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수의 Clean Car Talk

미국의 무차별적인 보복 관세가 전세계를 소용돌이에 몰아넣고 있다. 특히 한국에 철강 관세 25%를 부과하겠다는 엄포는 국내 산업계에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남겼다. 다행히 정부의 노력 끝에 한국은 관세 부과 대상국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협상이라는 말이 그렇듯 하나를 지키면 다른 하나를 내줘야 한다.

▲ 우리나라 정부는 한미 FTA 개정 협상에서 자동차 분야를 미국에 일정 부분 양보했다.[사진=뉴시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안에서 미국은 자동차 수입규제를 완화하라며 떼를 썼고, 한국은 일방적으로 양보해야만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동차 분야에서 요구한 조건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는 미국차를 더 수입하라는 것이다. 제조업체당 수입 허용대수가 2만5000대였던 기준이 5만대로 2배 늘었다.

문제는 미국 정부가 이번 협상을 빌미로 향후에 허용 규모를 더 크게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미래차가 타깃이 될 공산이 크다. 다행인 건 한국에서 미국 수입차 판매량이 저조한 이유가 수입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다는 한국 소비자의 입맛을 만족시키지 못한 탓이다.

트럼프의 난감한 요구

게다가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수입차의 점유율은 15% 내외다. 그 안에서 일본, 독일 등이 치열하게 경쟁을 펼치고 있다. 수입 허용량을 크게 늘린다고 해도 국내 자동차업계에 타격이 크지 않을 거란 얘기다. 따라서 한국이 수입 허용량을 통 크게 양보한 것은 나쁘지 않은 판단으로 보인다.

둘째는 미국 화물차(픽업트럭) 시장의 포기다. 기존 협정에서 미국은 2021년까지 화물차에 부과되는 25% 관세를 완전 철폐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 협상에서 2041년까지 20년 더 미뤄졌다. 100년간 열리지 않았던 미국 화물차 시장의 문은 또다시 굳게 닫혔다.

 

그럼에도 화물차 시장의 미래를 포기한 것은 나쁜 판단이 아니다. 현재 미국으로 화물차를 수출하고 있는 업체가 없기 때문에 관세가 유지돼도 별다른 피해가 없다. 게다가 트럼프 정부는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다. 화물차 시장 개방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미국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역·rust belt)의 지지층을 달래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 정부가 가장 민감해하는 사안을 한국 정부가 인정해 줬다는 측면에서 잃은 것보다 얻은 게 훨씬 더 크다.

이렇게 단기적으로 봤을 때 전체적인 협상결과는 나쁘지 않다. 문제는 협상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후유증이다. 자동차 업계 구조는 단순하지 않다. 대기업은 물론 1~4차에 이르는 수많은 중소 협력사가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업계 영역이 광범위한 만큼 피해가 발생했을 때의 규모를 짐작하기 어렵다. 업계 상황도 좋지 않다. 한국GM 구조조정, 노사갈등, 통상임금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쌓여 있는 상태다.

해외에 진출한 국내 자동차 업체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2016년 8.1%였던 미국시장 내 한국차 점유율은 지난해 7.4%까지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적인 양보가 누적되면 자동차 업체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부품공급을 하는 수많은 중소 협력사들도 포함돼 있다. 이번 협상안이 국내외 상황과 맞물려 어떤 후유증을 불러일으킬지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협상 뒤의 후유증이 문제

한 분야에서 협상을 일괄 타결하는 전략을 다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단일 분야가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으면 그만큼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보다는 다른 분야와의 협상을 통해 한 산업에 집중되는 피해를 분산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내 산업이 받을 영향을 전체적으로 늦추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

앞으로도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합리적인 판단보다는 즉흥적으로 결단을 내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화살이 어디로 향할지도 알기 어렵다. 한국 정부의 단호한 대처가 필요한 이유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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