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죄 고찰

자신이 스스로 밝히길 원치 않는 사실이 누군가에 의해 공공연하게 알려지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다. 우리 형법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 엄격하게 처벌하는 건 이 때문이다. 개인의 사생활을 법으로 보호해주겠다는 것이니 꼭 필요한 법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맹점도 있다.

▲ 현행법상 명예훼손죄는 미투(#Me Tooㆍ나도 피해자)에 동참하는 피해자들을 가해자로 만들 수도 있다.[사진=뉴시스]

최근 형법의 명예훼손죄 관련 조항이 논란을 빚고 있다. 왜일까.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제2항은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이 말은 명예훼손죄는 ‘A가 적시한 내용이 B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것’이라면 ‘적시한 내용이 진실인지 허위인지의 여부를 떠나 처벌’하고, ‘양형에만 차별을 둔다’는 얘기다. 처벌의 예외조항이 있지만, 이것 역시 오직 ‘공익을 위한 목적’으로 진실만을 적시해야 한다.

문제는 누군가로부터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그 피해 사실을 공표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거다. 최근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투(#Me Tooㆍ나도 피해자)’ 운동이 바로 이런 경우다. 일단 가해자의 이름을 공개하거나, 실명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가해자가 누구인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면 이는 모두 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 피해자는 수사기관의 도움을 받아 피해를 구제받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미투 피해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당사자 간 힘의 균형이 같지 않거나 갑을 관계에 있는 경우, 약자가 상대적으로 강자인 가해자를 상대로 홀로 맞서 싸우기란 사실상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럴 때 약자로서는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피해 사실을 공표해 부당함을 호소하게 된다. 기업과 개인ㆍ소비자ㆍ직원, 대기업과 소기업 간 소송에서도 마찬가지다.

피해자들에게 명예훼손죄를 적용하는 게 과연 공정한지, 가해자의 명예가 과연 그렇게 해서라도 보호해야 할 가치 있는 것인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서 독일이나 미국(주별로 차이는 있음)은 ‘적시한 사실이 진실로 입증되지 않는 경우’에만 명예훼손죄로 처벌한다.

그럼 진실은 공공연히 적시해도 되는 걸까. 여기에도 논란이 있다. 상대방 비방을 목적으로 사회관계망(SNS)에 피해 사실을 게시하는 것은 우리 법이 금지하는 ‘사적 보복행위’에 해당한다는 지적도 있어서다. 헌법재판소가 “진실을 공표한 경우라 해도 비방의 목적이 있다면 처벌할 수 있다”는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 제1항을 합헌이라고 판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법률가들도 주장이 다른 만큼 명예훼손죄를 둘러싼 논쟁은 조율이 쉽지 않다. 하지만 누구든 법의 맹점으로 인해 피해를 볼 수 있다면 손봐야 하지 않을까. 진실을 공표할 ‘표현의 자유’와 자신이 가진 ‘명예를 보호받을 권리’ 두 가치를 아우를 수 있는 법 규정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이루다 IBS 법률사무소 변호사 yird@ibslaw.co.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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