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소 갑론을박에 숨은 민낯들

문구소매업체들은 “다이소 때문에 동네문구점들이 다 죽게 생겼다” 말하고, 다이소는 “억울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다이소 편이다. ‘다이소가 문구류를 팔지 않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자 다이소 옹호론이 인터넷 세상을 물들였다. 하지만 다이소가 규제가 허술한 틈을 이용해 골목상권을 잠식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다이소 문구류 판매 갑론을박에 숨은 문제점을 취재했다.
 

▲ 다이소의 문구류 판매를 두고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과 ‘금지를 반대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사진=뉴시스]

“신규 매장 출점 시 전통시장과 상권을 고려해 자발적으로 출점을 제한하겠다. 골목상권을 침해한다고 논란이 되고 있는 문구류에 대해선 상생 협력 차원에서 수용 가능한 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지난 2월 다이소가 ‘상생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문구 관련 단체들이 다이소로 인해 동네 문구점의 피해가 상당하다고 문제를 제기한 데 따른 대응책이다. 다이소 측은 “다이소의 최대 판매가격이 5000원이고 2000원 이하의 상품 비중이 80% 이상인 만큼 대형마트와 동일한 기준으로 묶음 판매를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도 “동반성장위원회(이하 동반위), 한국학용문구협동조합 등과 구체적인 협의를 통해 수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상생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이소의 문구류 판매를 둘러싼 논란이 본격적으로 공론화한 건 지난해부터다. 지난해 10월 중소벤처기업부 국정감사에서 이찬열(바른미래당) 의원은 “유통공룡으로 급성장한 다이소로 인해 영세상인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면서 문구 관련 3개 단체가 전국 459개 문구점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문구점의 92.8%는 “다이소의 영업 확장으로 매출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다이소 입점으로 매출이 줄어 매장 운영을 계속할지 고민 중”이라는 문구점도 절반(46.6%)가량 됐다. 이 의원은 “영세상인들이 다이소를 중소기업 적합업종 규제 대상으로 지정해주길 요구하고 있다”면서 “규제의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구소매업은 2015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다. 적합업종으로 선정된 품목은 3년간 대기업 진출이 금지되거나 제한된다. 문구 관련 협회들은 다이소가 이런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는 거다.
 

 

▲ 소상공인들은 다이소를 중소기업 적합업종 권고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사진=뉴시스]


대형마트 등 대형유통업체는 적합업종 권고 대상에 포함돼 초등학생 문구 18개 품목(종합장ㆍ지우개ㆍ연필ㆍ사인펜ㆍ물감ㆍ크레파스 등)에 대해 묶음 판매만 가능하다. 할인행사도 신학기를 앞둔 2월과 8월에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다이소는 어떨까. 유통공룡으로 몸집을 키운 다이소는 생활용품전문점으로 분류돼 이런 규제를 받지 않는다. 문구협회가 다이소도 적합업종 권고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진통 끝에 상생안 내놨지만…

반면 다이소는 대형마트와 판매형태와 업의 특성이 다르다며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 부당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형마트가 다량 구매를 유도하는 업태라면, 다이소는 낱개ㆍ균일가 판매가 주를 이룬다는 거다. 다이소 관계자는 “대형마트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면서 “문구소매점의 상황이 어려워진 건 ‘구매 채널의 변화’ ‘학습준비물 지원제도 시행’ ‘학습과 놀이 환경의 변화’ ‘학령인구 감소’ 등 다양한 문제들이 상존한 결과”라고 말했다.

하지만 천안에서 문구소매점을 운영하는 김선호(55ㆍ가명)씨는 “문구소매점이 어려워진 게 다이소의 영향 때문만이 아니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새학기인 데도 장사가 이렇게까지 안 된 건 처음”이라며 “인근에 다이소가 들어서면서 파리만 날린다”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다이소가 이런 주장들을 귓등으로 흘리고만 있는 건 아니다. 다이소는 지난해 8월부터 계속된 논란에 동반위와 수차례 간담회를 통해 적합업종에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방안을 협의해왔다. 2월 발표한 상생안이 6개월만의 진통 끝에 나온 결과물인 셈이다. 다이소는 “동반위ㆍ한국학용문구협동조합 등과 구체적인 협의를 통해 세부적인 상생 방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문구협회 역시 막무가내로 다이소에서 문구류를 아예 판매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방기홍 한국학용문구협동조합 회장은 “다이소에서 문구류 판매하는 걸 전면 금지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다”면서 “사무용품은 판매하되 대형마트처럼 학용품은 묶음 할인판매만 해달라고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이소가 골목상권에 깊숙이 파고든 만큼 그 정도 상생안은 수용해야 하지 않겠냐는 거다.

“만약 다이소가 그것마저 수용하지 않는다면 소매점은 물론 도매점, 제조사까지 문구업계 전체가 고사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다이소가 묶음 판매는 다이소 균일가 정책 기조와 맞지 않아 사실상 어렵다고 얘기한 만큼 이 부분에 대해선 이견을 좁히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장문영 한국문구유통업협동조합 이사는 “다이소에서 판매하는 문구류 품목이나 규모를 축소해달라”고 말했다. “다이소가 주장하는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인한 수요 감소로 문구점이 줄고 있는 건 맞다. 하지만 다이소가 급성장한 2~3년 사이 문구소매점 매출이 급격하게 감소했다. 특히 다이소 인근 문구점은 그 피해가 크다.”

