다. ‘영혼 있는 공무원’을 원한다면 우선 ‘영혼 있는 단체장’을 선출할 일이다. 영혼 없는 권력을 선출해 놓고 공무원들에게 영혼을 강요하면 그들도 억울하고 대책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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