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 오피스텔 헌터의 실상

“오피스텔 헌터가 떴다.” 경기도 성남시의 한 오피스텔 단지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단지 전반을 운영하는 관리인으로 새롭게 선임된 사람의 전력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인근 오피스텔 2곳에서도 관리인을 맡았는데, 입주민과 번번이 갈등을 벌였다. 핵심은 투명하지 않은 오피스텔 관리였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오피스텔 헌터의 민낯을 살펴봤다.

▲ A씨가 관리하는 오피스텔 입주민들은 “계산기를 아무리 두드려 봐도 관리비가 왜 이렇게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사진=아이클릭아트]

공용부분의 보존ㆍ관리 및 변경을 위한 행위, 관리단의 사무 집행을 위한 분담금액과 비용을 각 소유자에게 청구ㆍ수령하는 행위, 금원을 관리하는 행위…. 법이 부여한 오피스텔 관리인의 주요 권한이다. 청소ㆍ경비ㆍ주차 등 용역업체를 선정하고, 관리비 부과ㆍ징수까지 도맡는다. 사실상 단지의 CEO이자 COO인 셈이다.

중책인 만큼 선정 과정이 까다롭다. 먼저 관리단 집회를 열어야 한다. 구분소유자(집주인) 5분의 1 이상의 동의를 얻은 자가 “관리인을 선임합니다”는 내용을 일주일 전에 각 집주인에게 통지하는 게 먼저다. 집회에 참석한 집주인 과반이 선임에 찬성하면 관리인으로 뽑힌다.

이런 복잡한 프로세스를 거쳐, 현재 성남ㆍ수원 일대 3개 오피스텔의 관리인을 역임하고 있는 A씨가 있다. 그가 관리하는 오피스텔 세대수를 더하면 4557세대. 모두 대단지다. A씨는 왜 여러 오피스텔에서 관리인을 겸직하고 있는걸까. 그는 각 단지에 오피스텔을 보유한 집주인이다. A씨는 “수월한 관리를 통해 내 소유의 오피스텔 가치를 끌어올리고 싶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수월한 관리’가 이뤄지고 있는 지는 미지수다. 입주민과의 갈등이 잦아서다. A씨는 “단지 운영을 제대로 하려면 관리비를 올려야 하는데, 그걸 두고 트집을 잡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그럼에도 입주민들이 이상하다고 느낀 사례는 적지 않다. 먼저 성남시 분당구 오피스텔의 사례를 들어보자. 이 오피스텔의 일부 입주민은 2016년 7월 A씨를 상대로 ‘관리인 선출결의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관리인을 뽑는 관리단 집회가 파행적으로 진행됐다”는 이유에서였다.

문제가 된 집회는 입주가 시작된 지 4개월가량 흐른 시점인 2015년 10월 열렸다. 당시 관리인 후보자로 6명이 등록됐다. 하지만 이중 3명은 오피스텔 가구를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구분소유자 과반의 의결권을 각각 위임받은 상태였다. 이를 통해 3명은 구분소유자 과반의 동의가 필요한 관리인에도 각각 선임됐다.

입주자들이 제기한 소송의 핵심은 “집회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거다. 실제로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 현행법에 따르면 각 오피스텔 단지에는 일종의 규칙인 ‘관리 규약’이 있어야 한다. 이 오피스텔 관리규약에는 관리인을 선임하기 전 집주인 20분의 1 이상의 추천을 받은 자가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당시 집회가 열렸을 땐 선거관리위원회가 없었다. 지난해 5월 재판부가 “당시 관리인 선임결의의 절차상 하자는 선거의 자유와 공정을 현저히 침해한다”면서 입주민들의 손을 들어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시 소송을 지켜본 한 입주민은 “오피스텔 관리 운영 전반에 입주민들이 불만을 품고 있던 도중 집회가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돼 사비를 모아 소송을 진행했다”면서 “다행히 법원이 공정하게 판단해 입주민들이 승리했지만, 황당한 일은 그다음에 발생했다”고 말했다. 재판 판결을 통해 3명의 관리인 선임 절차가 무효가 됐지만 그중 A씨는 다시 관리인으로 선임됐다.

