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3사 무약정 요금제 빛과 그림자

이통3사가 최근 무약정 요금제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소비자들을 약정으로 묶지 않고 더 많은 데이터를 제공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언뜻 소비자 입장에선 괜찮은 제안일 것 같다. 하지만 여기엔 더 많은 이익을 챙기려는 이통3사의 전략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무약정 요금제의 민낯을 들춰봤다.

▲ 최근 이통3사가 무약정 요금제 혜택을 늘리고 있다.[사진=뉴시스]

KT가 지난 14일 새로운 스마트폰 요금제를 출시했다. 기존 요금제보다 데이터를 최대 3.3배까지 제공하는 요금제다. 가격은 동일하고, 무약정이다. 소비자로선 12~24개월 이통사에 묶일 필요가 없다. KT는 “약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수요를 겨냥했다”면서 “저가 요금제 중심으로 데이터를 파격적으로 제공하겠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에겐 요금제를 바꿔볼 만한 ‘달콤한 제안’이다.

KT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LG유플러스는 약정을 걸지 않고 요금제를 이용하는 고객에게 데이터를 2배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내놨다. SK텔레콤은 3월 5일 무약정 고객에게 포인트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요금제 가격에 따라 3000~9000점의 포인트가 매월 지급된다. 포인트는 모아뒀다 나중에 현금처럼 단말기 할부금이나 요금납부에 쓰는 식이다.

이통3사의 이런 행보는 ‘약정 고객 모시기’식 판매 전략과 대조를 이룬다. 약정 고객은 이통3사 마케팅의 핵심 타깃이다. 한번 가입하면 최고 2년까지 통신비를 꼬박꼬박 납부하는 ‘충성 고객’이 되기 때문이다.

박용완 영남대(전자정보공학) 교수는 “통신산업에는 천문학적 투자비용이 투입되지만 상용화 이후엔 운용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아 규모의 경제 원리가 적용된다”면서 “이통사들이 다수 고객을 장기간 유치할 수 있는 ‘약정 고객’을 선호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런 면에서 무약정 요금제는 이통3사에 유효한 전략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통3사가 ‘무약정 요금제’를 꺼내든 이유는 무엇일까. 이 답을 찾기 위해선 ‘선택약정할인’ 제도를 알아봐야 한다.



선택약정할인은 이통사를 거치지 않고 단말기를 구입해 단말기 보조금을 받을 수 없는 소비자들을 위해 2014년 10월 만들어졌다. 산정기준이 복잡한 단말기 보조금과는 달리 정해진 할인율이 적용돼 소비자로선 이해하기 쉽다.

반면 이통사는 선택약정할인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할인율이 정해져 있는 탓이다. 단말기 보조금의 경우, 임의로 보조금 액수를 정할 수 있어 마케팅 수단으로 적극 활용돼 왔다. 고가의 요금제를 이용할수록 더 많은 보조금 혜택을 받도록 하는 식이다. 하지만 선택약정할인은 이통사가 개입할 여지가 아예 없다. 이통3사 입장에선 마지못해 진행하는 할인정책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할인금액 부담도 크다. 도입 당시 12%였던 할인율은 2015년 4월 20%로 오르더니 지난해 9월 25%로 한차례 더 상향됐다. 선택약정을 선택하는 가입자 수가 빠르게 증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1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5% 약정할인 가입자 수가 할인율이 상향된 지 6개월 만에 1000만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20% 약정할인 가입자수가 1000만명을 넘는데 26개월이 걸린 걸 감안하면 매우 빠른 속도다.

휴대전화 판매 대리점 관계자는 “이통사에서 공개하는 공시지원금(단말기 보조금)보다 선택약정할인을 받았을 때 할인 금액이 더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단말기 보조금보다 선택약정할인으로 약정을 거는 게 더 싸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흥미롭게도 이는 이통사에 좋은 소식이 아니다. 할인율이 높아질수록 이통3사의 이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서다. 한편에선 이통3사의 영업이익이 지난해 3분기 9338억원에서 4분기 6459억원으로 크게 줄어든 이유를 선택약정할인에서 찾는다. 업계 관계자는 “신규 고객은 물론 약정 기간 만료를 앞둔 20% 선택약정할인 가입자들도 재약정을 통해 25% 선택약정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 다시 이통3사가 무약정 요금제를 밀어붙이는 이유를 찾아보자. 이통3사로선 선택약정할인에 가입한 고객을 빼내야 한다. 그래서 찾아낸 게 ‘무약정 요금제’다. 데이터를 많이 주는데다 약정이 없다는 점을 ‘매력 포인트’로 삼은 것이다.

권남훈 건국대(경제학)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이통3사의 실적 저하는 이미 예고된 상태다. 머지않아 대부분의 고객이 25% 선택약정을 쓸 가능성이 높아서다. 그것만큼은 이통3사가 정말 피하고 싶은 상황일 것이다. 이통3사가 무약정 혜택을 늘리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선택약정으로 떠나는 고객들을 무약정 요금제로 붙잡아 보겠다는 전략일 가능성이 높다.”

혹자는 “무약정 요금제가 소비자에게 좋을 수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한다. 당연한 말이다. 이통3사가 최근 내놓은 무약정 요금제도 겉으론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이통3사 관계자들도 이구동성으로 “무약정 요금제로도 충분한 데이터를 즐길 수 있도록 데이터 제공량을 늘렸다”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가입자들의 데이터 사용량을 살펴보면 이통3사의 주장이 정말로 소비자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다. 일반 소비자들의 데이터 사용량은 거의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무선데이터 트래픽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4G 일반 요금제 가입자(무제한 요금제 제외)의 1인당 트래픽은 1989MB. 2년 전(1942MB·2015년 3월 기준)보다 고작 47MB 늘어난 수준이다.

그렇다고 무약정 요금제가 기존 요금제보다 가격 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가령, KT의 무약정 요금제인 ‘LTE 데이터 선택(무약정)’과 기존의 ‘LTE 데이터 선택’에서 1GB를 제공하는 요금제는 각각 3만2890원, 3만8390원이다. 기존 요금제가 5500원 더 비싸다.

하지만 기존 요금제는 25% 선택약정할인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2만8765원으로 가격이 떨어져 무약정 요금제가 되레 4125원 비싸진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무약정 요금제는 기본적으로 약정 요금제보다 통신비 부담이 크다”면서 “이통3사가 약정 할인으로 알뜰하게 통신비를 절약하고 있는 소비자들을 무약정 요금제로 꾀어내고 있다”고 꼬집었다. 더 많은 혜택을 드린다는 이통사의 말 이면에 교묘한 ‘노림수’가 있을지 모른다는 얘기다.
임종찬 더스쿠프 기자 bellkic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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