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특약] 산업혁명과 의류산업

▲ 의류산업은 현재와 미래의 모든 기술을 동원해 발전시켜 나가야 할 영원한 블루오션이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온 나라가 4차산업혁명 열풍에 휩싸여 있다. 4차를 건너뛰고 5차산업혁명이 온다는 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4차ㆍ5차산업혁명은 어디서 어떤 식으로 시작될까. 이견이 있긴 하지만 4차산업혁명 화두는 개인별 맞춤생산체제가 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의류산업이야말로 그런 개인별 맞춤생산의 효과가 가장 큰 산업 분야다.

“세상에 더 이상 발명될 것은 없다.” 1899년 미국의 특허청장 찰스 듀엘(Charles H. Duell)은 발명할 수 있는 건 이미 다 발명했다며 정부에 특허법 폐지를 주장했다. 어처구니없다고 여겨지던 이 말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1차산업혁명은 18세기말 증기기관이 인력에 의존하던 기계들에 무한 동력을 제공하면서 일어났다. 2차산업혁명은 19세기 중반 눈부시게 발전한 화학ㆍ기계공업의 주도로 시작됐고, 3차산업혁명은 20세기 중반 반도체ㆍ컴퓨터ㆍ인터넷을 통해 일어났다는 주장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각 시기의 공통점은 새롭게 등장한 전대미문의 기술이 주변 산업을 규합해 혁명을 완수했다는 것이다.

산업혁명의 과정을 보면 인간의 상상력이 엄청난 것 같지만 그런 상상도 기반지식이 있을 때나 가능한 법이다. ‘무엇을 상상하더라도 그 이상의 것’이 나타나는 것은 우주의 섭리다. 인류 역사에 4차산업혁명이라는 큰 획을 그으려면 적어도 양자 컴퓨팅ㆍ반중력ㆍ순간이동ㆍ사물검색 기술쯤은 필요하다. 그날이 오면 모니터에서 모래시계 아이콘이 사라지고, 주말을 달나라에서 보내게 될 것이다.

미래학자인 미치오 카쿠 뉴욕시립대 교수는 저서인 「불가능은 없다」에서 “영구기관(에너지 공급 없이 스스로 영원히 움직이는 장치)과 과거로의 여행 외에는 그 어떤 상상도 물리법칙에 위배되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는 실현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타워즈의 광선검이나 스타트랙의 순간이동 장치, 해리포터의 투명망토와 같은 것들이 과학적으로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는 거다.

4차산업혁명은 3차산업혁명기의 폭발적인 기술 발전이 정체기에 접어들면서 불가피하게 도출된 돌파구다. 점진적인 기술 발전이 느닷없이 4차산업혁명을 일으킬 것이라는 낙관은 곤란하지만 어디서 어떤 식으로 4차산업혁명이 시작될 것인지 상상하고 대비할 필요는 있다.


이견이 있긴 하지만 4차산업혁명 화두는 대량생산 체제가 진화한 개인별 맞춤생산체제가 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렇다면 개인별 맞춤생산의 효과가 가장 큰 산업 분야로는 어떤 게 있을까. “의류학과 교수이기 때문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인류의 필수품인 ‘옷’이야말로 개인별 맞춤생산의 효과가 큰 산업이라고 확신한다.

의복 분야가 인간의 끝없는 요구에 부응하려 노력해온 온갖 첨단기술의 격전지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옷이라고 하면 흔히들 화려한 패션쇼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옷의 본질은 외부로부터 인체를 보호하는 거다. 하지만 전대미문의 기능을 가진 옷이라도 아름답지 않으면 가치가 없는 법. 기능과 미를 동시에 추구하면서 값싸게 만들어야 하는 옷은 제아무리 뛰어난 첨단기술이라고 해도 벅찬 상대다.

자동으로 옷을 만드는 기계를 100년 동안 상상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옷은 숙련공이 아니면 만들 수 없다. 인간의 기대 수준이 상상 이상으로 까다로워서다. 20년 넘게 스마트 의복 분야에서 이렇다 할 제품이 하나도 나오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인류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함께해온 의류산업은 현재와 미래의 모든 기술을 동원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할 영원한 블루오션이다.

여기에 개인 맞춤이라는 요소까지 더해진다면 분명 다음 산업혁명은 18세기에 그랬듯 의류산업 분야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의류산업을 바탕으로 국가 발전을 이룩했던 우리나라가 새로운 산업혁명 시대의 주인공이 돼 다시 한번 세계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화려한 첨단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좋겠지만 옷 만들기와 같은 기본기에도 더욱 충실해야할 때다.
김성민 서울대 의류학과 교수(생활과학연구소 겸무연구원) sungmin0922@snu.ac.kr│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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