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은 여론의 창구인가

뉴스 댓글엔 이상한 게 많다. 기사의 행간을 읽지 않은 듯한 댓글이 숱하다. 서민들의 애환을 호소하는 기사엔 비아냥거리는 댓글이 공감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 국민 대다수가 서민인 데도 말이다. 더스쿠프(The SCOOP) 기사에 달린 댓글도 마찬가지였다. 10개 중 7개는 딴소리를 하고 있었다.

▲ 언론 기사에 달린 댓글 중 의견을 제시하는 댓글은 많지 않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2004년, 국내 최대 뉴스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가 댓글 기능을 선보였다. 당시엔 기대가 컸다. 미디어와 독자 사이에 평등한 소통 관계가 형성될 것이란 기대감이었다. 독자들은 여러 이슈를 두고 의견을 직접 표현하고 교환하는 ‘공론의 장’이 되길 꿈꿨다.

14년이 흐른 지금, 뉴스 댓글의 위상은 다르다. 대표적인 ‘저질 언어’ 중 하나로 꼽힌다. ‘로그인 이후 이용하기’ ‘댓글 접기’ ‘신고하기’ 등 이를 방지하기 위한 여러 장치가 생겼지만 크게 바뀌진 않았다.

‘보기 싫으면 안 보면 그만’이라는 논리가 통하는 것도 아니다. 댓글이 여론 형성의 강력한 매개체로 떠오르면서다. 실제로 인터넷 뉴스를 읽은 후 가장 눈에 띄는 건 댓글이다. 이는 선거철마다 정치권에서 댓글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는 국정원과 군대를 동원해 댓글 부대를 운영한 혐의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물론 뉴스 댓글에 조직적인 댓글공작과 악성댓글만 판치는 건 아니다. 정당한 댓글과 악의적인 댓글을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다. 다만 기사 맥락과 어긋난 내용의 댓글은 눈에 금방 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기사 6개를 선정해 이 기사에 달린 댓글 504개를 분석했다. 이중 본문 내용과 관련된 자신의 의견을 언급하거나 기사를 두고 욕설 없이 비판을 남긴 댓글은 157개에 불과했다. 전체의 31.1%의 비중이다.


나머지는 다양한 유형으로 갈렸다. 특정 부분의 문장을 집어내 반론을 하는 ‘트집잡기’ 유형이 131개(25.9%)로 가장 많았다. 기사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뚱딴지’ 같은 댓글도 119개(23.6%)나 있었다. 욕설형은 무조건 반말과 욕설로 댓글을 다는 형식이다. 이 역시 59개(11.7%)로 만만치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네이버가 자체 욕설 필터링을 두는 데도 이를 교묘히 피했다.

진짜 댓글은 30%뿐…

■트집잡기형 = 기사 전체의 흐름을 외면하고 특정 문구에 집착하는 방식이다. 특히 이런 유형의 댓글은 특정 이슈에 민감했다. 가상화폐를 다룬 기사의 댓글을 분석해보자.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을 설명한 이 기사에는 적대적인 반응이 많았다. 이를 규제하는 정부를 두고 “공산주의 정부” “4차산업혁명에 뒤처질 것” 등의 댓글이 달렸다. 참고로 이 기사에선 정부의 움직임을 다루지 않았다.

사회적 약자를 얕잡는 반응도 많았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사각지대를 꼬집는 기사에선 “집주인은 봉사활동 하냐” “사유재산을 제한하고 싶으면 북한에나 가라” 등의 댓글이 달렸다. 네이버 뉴스 댓글에선 임차인을 ‘감성팔이’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하면서 “임차인이 역으로 갑질한다”는 프레임이 정형화한 지 오래다. 법의 허점을 지적하는 기사인데도 전체의 맥락을 외면한 채 댓글을 이용해 약자를 공격했다는 얘기다.

■뚱딴지형 = “이게 다 문재인 때문이다” “네가 상관할 게 아닌데?” 졸업 유예를 선택하는 대학생들이 많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기사의 맥락과는 상관이 없는 의견이다. 이동통신사들이 고가요금제에만 집중하는 걸 지적하는 기사에는 “공약은 안 지키고 국가 안보는 뒷전에다 나라 말아먹는 중” “해외 통신망이나 증설해라” 등의 댓글이 달렸다.

서울 지역 호텔의 공급과잉을 경고한 기사에선 아예 정반대의 의견이 달리기도 했다. “외국인 묵을 곳이 없다는 이 기사는 대체 뭔가요?” 정부 정책으로 전세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기사에는 “전세가 없어지면 큰일이다” “전세는 꼭 있어야 한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한국의 힙스터 문화를 조명하는 기사엔 “나는 힙합이 더 좋다” “랍스터 먹고 싶다” 등의 댓글도 엿보였다.

이 기사에선 “그냥 유행의 다른 말인데 참 쓸데없이 늘어놓기만 했네” “이미 미국에서는 유행이 지난 건데 뭔가 멋진 단어인양 착각하지 마라” 등 소위 ‘아는 척’을 하는 댓글도 눈에 띄었다. ‘지식과시’ 유형이다. 이들은 확인되지 않은 방대한 정보를 댓글로 쏟아내기도 한다.

■욕설형 = 네이버 댓글은 누가 봐도 명백히 욕설인 단어는 ○○○으로 표시되는 등 필터링 시스템을 작동하고 있다. 몇몇 단어는 기재만으로도 금칙어로 포함돼 글쓰기 자체가 제한된다. 명예훼손 신고가 들어오면 자료를 경찰에 넘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댓글에서 욕설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다. 기자를 대상으로 한 인신공격부터 각종 비하와 비난이 난무한다.


특히 특정 세력을 혐오하는 댓글이 많았다. 난민, 외국인 노동자 등이 타깃이다. 외국인이 입국 거절을 당해 머무는 공항 출국대기실의 관리 실태를 지적한 더스쿠프 기사에서 두드러졌다. “난민들을 위해서 호텔을 만들라는 얘긴가” “배고프면 네 돈 주고 사먹어” 등의 댓글엔 으레 불필요한 욕설이 따라붙었다.

공론의 장 맞나

그 외에도 하나의 댓글을 두고 지나치게 감정적인 대응을 하는 경우도 많다. 평범한 의견 제시일 뿐인데 삐딱한 대댓글을 남기는 경우다. 각종 음모론도 횡행한다. 부동산 관련 기사에선 “몇년 뒤 폭락할 것” “앞으로도 승승장구할 것”이란 의견을 근거 없이 제시한다.

사회 안전망을 다루는 기사에선 “시장에만 맡겨라”는 시장만능주의 댓글이 숱하다. 우리 국민들이 이런 댓글을 그대로 ‘여론’으로 수용하면 위험한 이유다. 10개 중 7개는 딴소리를 하는 곳이 뉴스 댓글 시장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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