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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터미널 들어선다던 양재동 하림 부지는 왜 주차장 됐나비리에 멍든 땅, 권력다툼에 ‘피멍’
[283호] 2018년 04월 10일 (화) 08:41:12
김다린 기자 quill@thescoop.co.kr

2016년 4월, 축산업에 뿌리를 둔 하림이 강남 요지에 땅을 샀다. 이명박 정권 당시 인허가 비리 이슈로 좌초됐던 파이시티 부지다. 오랜 표류를 끝마치고 새 주인을 찾았다는 것만으로 시장의 기대는 컸다. 하지만 2년이 흐른 지금 이 땅엔 아무것도 없다. 서울시와 국토부의 엇갈린 개발 계획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양재동 하림부지가 주차장이 된 까닭은 취재했다.

▲ 하림그룹이 파이시티 부지를 인수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주차장 부지로만 쓰이고 있다.[사진=뉴시스]

“하림그룹은 종합유통물류센터의 개발을 검토 중이다. 그룹 계열사에서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를 후보지로 검토하고 있다.” 2016년 4월 26일, 하림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밝힌 내용이다. ‘검토 중’이라던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틀 뒤 하림그룹은 매각 수탁사인 무궁화신탁과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인수 주체는 그룹 계열사 NS쇼핑의 자회사 엔바이콘, 인수가격은 4525억원이다.

시장은 물음표를 던졌다. “닭고기 회사가 왜 강남에 땅을 사지?” 이유가 있었다. 하림의 롤모델은 곡물과 기타 원자재 구매에서부터 가공, 유통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 카길이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은 “카길처럼 공급(곡물)~물류(해운)~수요(닭) 등 식품 원료 생산 단계부터 식탁에 올리는 단계까지 일원화하겠다”는 비전을 공공연히 밝혀왔다.

곡물기업에 필요한 3가지 요소 중 당시 하림에 없었던 건 ‘물류’였다. 그래서 하림은 2014년 1조610억원이란 거액을 주고 법정관리 중이던 해운업체(팬오션)을 인수했다. 팬오션의 물류망을 활용해 곡물 수입ㆍ수출에 직접 나서겠다는 플랜에서였다.


다른 한편으론 물류를 저장ㆍ관리하는 물류센터를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때 김 회장의 눈에 띈 게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였고, 곧바로 인수 계약(2016년 4월)을 체결했다. 경부고속도로 초입에 출입구가 있어 물류 거점으로는 최적의 장소였다. 부지도 9만1082㎡(약 2만7552평)으로 넓었다.

인수 후엔 희소식도 들렸다. 국토교통부가 6월 선정한 ‘도시첨단물류단지’에 화물터미널 부지가 포함됐다. 당연히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도 여기에 포함됐다. 도시첨단물류단지는 낙후 물류지역을 개선하기 위해 물류시설과 첨단산업을 함께 조성하는 사업이다. 정부는 사업 활성화를 위해 법을 바꿨다. 그중 대표적 사례는 용적률에 비례한 공공기여율을 기존 30~48%에서 25%로 낮춘 것이다. 전체 면적 중 물류단지시설로 확보해야 하는 비율도 60%에서 50%로 낮춰주고, 주택을 지을 수 있도록 했다. 하림으로선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를 물류창고로 활용할 뿐만 아니라 각종 임대사업으로 부가수익도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강남 땅 왜 샀나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지금, 승승장구할 것 같던 개발 사업의 현주소는 초라하다. 일부 부지엔 엉뚱한 모델하우스가 터를 잡았고, 대부분은 임시 주차장으로 활용 중이다. 사실상 나대지다. 이유가 뭘까. 알고 보면 답은 간단하다. 서울시가 국토부와 다른 개발가이드라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2016년 8월 서울시는 연구개발(R&D)과 기업ㆍ인재를 연결하는 ‘양재 테크시티(Tech+City) 조성’을 선포했다. 키워드는 ‘공공의 기반조성, 민간의 개발’이었는데, 여기엔 하림이 계약을 체결한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도 포함됐다. 양재동 부지가 서울시와 국토부의 개발계획 복판에 놓인 셈이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는 2004년 당시 ‘파이시티’ 부지란 이름으로 불렸다. 2004년 시행사 파이시티가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를 매입했고, 여기에 2조40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2008년께 인허가 절차가 지연되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사업이 좌초됐다. 그사이 시행사와 시공사가 모두 파산하자, 채권단은 새롭게 시공사를 선정하고 사업 재개를 추진했지만 이번엔 비리 이슈가 발목을 잡았다. 이명박 정부 정권 실세들이 인허가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이었다.

결국 의혹은 현실이 됐다. 2012년 이정배 전 파이시티 대표로부터 돈을 받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구속됐다. 이후 9번이나 유찰된 이 부지를 인수하겠다고 나선 곳이 바로 하림이었다.

언급했듯 하림은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가 국토부 계획에 포함돼 ‘단꿈’에 젖었지만 서울시는 다른 플랜을 세웠다. ‘비리사업’ 딱지가 붙은 부지 개발을 하림에만 맡길 순 없었다. 강력한 규제 장벽을 세웠다.


파이시티 부지의 경우, 전체 건물 연면적의 50% 이상을 연구공간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룰을 만들었다. 판매시설은 20% 이하로 제한했다. 국토부 계획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규정을 서울시가 적용한 것이었다. “종합 유통물류센터 조성하겠다”는 하림의 꿈이 무너지고, 이 부지가 나대지로 전락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하림 관계자는 “서울시와 국토부의 요구에 적당히 균형을 맞춰서 풀어갈 계획”이라고만 설명했다.

MB와 엮이면…

더 심각한 문제는 뾰족한 다음 수가 없다는 거다. 시와 국토부는 “서로의 개발 계획은 다르지만 접점이 있다”면서도 2년이 흐른 지금껏 용도 변경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이 땅은 상업시설을 지을 수 없는 ‘유통업무설비’로 지정돼 있다. 상황은 더 안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

최근 이정배 전 파이시티 대표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났다”고 언급하면서 파이시티가 검찰의 수사 타깃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6월 지방선거 이후 조직개편과 인사 등의 여파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인허가 당사자인 서울시로선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는 이슈들이다.

사업 표류의 부작용은 하림의 몫이다. 회사채를 발행해 부지 인수금액을 조달한 하림은 이자만 연 50억원씩 내고 있다. 말 많고 탈 많은 파이시티 개발 사업, 장애물이 여전히 많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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