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ovie] 독점이든 분산이든 결국 사람이 문제다
[Economovie] 독점이든 분산이든 결국 사람이 문제다
  • 김상회 정치학 박사
  • 호수 284
  • 승인 2018.04.19 1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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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시카리오❻

멕시코 거대 마약조직인 소노라 카르텔은 미국의 애리조나 주에서 엽기적인 사건을 벌인다. 그들은 아지트에서 거의 수십구로 보이는 시체들을 비닐에 싸서 벽 속에 밀봉해 버리고, 아지트를 급습한 미국 마약단속국 요원들을 폭탄으로 날려버린다. 이 대담한 범죄는 미국이라는 용의 역린을 건드린다.

 

그동안 소노라 카르텔의 크고 작은 마약범죄가 터질 때마다 불이 나면 달려가 급한 불부터 끄는 ‘소방서’식으로 대응하던 미국은 마침내 근본적 대응에 나선다. 마약의 생산이나 소비 자체를 근본적으로 제거하기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였다. 마약 유통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꾀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 내 유입되는 마약의 전통적 공급원이었던 콜롬비아의 메데인 카르텔에 대한 집중 봉쇄는 멕시코 소노라 카르텔이라는 신흥조직 발흥의 계기가 된다. 메데인 카르텔이 미국과 치고 받는 사이 신흥 소노라 카르텔은 위축된 메데인의 사업 영역을 하나둘씩 장악해 나가면서 메데인에 필적할 만한 거대조직으로 성장한다.

마약 시장에도 ‘풍선 효과’가 발생하고 경쟁 구도가 자리잡는다. 애리조나 사건을 통해 미국은 ‘신악이 구악을 뺨친다’는 말을 절감한다. 어이없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이다. 적어도 메데인은 미국 본토까지 들어와 그토록 대담한 짓을 벌이지는 않았다. 미국으로서는 여우를 피하고 한숨 돌리다 호랑이를 만난 꼴이다.

▲ 마약과 같은 ‘악화惡貨’에 관한한 시장경쟁 구도는 대단히 위험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마약을 원천 봉쇄할 수 없다면 차라리 ‘구관’인 콜롬비아 메데인 조직에 암묵적으로 마약시장 독점권을 부여하고 통제하는 쪽이 현실적으로 현명하다. 소노라 조직이 하는 짓을 보고서야 그래도 메데인만큼 철들고 점잖은 마약조직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더구나 콜롬비아 인구는 4500만명인 반면 멕시코는 1억3000만명의 인구 대국이다. 마약 조직원이 되기를 소원하는 소외된 젊은 ‘인재’들로 넘쳐나고 국경까지 맞대고 있다. 영화 속에서 그 젊은 ‘인재’들이 온몸을 문신으로 휘감고 눈에 힘을 준 채 미국의 델타포스를 기습하다 속절없이 죽어간다.

더구나 경쟁적인 시장은 아무도 통제할 수 없다. 시장 경쟁은 소비자들에게 값 싸고 질 좋은 상품을 제공한다. 그러나 시장경쟁의 그러한 선순환은 그 재화가 ‘양화良貨’일 경우에 한한다. 그 재화가 마약이라는 ‘악화惡貨’인 경우 마약시장의 경쟁은 결국 마약 소비자들에게 ‘값 싸고 질 좋은 마약’의 공급으로 이어진다. 마약소비자는 환호하고 보다 많은 소비자를 창조한다.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자동차가 전 국민으로 확산하듯, 마약도 그렇게 확산한다.

마약과 같은 ‘악화’에 관한 한 시장경쟁 구도는 위험하다. 미국은 마약시장의 ‘단일화’와 ‘독점체제’로의 회귀를 결정하고, 미쳐 날뛰는 신흥조직 소노라 카르텔 대신 철든 형인 메데인 조직에게 독점적 지위를 회복시켜 주기로 결정한다. 한때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이를 갈았던 메데인 카르텔의 실력자 알레한드로를 마약소탕전에 초빙한다. 그렇게 미국 원정대와 메데인 조직의 기묘한 동행이 시작된다.

▲ 시민들이 깨어있지 않다면 권력 분산은 무의미하고, 독점보다 위험할 수 있다.[사진=뉴시스]

개헌 논의가 불붙으면서 대통령의 권력 독점, 거대 양당구조 정치 독점의 폐단을 둘러싸고 설왕설래한다. ‘권력’과 ‘정치’의 본질이 가전 제품이나 자동차와 같은 ‘양화’라면 권력과 권한의 분산이 더 많은 소비자들의 복지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악화’라면 권력과 권한의 분산은 오히려 마약처럼 소비자들에게 재앙으로 돌아갈 것이다. 분산된 권력과 권한이 ‘대중 인기’라는 마약과 같은 달콤한 사탕이나 이념적 증오로 소비자들을 유혹한다면 그것은 곧 모든 국민의 피해로 돌아가고 국가는 피폐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 속에 온갖 위험을 안고 있다. 플라톤은 오죽하면 민주정치를 가장 바람직한 ‘철인정치哲人政治’는 고사하고 ‘참주정치僭主政治’, ‘과두정치寡頭政治’보다도 바람직하지 못한 정치 형태로 보았을까. 민주정치는 언제든지 ‘중우정치衆愚政治’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플라톤도 권력과 권한의 분산보다는 차라리 독점이 안전하다고 보았던 모양이다. 결국 사람이 문제다. 시민들이 깨어있지 않다면 권력 분산은 무의미하고, 오히려 독점보다 위험할 수 있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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