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건 마케팅의 빛과 그림자

강렬한 한마디로 소비자의 마음을 훔치는 ‘슬로건 마케팅’이 최근 스타트업과 외식업체로 번지고 있다. 기업의 정체성을 알리는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슬로건은 때론 ‘부메랑’이 되기도 한다. 슬로건에 걸맞은 행동을 보이는 게 기업의 숙명이 됐다는 얘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슬로건 마케팅의 빛과 그림자를 살펴봤다.

▲ 나이키의 슬로건 ‘Just do it’은 20세기 가장 성공한 슬로건 중 하나로 꼽힌다.[사진=뉴시스]

“Just do it.” 나이키는 이 한 문장으로 미국 스포츠 용품 시장을 거머쥐었다. 1988년 처음 등장한 이 문장은 ‘20세기 가장 성공한 광고 슬로건(미국 광고 전문 매체 애드버타이징 에이지 선정)’으로 손꼽힌다.

당시 나이키는 남성뿐만 아니라 스포츠에 무관심하던 여성과 청소년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동기를 부여하는 문구인 ‘Just do it’을 슬로건으로 채택했다. 그 이후 10년 만(1988년→1998년)에 나이키의 미국 운동화 시장점유율은 18%에서 43%으로 높아졌다. 잘 만든 슬로건 하나가 기업의 운명을 뒤바꿔놓은 셈이다.

슬로건의 성공 사례는 가까이에서도 찾을 수 있다. 국내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시장을 개척한 배스킨라빈스가 주인공이다. 배스킨라빈스를 운영하는 비알코리아는 1985년 미국 배스킨라빈스사와 합작법인을 만들고 명동에 1호점을 열었다.

하지만 전성기는 그로부터 10년 후에 열렸다. 배스킨라빈스가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는 슬로건으로 광고 캠페인을 시작하면서다. 이 회사는 1996년 브랜드의 정체성인 재미ㆍ친근함ㆍ다양성을 강조해 슬로건을 만들고 브랜드를 리포지셔닝했다.

그 결과, 배스킨라빈스의 매출액은 광고 직전해인 1995년 210억원에서 1996년 400억원으로 90% 이상 껑충 뛰었다. 이듬해엔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아이스크림 브랜드 설문조사에서 압도적 지지(75.6%)를 받기도 했다. 비알코리아가 연매출 5000억원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짧은 슬로건이 밑거름이 된 셈이다.

마음을 훔치는 단 한 줄. 슬로건은 더 이상 큰 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다. 최근엔 스타트업과 외식업체 중에서도 슬로건 마케팅에 성공한 곳이 많다. 배달앱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슬로건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9월 신선식품 배달 서비스인 ‘배민프레시’의 이름을 ‘배민찬’으로 바꾸고, ‘내 손안의 반찬가게’라는 새 슬로건을 만들었다. 주력 품목을 신선식품에서 반찬으로 바꾸고, 모바일 서비스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에서였다.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배민찬의 3월 반찬 주문 건수는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내 손안의 반찬가게’는 ‘모바일’과 ‘반찬’이라는 키워드를 강조한 슬로건”이라면서 “캠페인 후 (PC 대비) 모바일 이용 비중이 80% 가까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기업 알리는 또다른 창구

피자 프랜차이즈 피자알볼로는 지난 1월 ‘피자는 이렇게 만들어야 합니다’라는 새 슬로건을 내걸었다. ‘건강한 수제피자’라는 자신감을 표현해 차별화를 꾀한 셈이다. 피자알볼로 관계자는 “피자업계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음에도 새 슬로건이 고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면서 “외식업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차별화를 위해 슬로건을 활용하는 업체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잘 만든 슬로건은 스타트업이나 중소형 기업을 알리는 좋은 매개체로 활용할 수 있다. 임왕섭 브랜드 컨설턴트는 “스타트업의 경우 브랜드명만 보면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인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면서 “이때 슬로건을 활용하면 소비자에게 명쾌하고 직관적으로 기업의 업業과 정체성을 알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슬로건이 ‘말’에 그치면 되레 날카로운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 소비자가 슬로건을 통해 인식한 기업의 이미지와 기업의 행보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는 경우다. 특히 슬로건이 소비자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을 경우 기업에 돌아오는 비난의 화살은 더 날카롭다. 두산그룹이 대표적인 예다.

“출발이 늦은 사람이 아니라 준비를 더 충분히 한 사람일 뿐입니다…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좋아질 점도 많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미래다.” 두산은 2009년 ‘사람이 미래다’라는 슬로건으로 광고 캠페인을 벌였다. 13년 만에 이미지 광고를 재개한 두산은 우수 인재를 확보해 기업의 미래를 준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후 6년간 10여편의 시리즈 광고가 제작됐을 만큼 대중의 반응도 뜨거웠다.

하지만 두산이 2015년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20대 신입사원과 1~2년차 직원에게까지 희망퇴직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사람이 미래다’는 숱한 비판적 패러디물로 재생산됐다. 두산은 2016년 ‘내일을 준비합니다’로 기업 슬로건을 바꾸고 ‘사람’이 아닌 ‘기술’을 강조한 광고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삼성그룹도 부메랑을 맞은 기업 중 하나다. ‘세계 초일류’를 지향하던 삼성은 1990년 이후 가족과 희망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기술ㆍ발전을 향해 달려온 한국사회 곳곳에서 인간 소외ㆍ불합리 등의 부작용이 터져 나올 무렵이었다.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던 삼성이 내세운 슬로건은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1997년 이후 최장수 광고 캠페인으로 광고 대상을 휩쓸 만큼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삼성 백혈병 논란(2003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2016년), 최근 삼성의 노조 와해 문건 논란까지, 삼성이 사회적 지탄을 받을 때마다 ‘또 하나의 가족’은 비판의 슬로건으로 회자되고 있다. 기업 스스로가 공든 탑을 무너뜨리지 않으려면 슬로건에 걸맞은 진정성 있는 행보를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송치만 건국대(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기업의 슬로건은 빈 그릇과 같다. 어떤 의미를 담을지는 기업이 정하지만 받아들이는 건 소비자의 몫이다. 슬로건을 통해 공감을 끌어내는 것도 어렵지만 애써 만든 의미를 지키는 과정은 더욱 어렵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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