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상점 영업시간 제한법의 시사점

지난 2월 고양 스타필드 입점 업주가 자살했다. 업주는 명절 연휴에도 쉬지 못하고 장사를 했지만, 직원 임금을 주기도 벅찼다고 한다. 자영업자들의 노동시간 연장이 사회 전체의 경제적 부富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영업시간을 규제해 자영업자들의 노동시간을 줄여주면 어떨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이 질문의 답을 독일의 사례에서 찾아봤다. 이정우 인제대 교수가 의견을 냈다.

▲ 자영업자들은 무한경쟁과 과당경쟁 속에서 노동시간만 늘리고 있다. 한국경제 전체로 볼 때 매우 비효율적이다.[사진=뉴시스]

사람들이 꽉 들어찬 극장. 맨 앞줄에 앉은 사람이 영화를 더 잘 보기 위해 일어선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뒷줄에 앉은 사람도 일어나게 될 거다. 그 뒷줄에 앉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결국엔 모두가 서서 관람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참고 : 극장의 좌석구조 문제는 논외로 하자.]

개인의 합리적 행동이 전체적으론 불합리한 결과를 낳는다는 ‘구성의 모순(fallacy of composition)’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중요한 건 이 사례가 우리나라 자영업자들의 열악한 삶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자영업자들의 삶을 통계로 살펴보자. 지난 5일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소상인 일과 삶의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국내 자영업자(음식업ㆍ숙박업ㆍ도소매업 등 종사자 수 5인 미만)들의 ‘일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51.6점이었다. 2014년 조사 때보다 9.9점 줄었다. 같은 기간 ‘삶 만족도’는 11.6점 줄어든 54.3점이었다. 영세자영업자들이 일과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거다. 이유가 뭘까.

일단 자영업자가 너무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체 취업인구 가운데 자영업자 비중이 2014년 26.8%에 이른다. OECD 회원국 전체 평균인 15.4%보다 11.4%포인트가량 높은 수치다. 자영업자의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높으니 그 자체로 이미 과당경쟁이다.

업종도 특정 분야에 쏠려 있다. 지난해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2015년 대비 신규 자영업자가 가장 많이 늘어난 업종은 숙박ㆍ음식업과 부동산ㆍ임대업이었다. 전문화된 서비스업이나 건설업에서는 자영업자가 되레 줄었다. 상당수가 전문성이 없는 소자본 생계형 창업자라는 얘기다. 가뜩이나 자영업자도 많은데, 특정 분야에 몰리니 경쟁이 심해지고, 퇴출 압력도 커지는 거다.

2016년말 기준 우리나라 자영업의 5년 생존율이 27.5%(통계청)에 불과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숙박ㆍ음식업은 17.9%로 매우 취약하다. 게다가 자영업자들은 사업체에 소속된 노동자와 달리 국가에 의해 보호를 받기 힘들다. 예컨대 노동자를 해고하려면 요건을 갖춰야 하고, 해고 후엔 실업급여를 받는다. 자영업자는 경쟁에서 밀리는 그 즉시 가게 문을 닫아야 하고, 이후엔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다. 자영업자들은 생존을 위해 무한경쟁에 내몰리는 셈이다.

자영업자 노동시간 왜 늘었나

자본도, 전문성도 없는 영세자영업자들이 과당경쟁과 무한경쟁 속에서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다. 결국 그들은 직원을 고용하지 않고 스스로 일하는 시간을 늘린다. 자영업자들의 노동시간이 높은 건 이 때문이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자영업자들의 월평균 노동시간은 294.4시간이다. 월평균 3일을 쉬는데, 30일을 기준으로 하면 하루 평균 10.9시간을 일하는 셈이다. 법정노동시간인 8시간보다 3시간 가까이 많다.

▲ 노동시간을 줄이면 남는 시간을 좀 더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일에 사용할 수 있다.[사진=뉴시스]

특히 사업의 매출이나 이윤이 적을수록 노동시간이 더 길어지는 경향이 뚜렷했다. 업종별로는 음식업종 월평균 노동시간이 308.6시간으로 전체 업종 중 가장 길었다. 노동강도는 70.7점으로 가장 셌고, 직업만족도는 48.7점으로 가장 낮았다.

문제는 영세자영업자들의 노동시간 연장이 다른 사업주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노동시간을 늘린다고 해서 매출이 확 늘어나는 건 아니지만, 혹시 있을지 모르는 매출을 뺏기지 않으려 사업주들은 기회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앞서 말한 ‘구성의 모순’이 일어난다. 전체 매출의 증가는 미미하고, 노동시간 총량만 늘어나며, 결국 몸은 망가지는 이런 상황이 과연 합리적일까. ‘한국경제의 효율성’ 측면에서 봐도 결코 합리적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자영업자들은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 참고로 노동자를 위한 제도는 이미 마련됐다. 근로시간단축법에 따르면 올해 7월부터 300인 이상 기업의 노동자는 주당 52시간(주 40시간+연장 12시간) 이상 일할 수 없다. 이전의 68시간에서 16시간 줄어든다. 자영업자들만 예외일 수 없다.]

독일이 영업시간 제한한 이유

필자는 독일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독일은 1900년부터 ‘상점 영업시간 제한법’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 법의 장점은 분명하다. 첫째, 사업주와 노동자의 휴식권을 보장해 노동능력을 유지하고, 가족기능의 재생산을 도모한다. 둘째, 국가의 합리적 개입과 공정한 중재를 통해 사업주들은 ‘자기파괴적’인 과당경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고, 관리비용을 줄일 수 있다.

셋째, 국가는 불필요한 노동시간과 상점 운영시간을 줄여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노동자는 그 시간을 좀 더 생산적인 일에 쓸 수 있다. 넷째, 사업주들에게 ‘공정한 경쟁을 위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 유통시장의 질서를 조절할 수 있다.

누군가는 “영업시간을 제한하면 소비자가 불편해지지 않겠느냐” “소비가 오히려 줄어들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가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사회 전체적인 비효율을 유지해선 안 된다. 영업시간을 늘린다고 더 많은 경제적 이윤이 창출되지 않는다는 것도 앞서 나온 통계로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상점 영업시간을 제한함으로써 더 크고 의미 있는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거다.

물론 그 과정에서 문을 닫는 한계 자영업자들이 쏟아져 나올 거다. 이들을 위한 안전판을 마련하는 게 바로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살 권리가 있고, 이를 헌법이 보장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비춰 봐도 정부가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줄여준 것처럼 자영업자들에게도 비슷한 혜택이 갈 수 있게끔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글=이정우 인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socwjwl@hanmail.net
정리=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