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받은 만큼 되갚아주고 싶은 본능

▲ 9년 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막바지에 제동을 걸었더라면 상황은 지금과 달라졌을지도 모른다.[사진=뉴시스]

서울 강남 최고급 아파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풍경이다. 김상곤 교육부총리가 갖고 있어서 더 유명해진 이 아파트는 재건축 과정에서 인근 학교와 일조권 소송이 벌어져 42억5000만원의 배상금을 부담했다. 완공 후 1단지 주민들은 자신들이 배상금을 모두 부담했다며 2단지 주민들이 1단지에 있는 수영장ㆍ헬스ㆍ북카페ㆍ사우나ㆍ골프연습장 등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법원은 1단지 주민의 손을 들어줬고, 현재 1단지와 2단지 사이는 철제펜스로 굳게 막혀 있다. 학교와 가깝다는 이유로 거액의 배상금을 부담한 1단지 주민들의 서운한 감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하지만 정녕 해결방안이 없었던 걸까.

네덜란드의 전도자 코리텐 붐(1892~1978년) 여사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들을 숨겨줬다는 죄목으로 나치 수용소에 갇혀 심한 고문을 당하고 가족들은 모두 처형을 당했다. 전쟁이 끝나자 그녀는 세계 각국을 다니며 사랑의 메시지를 전했다. 독일 어느 도시에선 집회를 마치고 사람들과 악수를 하다가 갑자기 피가 거꾸로 흐르는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바로 가족을 죽이고 자신을 고문했던 수용소 간수였기 때문이다. 순간 번민하던 코리텐 붐 여사는 “그를 용서하라, 그를 사랑하라!”는 하늘의 음성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그 간수의 손을 잡았다.

코리텐 붐 여사의 행동은 널리 회자되는 교훈이다. 그러나 이치에는 맞지 않는 면도 있다. 학살된 희생자들은 자신들 대신 독일인 간수를 용서해주도록 어느 누구에게도 권리를 위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살인과 명예훼손은 참회가 가능하지만 용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죽은 사람이 살인자를 용서할 수 없는 노릇이고, 명예란 한번 훼손되면 결코 이전과 똑같이 복구될 수 없다. 무조건 인심을 쓰듯 용서하면 어떻게 사회질서가 바로 잡히며 역사가 발전하겠는가.

우리는 가족ㆍ친구ㆍ직장 등 수많은 네트워크 속에 산다. 그러니 분노할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원수를 사랑하라’ ‘왼쪽 뺨도 내밀라’고 하지만 부당하게 나를 핍박하고 상처를 준 사람을 어찌 꿈에서라도 잊을까. 사람을 미워하는 죄가 가장 크다고 하지만 말이 쉽지 용서처럼 어려운 게 없다. 인간은 누구나 피해를 받았으면 그만큼 되갚아주고 싶은 본능이 있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은 평생 앙숙이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악업을 쌓지 않았다. 1997년 10월 강삼재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의 폭로로 DJ가 수사선상에 오르자 당시 대통령이던 YS는 김태정 검찰총장을 불러 수사중단을 지시했다. 95년에도 노태우비자금 사건으로 DJ가 20억원 이상 받았다고 폭로됐는데도 그는 문제 삼지 않았다. 정적을 지켜준 YS와 훗날 정치보복을 일절 하지 않았던 DJ의 관용은 한국 정치사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전 정권은 정치보복이라고 말하고, 현 정권은 정의의 심판이라고 한다. 양쪽 주장 모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만일 9년 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막바지에 제동을 걸었더라면, 우병우 수사팀이 노무현 일가를 샅샅이 뒤지지 않았더라면 어찌 됐을까. 아마 노무현은 죽음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의 MB가 영어囹圄의 몸이 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말이다.

성경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어떤 사람에게 피해를 입었으면 똑같은 정도의 형벌만 부과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인간은 어떤가. 남에게 피해를 입으면 화가 나 2배, 3배의 보복을 하려고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저지른 갖가지 범법 행위는 가차 없이 법의 심판이 내려져야 한다. 그러나 헌법과 법률로 금지된 ‘연좌제’나 ‘피의사실 공표죄’를 무시하고 벌어지는 응징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 도덕적 비난과는 별개로 그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심지어는 그와 가깝다는 이유로 매도하면 훗날 국가적으로 후유증을 감당해야 할지 모른다.

지금 한국의 위기상황은 내부에서 벌어지는 균열이다. 좌우갈등이 전 국민을 양 극단으로 갈라놓았다. 중도파는 회색분자가 됐고, 중용은 기회주의자들의 술수로 전락했다. 원한은 또 다른 원한을 부르고, 인과응보는 쳇바퀴처럼 돌고 돈다. 오래된 증오는 새로운 증오를 낳고 소중한 미래를 멍들게 한다. 틱낫한 스님은 “남을 용서하는 것은 최고의 화풀이 방법”이라고 했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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