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금융정의연대 등 시민단체가 본 김기식의 민낯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7일 사퇴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김 전 원장이 의원 시절 ‘더좋은미래연구소’에 보낸 정치후원금 5000만원은 과도한 지원”이라면서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김 전 원장은 ‘초단명 금감원장’이란 오명을 뒤집어쓴 채 낙마했지만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다. 금감원은 개혁의 길을 잃었고, 진보세력은 모럴해저드 이슈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래 기사는 ‘김기식 논란’이 한창이던 4월 13일 출고했다. 김 전 원장에 등을 돌린 금융시민단체의 우려가 담겨 있다.

▲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각종 논란으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취임 직후 터져 나온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을 향한 논란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당과 청와대가 버티고 있지만 냉담해진 여론을 돌리기엔 역부족이다. 최근엔 금융회사 ‘저격수’의 취임을 환영했던 시민단체도 등을 돌리고 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금융시민단체가 바라본 김기식의 민낯을 취재했다.


■ 관대한 저격수 = 11일 국민일보는 김기식 금감원장이 국회의원(새정치민주연합ㆍ현 더불어민주당) 시절인 2014년 금감원에 우리은행의 검사를 빨리 끝내라고 질타한 1년 후 우리은행의 지원을 받아 중국 출장을 다녀왔다고 보도했다. 재벌과 금융회사 저격수로 유명했던 김 원장이 유독 우리은행에 관대했다는 것이다. 이는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실제로 김 원장은 2014년 4월 9일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최수현 전 금감원장에게 검사 기간에 관한 문제를 제기했다.

김 원장은 당시 부당대출 의혹이 발생한 시중은행 도쿄지점 검사와 관련해 우리은행을 아직 검사 중이냐고 물었다. 아직 진행 중이라는 최 전 금감원장의 답변에 김 원장은 “요즘 검찰에서도 수사가 장기화될 때 나타나는 문제점들 때문에 집중조사를 통해 수사기간을 최대한 단축하려고 노력한다”며 “하나의 사안에 대해 몇달씩, 반년씩 검사를 계속하고 있으면 해당 피감기관이 그 피로도로 인해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고 질타했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금감원의 우리은행 검사는 정무회의 17일 뒤인 4월 26일 종료됐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15년 5월 19일 김 원장은 우리은행으로부터 항공비와 숙박비 명목으로 480만원을 지원 받아 중국 충칭重慶 분행 개점 행사에 다녀왔다. 시중은행의 해외 지점 부당대출 관련 금감원 검사는 2014년 2월 시작됐다. 하지만 김 원장은 같은해 4월 9일 검사 기간에 문제를 제기했다. 검사 시작 두달 만에 검사가 길어지고 있다고 우려한 셈이다.

 

■ 후원금 땡처리 = 김 원장은 2016년 1월부터 5월까지 5개월간 약 3억7000만원의 정치후원금을 사용했다. 당시는 김 원장의 19대 국회의원 임기 만료(5월 29일)를 코앞에 둔 상황이었다. 김 원장은 정치후원금으로 보좌진 6명에게 200만~500만원씩 총 2200만원을 퇴직금 명목으로 지급했다. 동료 국회의원 16명에게도 100만~200만원씩 총 2000만원을 후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더좋은미래연구소에 후원금 명목으로 5000만원을 지출했고 경제개혁연구소 등에 연구 용역비로 총 8000만원을 사용했다. 이런 방식으로 당시 받아놓은 후원금 중 대부분을 지출했다. 그 결과, 소속 정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에 반납한 정치후원금은 405만원에 불과했다. 임기 만료로 다 쓰지 못한 국회의원의 정치후원금은 국고나 소속 정당에 반납해야 한다. 하지만 김 원장은 이를 대부분 사용했다.

거세지는 사퇴 압력

김기식 금감원장을 둘러싼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국회의원 시절 피감기관의 지원을 받은 외유성 출장에서 시작된 의혹은 정치후원금 사용 문제로 번졌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야당과 보수시민단체는 검찰 고발에 나서면서 김 위원장 사퇴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여당과 청와대는 감싸기와 버티기로 김 원장의 사퇴를 막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의원의 외유성 출장을 폭로하는 맞불작전으로 맞섰다.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 이전에는 국회의 관행이었다는 논리다. 임명 철회는 없다고 버티던 청와대는 급기야 지난 12일 중앙선관위원회 유권해석 카드를 꺼내 들었다. 김 원장을 둘러싼 논란의 적법성 여부를 따져보겠다는 이유에서다.

그사이 여론은 냉담해졌다. 리얼미터가 실시한 설문조사(성인 500명 대상)에 따르면 50.5%가 ‘사퇴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사퇴 반대’ 의견 33.4%에 비해 17.1%포인트 높은 수치다. ‘저격수’의 등장에 금융적폐 청산과 금융소비자 보호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기대를 걸었던 진보주의 시민단체도 속속 등을 돌리고 있다.

김 원장이 창립 멤버로 활동한 참여연대는 지난 12일 ‘회원께 드리는 글’을 통해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 중에는 비판받아 마땅한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다”며 “누구보다 공직윤리를 강조하며 제도개선을 촉구했던 당사자였기에 매우 실망스럽다는 점도 분명하다”고 밝혔다. 참여연대 측은 부적절한 행위의 수준, 위법 여부 등을 검토해 최종적인 입장을 내겠다고 밝혔지만 ‘김기식 논란’에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다른 시민단체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홍성준 약탈경제반대행동 사무국장은 “불법까지는 아니더라도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라며 “이미 상처를 받을 대로 받은 만큼 새로운 인물을 임명하는 게 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버틴다고 해서 금융개혁이 이뤄지는 건 아니다”며 “금융개혁, 적폐청산이라는 목표가 훼손될 수도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국장도 김 원장 논란이 금감원의 개혁 행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논란이 제기된 수장이 금감원장으로 있으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데 발목이 잡힐 가능성도 있다. 거취는 스스로 판단하는 게 맞다. 하지만 금감원장은 독립성과 도덕성이 필요한 자리다. 누가 아니면 금융개혁이 불가능하다는 논리도 맞지 않다. 인제 풀을 넓히고 정치적 중립성이 있는 인물을 찾아야 한다.” 사실상 자진 사퇴를 촉구한 셈이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피감기관의 지원을 받은 출장을 가야 할 이유만큼 가지 말아야 할 이유도 많았을 것”이라며 “관행이라고 치부하기 전에 저격수 김기식이었기 때문에 더 엄격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상처 입은 금감원장의 덫

문제는 김 원장이 사퇴했을 경우다. 새 정부의 금융개혁 정책을 강하게 추진할 인물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김 원장을 향한 여러 가지 논란이 우려스러운 건 사실”이라며 “김 원장의 취임을 반겼던 건 금융개혁에 탄력이 붙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고 털어놨다. 연이은 금감원장의 사퇴로 관료 출신이나 모피아가 수장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김득의 대표는 “김 원장이 물러난 이후 개혁적 성향이 큰 외부 인사 영입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며 “관료나 모피아가 왔을 때 적폐청산을 추진력 있게 밀어붙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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