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시카리오❹

영화 ‘시카리오(Sicario)’는 ‘마약 조직과의 전쟁’을 그렸다. 멕시코 마약 유통의 메카로 쳐들어간 CIA의 그레이버(조시 브롤린)와 FBI의 메이서(에밀리 블런트)는 작전 수행을 놓고 갈등을 일으킨다. 둘은 멕시코 마약조직 소라노 카르텔 소탕이라는 목표는 동일하지만 그 방법론을 둘러싸고 파열음을 낸다.

▲ 시계 구조를 모른다면 그것이 잘못된 시계라도 그 시간에 맞춰 살아야 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대개의 갈등은 방법론에서 불거진다. 서울은 하나지만 서울로 가는 방법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고 하나 진정한 악마는 방법론 속에 숨어있다. 우리네 보수와 진보의 갈등도 ‘애국’이라는 목표는 동일하지만 애국하는 수단과 방법이 서로 다르다 보니 원수가 된다. 그레이버와 메이서의 갈등은 이념논쟁의 ‘교조주의’와 ‘수정주의’를 닮았다. 교조주의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반면 수정주의자는 원칙이란 현실적 상황에 맞춰 어느 정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다.

메이서는 민간인들로 가득한 국경출입문 앞에서 자동소총을 난사해 마약 조직원들을 쓸어버리는 델타포스에 분개한다. FBI의 작전 매뉴얼에는 분명 주변에 민간인이 있으면 총질이 금지되어 있다. 콜롬비아 마약조직의 보스를 작전에 참여시키고, 필요한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무지막지한 물고문이라는 방법을 쓰는 그레이버의 방법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

수정주의자 그레이버는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메이서가 답답하고 짜증난다.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공장을 돌려 경제 성장을 해야 하는데 노동법 들이대며 회사의 의사결정 구조와 수익 구조를 따지는 격이라고 여긴 것이다.

 

메이서는 그레이버가 주도하는 작전 방법을 상부로부터 승인받았는지, 받았다면 누구로부터 받았는지까지 따지고 든다. 까칠한 메이서에게 그레이버가 명대사를 날린다. “시계 구조를 알려고 하지 말고, 시곗바늘만 봐라.” 우리네 말로 번역하면 “너무 알려고 하지 마라. 알면 다쳐” 쯤 될 것 같다. 전모를 모르기는 그레이버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지금 시곗바늘이 12시를 가리키고 있으면 시계 내부의 복잡한 톱니바퀴들이 어떻게 움직인 결과인지 모두 알고서야 비로소 점심을 먹겠다고 한다면 아마 밥은 먹지 못할 것이다. 자동차의 작동 원리를 모두 알아야 안심하고 자동차를 믿고 탈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아마 평생 뚜벅이로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변두리 짜장면집 주방의 속사정을 모두 알고도 짜장면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만큼 비위 좋은 사람도 아마 많지는 않을 듯하다. 그저 모른 척하고 차 타고 다니고, 식당 가서 밥 먹는 게 편하다.

영화 ‘시카리오’는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실존주의 소설의 고전 「성城」을 닮았다. 주인공인 측량기사 K는 성주城主의 초청을 받아 마을에 온다. 성주의 초청을 받았다는 것이 사실인지 그의 착각이나 주장일 뿐인지 확실치 않다. K는 성을 찾아가려 하나 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아무도 알려주지도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 측량기사가 필요없다며 마을 학교에 가서 사환이나 하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K는 고집스럽게 성을 찾아가려 한다. 그러나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

FBI의 메이서는 CIA가 주도하는 마약 소탕 작전에 초청받는다. 그러나 아무도 작전의 전모를 알려주지 않는다. 작전팀에서는 메이서의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듯 보인다. 아무 역할 없이 그저 구색이나 맞추고 학교 사환처럼 잔심부름이나 하라고 한다. 메이서는 고집스럽게 작전의 전모를 알고 자신의 역할을 찾으려 하나 물거품이 된다.

▲ 보수와 진보는 ‘애국’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한 방법이 달라 갈등을 빚는다.[사진=뉴시스]

우리도 모두 ‘시카리오’의 메이서처럼, 혹은 카프카 「성城」의 K처럼 조직의 초청을 받았다고 믿고 합류하지만 내가 속한 조직의 ‘전모’는 모른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알려고 해도 알 방법이 없다. 시계 구조를 알려고 하지 말고 그저 시곗바늘이나 보고 지내라고 할 뿐이다. 분명 초청받고 왔다 생각하는데 와 보니 나를 꼭 필요로 하는 것 같지도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커피나 타고 복사나 하라고 하기도 한다.

우리는 나날이 복잡다기화하는 사회의 내막을 알지 못한 채 그냥 자신을 맡긴다. 모두 우리에게 ‘시계 구조를 알려고 하지 말고 시곗바늘만 보라’고 한다. 시계 구조를 알지 못한 채 시곗바늘만 보고 살면 그것이 잘못된 시계라도 그 시간에 맞춰 살아야 한다. 제품의 작동 원리에 깜깜하다면 잔고장만 나도 속수무책이다.

아무리 시곗바늘만 보면서 살아가는 것이 현실적이라 해도, 내가 살아가는 세상과 조직의 전모와 작동 원리는 최소한 관심을 갖고 문제 제기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메이서를 응원하고 싶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