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댓글에 심취하는 이유

댓글은 민심이 발현되는 소통의 창구일까. 댓글을 보는 사람들은 명확한 기준과 판단으로 거짓 정보를 가려낼 수 있을까. 대부분의 심리학 전문가는 “그렇지 않을 공산이 크다”고 말한다. 댓글이 마냥 순수하지 만은 않다는 거다. 그렇다면 댓글을 다는 사람, 보는 사람, 휘둘리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댓글의 심리학을 취재했다.

▲ 확실한 정보와 명확한 기준이 없으면 조작된 댓글에 현혹될 가능성이 높다.[사진=아이클릭아트]

댓글은 힘이 있다. 하나둘 적힌 댓글은 여론을 만들고, 때론 민심을 반영하기도 한다. 댓글 하나로 힘 있는 이들이 일선에서 물러난 사례도 많다. 문제는 이런 댓글을 역이용하는 세력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최근 터진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이 그 일단이다. ‘국정원 댓글사건’ ‘국군 사이버사령부 댓글공작’ 등은 댓글이 정치적으로 악용된 대표적 사례다.

정치공작의 수단으로 댓글이 주로 쓰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최근 사람들이 인터넷 기사나 SNS를 소비하는 형태를 보면 댓글에 의지하거나 집착하는 경향이 크다. 이런 심리를 잘 이용하면 여론을 흔들기 쉽다.”

사람들이 댓글에 집착하는 이유는 사람의 심리만큼 복잡하다. 곽금주 서울대(심리학) 교수는 “댓글을 쓰는 행위에는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담겨 있다”면서 “댓글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자기의견이 지지를 받으면 만족감과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남에게 전달함으로써 ‘내가 더 많은 걸 알고 있다’는 쾌감을 얻는데, 이런 과정에서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정보들이 무분별하게 쏟아지게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댓글을 찾아보는 행위에도 ‘참조준거’라는 심리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참조준거는 특정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하거나 행동을 취해야 할 때, 그 결정의 기준이 되는 머릿속의 기억, 경험, 지식 등을 말하는 심리학 용어다.

가령, 야구경기에서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상대 투수에 대한 정보와 경기 경험, 코치의 조언 등을 토대로 공을 받아치게 되는데 이때 정보ㆍ경험ㆍ조언이 참조준거가 된다. 많은 정보,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는 요즘 사회에서는 자기 의견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아 댓글을 참조준거로 삼는 경향이 크다.

 

문광수 중앙대(심리학)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자기가 명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거나 확신이 없으면 대다수 사람들의 의견에 동조할 공산이 크다”면서 “다수의 의견에 반하는 의견을 냈을 때 배척될 수 있다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집단주의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서양에 비해 이런 심리가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런 맥락에서 다수의 추천을 받은 ‘베스트댓글(공감댓글)’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할 가능성이 높다. 문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중요한 건 수많은 댓글 중 어떤 것을 읽느냐다. 가시성이 높고, 많은 사람들의 추천을 받은 베스트댓글은 그만큼 많이 읽힐 수밖에 없다. 특히 확고한 반대 의지가 없다면 대부분 동조할 가능성이 높다. 여러 매체에서 쏟아지는 유사한 기사에서 일관된 내용의 베스트댓글을 봤다면 신뢰도는 더욱 높아진다.”

댓글과 동조현상의 상관관계

베스트댓글뿐만이 아니다. 심리적 효과는 첫 댓글 등에도 비슷하게 작용한다. 임명호 단국대(심리학)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잘못된 정보가 담긴 댓글도 3번 이상 반복되면 신뢰도가 70% 이상 올라가는 경향을 보였다.” 동일한 내용의 댓글이 많고 지지가 많으면 그게 곧 사실이 된다는 것이다. 드루킹ㆍ국정원 등 추천수나 댓글을 조작해 여론을 특정 방향으로 몰고 가려는 세력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전우영 충남대(심리학) 교수는 논문 ‘인터넷 댓글이 정치인에 대한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이를 증명한 바 있다. 해당 논문에 따르면 실험에 참여한 177명의 대학생은 특정 국회의원의 기사에 달린 댓글에 따라 판단도 달라졌다.

긍정적인 댓글이 달린 인물에 대한 평가는 후했고, 부정적인 댓글이 달린 의원의 평가는 박했다. 심지어 논리가 결여되고 타당성이 부족한 댓글도 효과가 충분히 있었다.[※참고 : 국회의원의 이름은 익명으로 표기하고 혈액형, 생년월일, 키 등 객관적인 정보만 제공했다.]

 

전 교수는 이런 결과가 나온 원인을 ‘(온라인) 구전 커뮤니케이션’의 특징에서 찾았다. 구전 커뮤니케이션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뤄지는 비상업적ㆍ비공식적 메시지를 뜻한다. 댓글은 대표적인 구전 커뮤니케이션에 속한다.

뉴스보다 댓글이 영향력 클 수도

전문가들에 따르면 구전 커뮤니케이션(댓글)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정보를 불순한 의도 없이 전달하기 때문에 신뢰도가 높고 설득효과가 크다. 소비자가 특정상품을 구매할 때 상업목적의 광고보다 사용자의 후기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건 이런 효과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일부에서 뉴스기사보다 댓글이 사람들의 행동을 더 많이 변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리적인 요인은 단기간에 쉽게 바꿀 순 없다. 그렇다고 아무런 대책이 없는 건 아니다. 임명호 교수는 “이미 형성된 여론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보통 침묵하는 경향이 큰데, 이는 편향된 생각을 심어주기 쉽다”면서 “보이지 않는 댓글, 쓰이지 않는 댓글에 대한 토론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고 설명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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