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내몰린 황창규

황창규 KT 회장은 2002년 삼성전자 사장 시절 메모리반도체 집적도가 1년에 두배씩 늘어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1년마다 성능이 두배로 향상된 반도체를 만들어내 황의 법칙을 증명했고, 반도체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KT가 황 회장에게 기대한 것도 이런 모습이었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이 기대는 어긋났다. 황 회장은 정치권에 이리저리 흔들리다 경찰 조사를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기로에 선 황 회장의 현주소를 취재했다.

▲ 황창규 KT 회장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흥행과 운영.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 배경엔 ‘5G 네트워크’가 있다. 세계 최초로 시범 운영된 5G는 대회 통신망과 방송 중계망의 안정적인 운영에 기여했다. 이 신기술을 주도한 건 대회 통신 부문 공식 파트너 KT다. KT는 일찌감치 ‘평창 5G 센터(2016년 10월 개소)’를 열어 기술을 갈고 닦았다. 올림픽 선수촌, 미디어촌 등 주요 시설에 1100㎞에 이르는 통신망을 구축했다. 외신들은 빠르고 안정적인 KT의 네트워크에 호평을 쏟아냈다.

황창규 KT 회장은 그 중심에 있었다. 그는 5G의 개념도 정립되지 않았던 2015년 MWC 기조연설자로 나서 “5G는 최고의 성능과 비용 효율성을 지닌 궁극의 네트워크가 될 것”이라며 “새로운 5G 네트워크는 미래 혁신의 토대”라며 호언장담했고, 올림픽을 통해 증명해냈다. 메모리 반도체의 집적도가 1년에 두배씩 늘어난다는 이론 ‘황의 법칙’을 세운 주인공다운 자신감이었다.

박수를 받을 시점이었지만, KT 내부는 뒤숭숭했다. 2월 25일 열린 올림픽 폐회식에 황 회장이 불참을 선언하면서다. ‘산책 중 부상’이란 이유도 석연치 않았다. 황 회장을 둘러싼 흉흉한 소문과도 겹쳤다. “올림픽이 끝나면 황 회장도 경찰 포토라인에 서게 될 것이다.”


사실 뜬금 없는 소문만은 아니었다. 경찰은 지난 1월 KT 광화문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법인 자금을 개인 후원금인 것처럼 나눠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에서였다. 황 회장은 수사 초기부터 핵심 피의자로 지목됐다. 지원 규모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경찰이 국회로 흘러들어갔다고 확신하는 돈은 총 4억3000만원에 달했다. 결국 황 회장은 지난 17일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에 출석했다. 20시간이 넘는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그의 거취 논란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이미 박근혜ㆍ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되면서 수차례 퇴진 압력을 받았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총 18억원을 이사회 의결 없이 출연” “최순실씨 측근 이동수씨를 임원으로 선임” “최씨 관련 광고업체에 일감 몰아주기” 등 연관 수준도 깊었다.

황의 법칙, 5G를 이끌다

황 회장이 국정농단 사태를 등에 업고 집권한 현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많았던 이유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황 회장과 거리를 뒀다. 2017년 6월 대통령 방미 순방 경제인단 명단에서 황 회장이 빠진 건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12월 중국 방문 때도 황 회장의 이름은 없었다. 황 회장은 갈수록 벼랑에 몰리는 듯하다. 민영화된 공기업의 CEO란 공통점 때문에 함께 이름이 오르내리던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자진사퇴를 선언한 이후엔 ‘다음은 황창규’란 말이 떠돈다. 권 회장의 임기는 2020년 3월까지로 2년 가까이 남아 있었다. 황 회장의 남은 임기 역시 이와 같다.

그렇다면 황 회장은 권 회장의 전철을 따라갈까. 황 회장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알 수 없다. 경찰 수사 결과만큼 그의 의지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자진 사퇴하든 회장직을 유지하든 결과는 똑같을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경찰의 예봉이 날카롭다. 회장직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의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사태가 올지 모른다. 주변의 비판과 수사를 뚫고 회장직을 유지하더라도 황 회장이 넘어야 할 산은 한두 개가 아니다. 통신서비스가 공공성을 강조하는 규제산업이란 점에서 정부와 척을 지고는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없다. 국민연금이 도입을 결정한 스튜어드십 코드까지 현실화하면 황 회장의 운신폭은 더 좁아질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한다. “황 회장이 사임을 결정해도 정권 입맛에 맞는 인사를 앉힌 뒤 권력실세가 각종 이권을 챙기지 않겠는가. 그럴 거면 비교적 전문가인 황 회장이 낫지 않겠는가.” 이를테면 낙하산들이 내려와 CEO를 점령했던 KT의 흑역사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으니 버티라는 조언이다.

반복되는 수난사라지만…

반론도 많다. 황 회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황창규다운 역할론’을 당부한다. 전직 KT 임원의 설명을 들어보자. “황 회장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 개최’ ‘기가토피아 제시’ 등 굵직한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실책도 뚜렷하다. 여전히 정치권의 입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휘둘렸다는 거다. 황 회장이 진짜 KT를 사랑한다면, 지배구조를 개편해 외풍을 차단하고 KT의 미래를 도모해야 한다.” 말 그대로 이러기도, 저러기도 힘들다. 황 회장이 기로에 섰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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