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 지원금 상한제 폐지 후 6개월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가 폐지된 지 반년이 지났다. 휴대전화 가격을 올린 주범으로 꼽힌 만큼 소비자들은 이 제도가 사라지면 휴대전화 가격도 떨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단통법 폐지 후 반년이 흘렀음에도 지원금에는 변화가 없고, 불법지원금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 한복판에 애먼 소비자들이 서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 폐지 6개월 후의 모습을 취재했다.  
 

▲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가 폐지된 지 반년이 지났지만 단말기 지원금은 오르지 않았다.[사진=뉴시스]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 휴대전화를 구입할 때 소비자가 받는 지원금이 상한선을 넘지 못하게 하는 제도다. 2014년 10월 통신시장에 도입됐던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의 세부조항 중 하나다. 지원금 열풍이 불던 시절, 자고 일어나면 달라진 스마트폰 가격에 차별을 겪는 소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런데 지원금 상한제는 기대와 달리 부작용을 낳았다. 지원금에 상한선이 생기자 이통3사가 할인경쟁을 멈췄기 때문이었다. 아이폰7ㆍ갤럭시S8 등 최신 스마트폰이 출시될 때마다 이통3사는 지원금을 10만~15만원대로 나란히 맞췄다. 이전 스마트폰의 지원금도 거의 오르지 않았다. “모두가 휴대전화를 비싼 값에 주고 사게 생겼다”는 소비자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갤럭시노트8ㆍ아이폰8 등 기본모델의 출고가가 100만원에 육박하는 스마트폰이 속속 출시되면서 소비자들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이를 잘 보여주는 통계도 있다.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가 도입된 2014년 국내 소비자의 평균 단말기 교체 주기는 1년 11개월이었지만(정보통신정책연구원), 그로부터 2년 후인 2016년 그 주기는 평균 2년 7개월로 늘어났다(한국인터넷진흥원).
 

 


더 큰 문제는 ‘불법지원금’이 기승을 부렸다는 점이다. 휴대전화 판매점들은 이통사로부터 받는 리베이트(판매 장려금) 일부를 지원금으로 둔갑시켜 소비자를 끌어모았다. 그럼에도 처벌은 솜방망이처럼 약했다. 1월 24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1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단통법을 위반한 유통점 171곳에 총 1억925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유통점 1곳당 112만원의 벌금을 물게 된 셈이다.

휴대전화 판매점 관계자는 “방통위가 적발한 유통점 수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네이버 밴드나 오픈카톡 등 메신저를 이용해 불법지원금을 지급하는 판매점이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지원금 상한선이 통신시장에 숱한 부작용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결국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는 ‘독소조항’이란 오점을 남기고 지난해 10월 1일 일몰 폐지됐다.

독소조항은 사라졌지만…

소비자들은 이제 더 많은 지원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 폐지 후 반년이 흐른 지금 이통3사의 지원금은 요지부동이다.

갤럭시S9의 출시로 구형모델이 된 갤럭시노트8의 지원금은 각각 13만5000원(SK텔레콤ㆍ이하 6만5890원 요금제 기준)ㆍ15만원(KT)ㆍ15만9000원(LG유플러스)이다. 지난해 9월 15일 출시 당시의 지원금 액수와 똑같다. 출시된 지 1년이 지난 갤럭시S8의 지원금은 고작 5만5000~7만원(SK텔레콤ㆍKT) 올랐다. LG유플러스의 지원금이 15만8000원에서 32만원으로 두배 가까이 오른 게 그나마 위안거리다.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가 폐지됐음에도 이통3사가 지원금을 올리지 않는 이유는 출혈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다. 휴대전화 판매점 관계자는 “한 이통사가 지원금을 올리면 경쟁사는 뒤따를 수밖에 없다”면서 “이통3사가 모두 지원금을 올리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통3사가 지원금보다 선택약정할인제도가 소비자에게 더 유리한 제도라고 홍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동통신업계 관계자는 “요즘 소비자들은 지원금 대신 통신비의 25%를 할인받는 ‘선택약정할인제’를 더 선호하는 추세”라면서 “이동통신사들도 이런 흐름에 맞춰 지원금의 규모를 늘리기보단 다양한 서비스와 콘텐트를 제공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판매점 관계자는 “대부분의 경우 선택약정할인으로 받는 통신비 할인금액이 지원금보다 더 많다”면서 “위약금도 없어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환경은 소비자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 이통3사는 출혈이 불가피한 지원금 경쟁 대신 ‘불법지원금 카드’를 꺼내들고 있다. 경쟁사 모르게 ‘지원금’을 살짝 얹어 소비자를 끌어들인다는 얘기다. 출혈경쟁을 피하기 위한 꼼수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휴대전화 판매시장의 민낯을 이렇게 꼬집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통신사들은 판매점에 최고 60만~70만원까지 리베이트를 줬다. 판매점이 휴대전화를 싸게 팔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올해는 연말까지 리베이트가 30만원을 넘지 않을 거란 얘기가 돈다. 경쟁이 심해질 수 있으니 불법지원금을 적당히 주라는 의미다.”

권남훈 건국대(경제학) 교수는 “현재 이통3사는 고객유치보다는 안정된 수익을 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면서 “선택약정을 선호하는 고객들에게 출혈 경쟁을 하면서까지 지원금을 보조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선택약정할인제 역시 소비자에게 불리하다. 선택약정할인제의 할인혜택이 이통3사가 주장하는 것처럼 많은 게 아니라서다. 할인폭을 넓히려면 그만큼의 요금을 내야 한다.

경쟁 안하는 이통3사

상황이 이렇지만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올해에는 불법지원금 관련 조사계획을 세우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에도 피해를 보는 건 소비자들이다. 불법지원금으로 또다시 가격차별을 겪는 소비자들이 생겨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 폐지 이후 6개월, 통신시장의 민낯은 똑같다.
임종찬 더스쿠프 기자 bellkic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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