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텔 헌터의 전횡

오피스텔 관리비가 이유 없이 오르는 일이 왕왕 벌어진다. 회계 내역을 정당하게 요청해도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 뒤엔 자신이 선임하지도 않은 ‘오피스텔 관리인’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법적 구제책도 미흡하다. 오피스텔은 주택이 아니어서 ‘주택법’을 적용할 수 없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이른바 오피스텔 헌터의 전횡을 살펴봤다.

▲ 이른바 오피스텔 헌터라 불리는 관리인들의 전횡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아이클릭아트]

광명시가 고향인 30세 김장후(가명)씨는 사회초년생이다. 바늘구멍 취업문을 간신히 뚫고 중소기업에 취업했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회사 소재지는 잠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넉넉히 2시간을 잡아야 하는 거리였다. 김씨는 고민 끝에 독립을 결심했지만 금세 난관에 부딪혔다. 회사 인근엔 작은 원룸 하나도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을 넘기기 일쑤였다. 이마저도 환경이 열악했다.

김씨는 출ㆍ퇴근길 발품을 팔기로 했다. 눈을 돌려 성남시 수정구에 신축한 오피스텔에 거처를 마련했다. 시기는 올해 2월 중순. 잠실 인근에서 봤던 원룸보다 저렴했다. 시설도 좋았다. 김씨는 “오피스텔은 관리비 부담이 크다”는 속설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신문기사에서 대단지 오피스텔은 “호수가 많아 관리비가 저렴하고 보안도 철저하다”는 문구를 기억하고 있던 터였다. 1200세대가 넘는 오피스텔이었다. 아파트가 따로 없었다. 마침 임차 계약을 맺어준 공인중개사도 “기본 관리비는 5만원을 넘지 않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막 이사를 끝낸 3월 초, 김씨는 게시판에 붙은 ‘임시 관리단 집회 소집통지서’를 봤다. 참석하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집회 시간은 수요일 오후 2시. 그가 사무실에 있을 때 열렸다.

다행히도 서면으로 안건에 표를 던지는 게 가능했다. 그런데 내용을 훑어보니 이상했다. 제1안건이 관리인을 새롭게 선임하는 건데, 나머지 안건들은 선임된 새 관리인에게 오피스텔 관리 전반을 맡기는 거였다. “단지 하자처리에 관한 건을 모두 새롭게 선임된 관리인에게 위임하기로 한다” “공용부문 관리에 관한 건을 모두 새롭게 선임된 관리인에게 위임하기로 한다” 등 이었다.

김씨는 의문이 들었다. “누가 관리인이 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1000세대가 넘는 오피스텔 관리를 다 맡기지? 관리비를 10만원으로 잡아도 1억3000만원이 모이는데.” 소집통지서엔 10명의 관리인 후보자의 간단한 이력만 적혀있을 뿐이었다. “에이, 그래도 누군가 맡아서 잘 하겠지. 이렇게 보는 눈이 많은데 별일이야 있겠어.”

김씨의 예측은 빗나갔다. 얼마 뒤 엘리베이터에 미심쩍은 전단이 붙으면서다. “우리 권리, 우리가 지킵시다!”가 큼지막하게 적힌 문서엔 “집에 누군가 찾아와서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면 이를 철회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전단을 붙인 건 부동산중개업소였다. 김씨는 입주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오피스텔 입주자회의를 구성해야 한다”면서 종이 뭉치를 들고 앞집의 벨을 눌렀던 젊은 청년과 마주쳤던 걸 떠올랐다.


김씨는 중개업소에 들러 사유를 물었다. “한 구분소유자(집주인)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서명을 받았어요. 관리단 집회에서 발언 및 의결권을 위임하는 동의서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평일 오후에 열리는 집회에 참석할 수 없으니 서명을 했나 봐요. 별다른 의심 없이요. 문제는 이 동의서가 앞으로도 의결권을 넘겨준다는 내용이 포함됐단 거예요. 결국 이번 총회에서 그 소유자가 선정한 관리인이 관리인으로 선임됐습니다.”

실제로 중개업자가 보여준 위임동의서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관리단 집회마다 개별적 위임을 하는 번거로움 없이 계속해 수임인을 통한 의결권 행사가 가능하며 각 집회에서의 위임의 효력을 지속시킬 의사가 있음을 확인합니다.”

이번엔 오피스텔 입주자가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 흉흉한 말이 돌기 시작했다. 새롭게 선임된 관리인이 인근 오피스텔 2곳의 관리인을 겸하고 있다는 거다. 그가 관리를 맡은 오피스텔은 어김없이 관리비가 올랐다는 소문도 따라붙었다. 몇몇 입주민들과는 소송전戰을 벌인 흔적도 게시됐다. 누군가는 그에게 ‘오피스텔 헌터’란 멸칭으로 불렀다. 입주자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소송도 불사할 기세였다. 김씨는 한발 물러났다. 소문에 불과한 일이라고 넘겨짚었다.

하지만 새 관리인이 맡은 다른 단지의 입주자를 만나 얘기를 듣고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입주자는 이렇게 말했다. “오피스텔 관리와 관련해 집회 결의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공개경쟁입찰 없이 사업자를 선정해 진행했어요. 회계 내역 등을 요청해도 거절당하기 일쑤였죠.”


김씨는 관리비 명세서를 꼼꼼히 살펴봤다. 47개 항목으로 세분화된 아파트와 달리 ‘인건비’ ‘제경비과’ ‘청소비’ 등 명분이 불분명한 8개 항목뿐이었다. 명확한 용처를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관리사무소에 전화해도 “알맞게 쓰이고 있다”는 대답뿐이었다.

시청 주택관리과에 물어도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입주자 권리가 담긴 주택법을 적용할 수 없습니다.” 김씨가 사는 오피스텔은 주택이 아닌, ‘준주택準住宅’이기 때문에 ‘법적 사각지대’가 많았다[※ 커버 파트3 참조].

오피스텔에 숨은 사각지대

김씨는 주택도 아닌 묘한 공간에 고단한 몸을 눕혔다. 뉴스엔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가 ‘청년 주거난 해소’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에서도 오피스텔과 고시원, 기숙사 등 준주택에 거주하는 청년 수는 집계도 하지 않는다는데, 가능한 일일까 싶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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