흥미로운 건 갈등이 깊어지면서 다이소가 문구류를 판매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 나돌자 되레 다이소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자도 생각해야 한다” “다이소에 납품하는 중소 제조업체들의 희생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우려가 그것이다.

다이소가 상생안을 발표한 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다이소의 문구판매 규제를 반대한다’는 청원글이 여럿 올라왔다. 한 게시자는 “소상공인을 지켜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소비자의 선택권도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구점 가고 싶어도 없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만난 유경미(46ㆍ가명)씨도 “다이소에서 문구류를 판매하지 않으면 적잖이 불편할 거 같다”고 말했다. 다이소에 들를 때마다 필요한 문구들을 미리 사놓는다는 그는 “다이소가 아니라면 대형마트나 온라인에서 구매해야 하는데, 문구 하나 사려고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고 지적했다.

“다이소에서 파는 문구류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도 있지만 집 근처에 문구점이 아예 없다. 대형 문구체인도 멀다. 그러다보니 다이소에 올 때마다 이것저것 미리 사두는 편이다. 나에겐 다이소가 최선이자 유일한 선택지다.”

자칫 동네문구점 살리겠다고 다이소에 납품하는 중소 제조업체를 어렵게 만드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다이소에 볼펜 20여종을 납품하고 있다는 한 문구 제조업체 관계자는 “회사 전체 매출의 30~40%가 다이소 관련 매출이고, 다이소(아성HMP)를 통해 일본수출도 하고 있다”면서 “다이소 납품이 중단되면 피해는 불보듯 뻔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다이소의 문구 판매 문제가 오르내리면서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며 “대처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지만 아직까진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다른 문구업계 종사자는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부터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휴대전화ㆍ인터넷이 있는데 누가 옛날처럼 수기로 문서를 작성하나.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인 학용문구는 학교에서 다 제공한다. 그러니 누가 문구점에 가겠나. 동네문구점이 사라지는 걸 두고 ‘골목상권 침해’ 운운하는데 과연 그게 얼마나 타당한 주장인지 모르겠다. 시대는 이렇듯 변하고 있는데, 정책은 여전히 구식이다.” 문구소매점 침체를 다이소와 문구업계의 문제로만 들여다볼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다이소가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몸을 키운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배경에는 허술한 법망이 있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 등 대규모ㆍ준대규모점포에만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월 2회 의무휴업일을 정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1997년 1호점으로 출발한 다이소는 2015년 1000호점을 돌파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다이소ㆍ이케아 등 몸집을 키우고 있는 전문점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이유다.

골목상권을 침해받고 있다는 소상공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국회의원들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하긴 했다. 19대 국회에선 “전문점도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의무휴업일을 제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3건 발의됐다. 하지만 단 한건도 통과되지 못했다. 19대 국회가 문을 닫으면서 개정안도 묻혔다.

 

 

 

 

 

 

▲ 문구류 취급 여부가 아니라 다양한 상생안을 끌어내는 것이 논의돼야 한다. 사진은 영화 ‘미나문방구’의 한 장면.[사진=더스쿠프 포토]


20대 국회에선 아직이다. 홍익표(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중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대규모점포ㆍ준대규모점포의 입지를 제한하고, 복합쇼핑몰의 영업을 제한한다는 ‘패키지 유통규제법’을 발의했지만 다이소와 같은 전문점은 규제 대상에서 빠졌다.

다이소 갑론을박이 이처럼 웃픈 결과로 이어진 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문구시장의 현실을 제대로 못 봤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짚어보면 문구소매업의 한숨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0년 서울시가 ‘학습준비물 없는 학교’ 제도를 도입한 후 그들의 한숨은 더욱 깊어졌다.

정확한 시장조사 필요

맞벌이 부부나 한부모 가정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로 시작된 이 제도는 지자체와 교육청의 예산으로 학습준비물을 일괄 구매해 학생들에게 수업시간에 나눠주는 거다. 이 때문에 학생 또는 학부모가 문구점에 갈 일 자체가 예전만큼 없어진 건 사실이다. 이런 걸 두고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고 있으니 갈등만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문구시장을 제대로 파악해보면 지금과 다른 말들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마치 다이소가 문구점의 상권을 침해하는 것처럼 얘기되고 있는데, 전체적인 문구시장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을 거다. 지금의 논란은 정확한 시장조사가 되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보다 면밀히 시장조사를 해보면 분명 지금과는 다른 말, 다른 정책들이 나올 거다.”

지금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건 다이소라는 유통 채널에 문구류를 넣느냐 빼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다이소는 몸집을 키울 대로 키웠다. 그걸 다시 되돌리겠다고 무리하게 옥죄는 건 괜한 희생만 초래할 수 있다. 다이소가 이미 유통공룡이 됐다는 걸 인정하고, 다이소와 문구소매업체들이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문제는 정부와 국회다. 국감 등에서 이 문제가 수차례 거론됐지만 이렇다 할 대책이나 대안을 내놓은 적은 없다. 정부는 동반성장이 아닌 ‘이 사람 한쪽 팔 잘라 저 사람에게 붙이는’ 땜질식 처방만 궁리하고 있다. 그러니 다이소는 다이소대로, 문구소매업체들은 업체들대로 곡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책상이 아닌 그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현장에서 정책을 짜야 한다는 얘기다. 다이소 갑론을박엔 우리 사회의 불편한 민낯이 모두 들어 있다.
김미란ㆍ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