A씨의 수상한 겸직

다른 입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A씨가 관리인 지위를 상실한 이후엔 한동안 임시관리인이 운영했다. 그러다 다시 집회를 열고 관리인 자리를 꿰찼다. 그가 여전히 과반이 넘는 의결권 동의서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A씨를 둘러싼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다.

A씨가 관리인을 맡은 수원시 광교의 한 오피스텔 입주민들은 올해 3월 “소유주와 입주민의 동의 없이 주차정산소를 운영하고, 용역 계약을 맺을 때도 집회를 열지 않고 관리인 임의로 진행해 입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쳤다”면서 배임죄로 고소했다.

소송의 발단은 ‘급격한 관리비 인상’이었다. A씨는 2016년 8월 관리인에 선임된 지 한달 만에 일반관리비(개별난방비 등 제외)를 45.85% 올렸다. 소송을 준비 중인 한 입주민은 이렇게 설명했다. “관리비 인상 자체를 문제 삼는 게 아니다. 최저임금 이슈 등 관리비 인상 요인도 분명히 있는 만큼 오피스텔 운영이 제대로만 되면 그만이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발품을 팔아 알아낸 경비원, 미화원의 임금을 토대로 계산을 했는데 계약금액과 갭이 컸다.”

광교 오피스텔의 일부 입주민은 A씨의 오피스텔 관리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특히 건물 보수공사나 청소 위탁업체 등을 선정할 때 특정업체와 수의계약을 맺은 점은 눈엣가시였다. A씨가 자신이 맡고 있는 다른 오피스텔들과 동일한 청소ㆍ경비업체와 계약했기 때문이었다. 주민 공지는 물론 경쟁 입찰도 없었다. 입주민들은 회계 내역, 계약 과정 등을 요청했지만 A씨는 묵묵부답이었다. 이 소송은 현재 수원지법에서 진행되고 있다.


A씨가 지난 3월 관리인으로 선임된 성남시 중원구 신축 오피스텔에서도 잡음이 새어나오는 건 마찬가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의결권 위임 동의서를 받으러 돌아다닌 데다, 관리인 선임 집회가 소유주나 입주자들이 참여하기 어려운 평일 오후에 열렸기 때문이다. 입주민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대처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때부터 A씨에겐 ‘오피스텔 헌터’란 별명이 붙었는데, 한 주민이 밝힌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집주인들을 찾아다니며 집회 의결권을 받고, 그 의결권으로 관리인에 선임돼 불투명하게 오피스텔을 운영한다.”

A씨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사실이다. 집합건물법은 관리인 자격에 아무런 단서도 달지 않았다. 비위 행위에도 별다른 처벌 규정이 없다. 제4장66조2항에 따라 관리규약ㆍ의사록 등을 제대로 보관하지 않으면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뿐이다. A씨로선 법적 사각지대를 절묘하게 파고든 셈이다.

부종식 변호사(법무법인 나눔)의 설명을 들어보자. “입주민들은 관리인이 일을 엉망으로 하고 있다는 심증이 있어도 이를 입증할 자료를 준비하기는 어렵다. 아파트에 적용되는 주택법은 입주민이 회계서류의 열람ㆍ등사를 신청하면 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오피스텔에 적용되는 집합건물법은 규약이나 연간 보고서 등에 대한 열람만을 인정하고 있다. 핵심인 회계장부는 들여다보기 어렵다.”

제2의 오피스텔 헌터 뜨나

이런 갈등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으면서 대안 시설로 주거기능을 강화한 오피스텔이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만 해도 7만 세대 이상의 오피스텔이 입주자를 맞을 예정이다. 그럼에도 이를 견제할 수 있는 법안은 국회 문턱도 넘어보지 못하고 폐기되기 일쑤였다. 19대 국회에서 10개나 발의됐지만 결과는 모두 ‘임기만료 폐기’. 20대 국회서도 8개나 발의됐지만 낮잠을 자고 있다. 그사이 오피스텔헌터는 오피스텔을 마음대로 관리하면서 농락하고 있다. A씨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 아파트를 관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땐 위에서 말이 많아 힘들었다. 지금은 관리 업무 결정권자가 나 혼자라서 편하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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